비행접시 하나 창가에 내린다포르르 바람을 말아허공에 대패질을 한다 손바닥에 가만 올려놓는다아문 상처도 없는 날개 하나가상이용사 우리 아버지전장에 묻힌 오른팔은 아닌지 아버지는 송판을 다듬는 목수였다이름도 없던 우리 아버지쥐나 개나 형씨되나 따나 반말을 상대하며외팔 빈 소매가당신 날개였음을 일러준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애당초 푸른 별의 삼라만상은 우주에서 떠도는 한갓 점 하나. 인간의 창조주가 있다면 그도 필시 허공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라면서 낙향하여 소식이 뜸한 예전 직장 후배의 시입니다. 6·25 동족상잔에 참전하
네가 처음내게 프러포즈하던 때처럼그 설레던 마음 같은순결한 첫눈이 왔으면 좋겠어모든 것으로부터 그저 순수해져만나고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눈물이 되어버리는 하얀 눈이밤새도록 펑펑 내렸으면 좋겠어아침에 눈 뜨면백지로 보내온 너의 편지를 받고난 마냥 행복해할 테니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첫눈 내릴 때면 생각나는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아쉽고 그리운 아뜩한 세월이여! 그 풋내나던 발돋움이 우리에게 다시는 오지 않겠지요? 흰 종이처럼 쌓인 눈밭에 무어라도 쓰고 그려내도 다 이뤄낼 것 같았던, 꿈 많은 청춘이 들끓던, 사랑한다고
때론사는 일이 다 시시하고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그럴 일 없겠지만첩첩산중 홀로 사는 시인을 찾아그녀가 다니러 오는 날백 년 만에 내리는 눈눈도 눈도 그런 본 적도 없는 눈이 내리고세상과 통하는 길이 다 끊어졌으면 좋겠다먹는 일도 잊어버리고이불 속에서 서로의 살이나 파먹으며몇 날 며칠벌레처럼 꿈틀꿈틀 파고들어생애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세상을 내려놓고 낙향한 친구가 있습니다. “첩첩산중”에서 “세상과 통하는 길이 다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종종 메시지를 남기는 시인인데요. 어느 날 그리움이 절절한 고독의
박힌다는 것은 수인囚人이 된다는 것이다무기징역 이상의 범법자가 된다는 것이다벌건 눈물 흥건히 고인 쟁반바위가 된다는 것이다아니다핏덩이로 생살에 박힌 철천지원수가 된다는 것이다사각의 무덤 속에 벽 하나 갖는다는 것이다찔레꽃 덤불 속에서 입가에 하얀 꽃을 피우던어린 오라버니, 못이 되어 하늘에 박혔다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았다평생을 빼내려 해도 빼내지 못하는 못이 있다사람이 못이 될 때 가장 아프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살아가면서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요. 그 중, 자식을 잃은 어머니 가슴에 박힌 못이야말로 예수께
당신이 죽으면우리는 당신을 묻을 텐데 그러면 당신은정작 당신은 세상을 묻겠지 세상을 묻고 나서홀연히 당도한 그곳에서 세상과 함께 묻히고만우리를 그리워하겠네 미친 듯이, 묻힌 세상을 파헤치는당신을 그리워하겠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과연 죽은 이가 산 사람처럼 “미친 듯이,” 파헤칠까요? 죽은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처럼, 묻히지도 않는 그리움을 당신도 묻게 될까요? 외롭고 무섭다고 처절한 눈빛으로 더 가까이 오는 당신을 역설적으로 말한 건 아닐까요? 묻힌 세상과 묻히지 않은 세상의 대비는 많은 물음을 던집니다. 저쪽 세상까지 갔
소리 없이 오십시오나의 기쁜 초대로 오십시오한 며칠 고립되게폭설로 오십시오 멈추어진 풍경구속된 자유 속에서나를 가두었던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이 그립고 세상이 궁금해지면고립을 푸셔도 좋겠습니다 기별 없이 오십시오나의 사랑으로 오십시오한 며칠 고립되게폭설로 오십시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고립이란 다른 곳과의 왕래나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이 홀로 떨어져 있음을 말합니다. 또한 남과 사귀지 않거나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홀로 지냄도 일컫지요. 나경주 시인의 “폭설”은 평창의 금당계곡에서 인생의 반을 “구속된 자유” 속에서
거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거미를 좋아할 이유는 열 가지도 넘지만, 싫어할 이유도 그만큼은 된다. 거미 눈과 내 눈이 딱 소리 나게 마주친 적이 있다. 땅거미였는데, 두 눈이 딱 소리 나게 마주친 거다. 거미도 나도 얼어붙었다. 초점과 초점 사이에서 불이 일었다. 푸른 불꽃이었다. 내가 먼저 초점을 옮겨서 불꽃을 거두었다. 그제야 땅거미가 움직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한 마리의 땅거미가 움직이자 그에 딸린 대군이 움직였다. 걸음아 나 살려라가 아니었다. 서열별로 한 줄 종대를 이룬 그대로 보폭을 맞추며 줄줄이 따라갔다. 그 이사가
세상이 밥그릇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힘없는 밑줄 그을 때도 너를 닮고 싶었다일용할 식기의 달그락거리는 얕은 깊이부끄럽지 않은 척 가리면서도 너를 흠모했다향기로운 문장이 다른 펜촉으로 스며들 때도끝내 너를 지워버리지 못했다아무리 더뎌도 너를 포기하지 않으면맑은 진실이 내 안의 우주에서 흥얼거리듯그릇 스스로 비워지고 깊어져나눌 만한 노래 담을 줄 알았다어떤 아침을 즐겁게 일구고많은 밤을 뿌듯하게 씻어낼 줄 알았다덤으로 괜찮은 녀석 하나내 쪽으로 풍덩 빠질 것으로 알았다 기억하니 이 모든 것을, 우아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놓
원효 의상 서산은너무 먼 산 경허 만월 수월 만공 만해 탄허 일엽 성철 구산그리운 금강산 닮은중광의 그림자까지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단풍철이면 온 산이 붉은 치마를 두른 것 같다는 무주 적상산 자락에서 스님처럼 기거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산 정수리에서 시정잡배를 내려다보며 흰소리를 떵떵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참나(眞我)’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내가 사랑한 산들”은 수행의 동반자이자 그의 시적발원지입니다. “너무 먼 산”에서부터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고승의 이름을 부러 들먹이는 게 아닙니다. 소소하지 않은
내 기일을 안다면 그날은 혼술을 하겠다이승의 내가 술을 따르고 저승의 내가 술을 받으며 어려운 걸음 하였다 무릎을 맞대겠다내 잔도 네 잔도 아닌 술잔을 놓고 힘들다 말하고 견디라 말하겠다마주 앉게 된 오늘이 길일이라 너스레를 떨며 한 잔 더 드시라 권하고 두 얼굴이 불콰해지겠다산 척도 죽은 척도 고단하니 산 내가 죽은 내가 되고 죽은 내가 산 내가 되는 일이나 해보자 하겠다가까스로 만난 우리가 서로 모르는 게 많았다고 끌어안아보겠다자정이 지났으니 온 김에 쉬었다 가라 이부자리를 봐두겠다오늘은 첨잔이 순조로웠다 하겠다 [박정원의 시에
동짓날 팥죽을 먹는다달콤함이 부드럽게 넘어가던 고갯마루그 누구의 시샘인가잡귀가 그물처럼 던져놓은 돌부리에 걸려자꾸만 넘어지는 헛헛한 마음지금은 코로나시대사람과 사람사이 갉아먹는 우울의 맛쓸쓸한 바람소리 타고 한 고비 넘어간다동짓달 기나긴 밤 외로움도봄바람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어둔황진이의 사랑 깃든 팥죽을 먹으면이까짓 무서움쯤 아무것도 아니다잡귀야 물러 서거라깊은 밤 외로운 사람의 한탄과 넋두리조차맛있는 기억으로 남을 그날은 오고 말리라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코로나바이러스’란 “잡귀”에 이토록 오랫동안 주눅 든 때가 없었습
생각 속으로계속 걸어간다 일상을 내려놓고내려놓은 나를 앞세워 조금씩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길 오늘도꽃봉오리 하나내 앞에나라며꽃을 피우고 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내려놓는다고는 하지만 생각으로만 그치기 일쑵니다. 그러나 매일 내려놓으려 노력해야지요. 하루하루의 우여곡절이 모여 나의 인생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의 “꽃봉오리”는 단순한 꽃봉오리가 아닙니다. “꽃”에게는 과거, 현재,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미래가 공존합니다. “꽃봉오리 하나”마다 ‘나’라는 ‘내’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새로
내게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 걸 몰랐다내향성 발톱처럼 욱신거리는브라보콘 밑동처럼 위태로운한 이미지 안의 낯선 침강바닷물이 밀려들자 내 수평선이 잠겼다더는 젖은 귀에 뭍이 차오르지 않는나를 양식하기에 좋았다바다를 두루마리로 말았다심지 안에 식어버린 눈동자의 무덤이 가득했다죽은 감각은 더는 발끝을 의심하지 않았다파란은 파란을 끌어오고패총 같은 연애의 용도를 폐기처분한 뒤우린 자기 안의 껍데기에 자주 베였다수면으로 들어온 산 능선을 지그재그로 물어뜯는파도의 흰 이빨제멋대로 나를 읽어버린 바다의 주름 진 난입국지성 환통이 악천후처럼 밀려왔다
드르륵 드륵 어머니의 낙타표 부라더미싱이 돌아요. 나는 사막을 건너는 어머니의 등에 붙은 혹, 어머니는 나를 매달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을 건너가요. 달콤한 잠의 모퉁이를 돌다 얼핏 깨어보면 아직도 걷고 있는 낙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무늬가 다른 상처도 서로 잇대면 사막 같은 세상도 넉넉히 덮고 건널 수 있는 거란다. 늦은 밤까지 손바닥만 한 달빛을 한 조각씩 이어붙이며 걷는 어머니, 꿈이 무성하게 자라는 동안 어머니가 이어붙인 노래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나요. 중간 중간 깨어나는 밤이 환해요. 모래바람도 잠든 밤,
알레르기가 일었다활짝 핀 접시꽃을 들여다보려 하자참을 수 없는 재채기가 터져 나온다 내가 너에게 가까이 있어도 다가갈 수 없이때맞춰 불어온 바람너와 나 사이 파고든 그 바람은불고 또 불고 저 거리를 차단한 바람에 의해바람에 의한미세하게 날리는 꽃가루처럼 흡입된우리의 서로에 대한 선입견 끝내 너와 내가 알지 못한 채 계절이 이운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지척에 두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치듯 지나쳤지만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와
뒤축이 닳아 얇아진 햇살 오후의 그림자가 위태롭게 걸어간다천천히 삶의 무게를 옮기며 걸어가는 발자국들길을 만들거나 지우며 바닥을 견딘다 이제 퇴진하고 다른 신발에게 의무를 넘길까 바람이 갈피마다 나뭇잎을 날리듯신발들이 날마다 꿈속에서 뒤척인다 끝없이 이어진 길 위어디에도 닿지 못한 맨발이햇살을 신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참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되돌아보면 찬란한 사랑의 슬픔처럼 이룬 것도 이루지 못한 것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만족스럽고 기쁜 일은 잠시, 어느 순간부터는 종종
니체를 풀밭에서 침실로 옮긴다 달그림자찌걱거리는 소리니체가나체裸體로 날바닥에 눕는다 니체를,벌거숭이 별 하나를,어떻게 안착시켜야 오늘밤 잠이 잘 올까 니체의 나신裸身을 끌어안고 침대에 덜컹 눕는다 한밤중에 핀 쑥부쟁이 꽃들이 쿵쾅쿵쾅온몸에 폭죽 터트린다 니체가 꽃 핀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고정된 생각은 죽은 생각이고 꾸며낸 마음은 죽은 마음이며 벌레만도 못한 것이다.’라며 니체는, 남다른 통찰력과 창의력을 가져야 한다고 깨어있는 자들에게 ‘니체’라는 “별”을 꿈꾸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김영찬 시인은 그러한 니체의 철학서
계룡산 가을 갑사의 저녁 정취는 젊은 노시인 박용래의 울음바다다. 토박이 윤석산 시인이 자리를 펴자 반포 이장희 시인이 흥을 돋우고, 한성기 시인이 펼친 민화투 판으로 젊은 시인들이 모여들고, 막걸리 잔에 시를 탄 박용래 시인은 깊어가는 밤을 시로 부둥켜안고, 유성 터미널에서 천안 쪽으로 가는 금남여객버스 뒷좌석에서 졸다가 딸이 짜서 만들어준 털모자를 쓰고 앞문 쪽으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버스로 오르고 있는 ‘늙은 젊은이’를 끌어안고 마구 흐느끼며 울었지. 이렇게 너를 여기서 만나 반갑다고, 승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루가 콩나물시루에물 새듯이 빠져나가지만 물은 다 빠져도 콩나물은 남는다 하루만 물을 주지 않으면시들어 버린 콩나물처럼 나를 기르는 것은 날마다 하루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이 시를 감상하면서 불현듯 장자의 ‘소요유’나 천상병 시인의 ‘귀천’ 그리고 오현 스님의 ‘아득한 성자’란 시까지 확장됩니다. 하늘이 내린 “하루”라는 이 소중한 시간을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요? 시인의 지적처럼 “나를 기르는 것은 날마다 하루”임으로, 하루하루가 제발 좀 더 멋지고 값진 나날이 될 수 있도록, 맑
늦은 저녁 무렵공원 벤치에 앉았다책을 덮고 오가는 사람 근처에 없다 집중해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긴다사방이 고요하다 개미 한 마리 책갈피에 올라와나를 빤히 쳐다본다난해한 문장인가난감한 우리 둘이 책을 덮고노을을 바라보는데떡갈나뭇잎 한 장 툭!떨어져 하늘을 덮는다 외로운 이들 셋이 모여갑자기가족이 된 저녁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새로운 가족을 찾았습니다. 아니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결코 새롭지 않은 가족이 “갑자기 가족이 된”것처럼 생겼어요. 사실은 진즉부터 한 가족이었는데 우리가 하찮은 미물보다 낫다고 으스대며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