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업, ‘납세자의 일을 내 일 같이’…“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었다”
박사논문, “저가수임료, 처음엔 이득처럼 보이지만 사후관리 안 돼 위험”
 

19년을 국세공무원으로, 18년을 세무사로 살아왔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살아온 인생과 성격이 보인다고 했던가. 37년을 세금과 함께 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이들은 그의 얼굴을 보면 환한 미소만큼이나 분명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터.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세금과 납세자를 접했다. 신발이 닳도록 사람들을 만나고 ‘납세자의 일을 내 일같이’ 생각했다. 그렇기에 세무공무원에서 세무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단 2년 만에 의정부 지역 수임료 수입부문 랭킹 3위 안에 들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금주 세무사’의 이야기다.

그는 한국세무사회 업무정화조사위원, 업무침해감시위원, 조세제도연구위원 등을 차례로 지내고 중부지방세무사회 부회장을 거쳐 지금은 중부지방세무사회장(`17년 6월30일 당선)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납세자와도 세무사회원들과도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지난 2015년 의정부지역세무사회장을 수행하면서 고양·동고양·파주·의정부·남양주·포천 등 6개 지역의 경기북부지역세무사연합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지냈다.
 

◆ 이금주 세무사의 맛집, ‘온돌방’

이금주 세무사가 소개해주는 맛집은 의정부세무서 근처에 위치한 오래된 맛집, ‘온돌방’이었다. 코다리(동태) 요리 전문점인 온돌방에서 자랑하는 메뉴인 코다리찜과 낙지볶음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평소 주위 사람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그가 누군가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싶을 때에는 이곳 온돌방을 자주 찾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맛본 온돌방의 코다리찜과 낙지볶음은 그 양부터가 푸짐했고 포동포동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매콤한 코다리찜과 낙지볶음의 맛은 입맛을 돋우면서도 흰 쌀밥과 어우러져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일품이었다. 그가 의정부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역과 서울을 누비면서 수많은 식당을 다녀보았겠지만, 의정부의 숨은 맛집이 있다며 이곳을 추천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안정된 세무공무원 생활 그만둔 이유? “두렵지만 도전해보자”

시골이라고 불린 농촌 전라도 장흥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공부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어렵사리 광주상고로 ‘유학’을 왔다. 당시 집안이 어려웠던 만큼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할 생각이었지만 호적에 생일이 2년 늦게 올라가 18세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조차 못하거나 서류에서 합격해도 면접에서 매번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은행에 취직하는 즉시 성균관대를 야간으로 다닐 생각을 했었고, 조선대 야간에는 이미 합격을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이문제로 은행취업이 힘들어지자 학교 진학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1년 동안 시간을 보냈지만 이듬해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렇게 은행원에서 시선을 돌려 공무원 시험을 본 뒤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초임으로 인천세무서에 발령받아 국세청 생활이 시작됐다. 당시 8만원의 월급을 받았고, 하숙비 5만원을 제외한 3만원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어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어려운 형편 속에 공부는 잠시 잊고 근무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공무원 생활을 19년 동안 이어갔고, 국세청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진행됐던 1999년, 사직서를 던졌다. 1년만 더 근무한다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나름대로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접는다는 것은 그에게도 두려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마흔에 ‘두렵지만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세무사)을 시작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당시 어르신들이 오셔서 세금상담 뿐만 아니라 가정사를 나눌 정도로 타고난 성격이 좋았다. 당시 국세청 직원들의 자세는 고압적인 면이 강했던 만큼 그의 밝은 성격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세무공무원 같지 않고 선생님 같다’는 말을 듣게 했다.

국가와 조직에 충성하며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보다도 납세자의 사소한 문제도 직접 해결해주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면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세무사로 개업하기를 결심했다. 특히 세무사라는 직업은 본인이 열심히 하는 만큼 대가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개업 후 2년간은 일을 죽자고 했다.

그렇게 의정부세무서를 마지막으로 국세청을 나와 의정부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 쌓았던 덕과 베풀었던 일들이 자산이 된 덕인지, 소개와 소개가 이어져 매일 납세자가 찾아와 계약하기만 해도 바쁠 정도였다.
 

◆ 경원대 박사학위 취득, ‘세무대리서비스 보수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그렇게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은 세무사로 개업 후 계속할 수 있었다. 현직에 있을 당시 방통대를 다녔었고 세무사를 개업하고 나서야 졸업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고려대에서 석사, 경원대(현 가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됐다. 이때 논문의 주제로 고른 것이 ‘세무대리서비스 보수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였다.

세무사로서 세무대리보수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고, 납세자와 세무대리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서로의 만족도를 조사해봤다. 이때 보수는 기장보수, 세무조정료, 불복청구 보수, 세무자문료 등 4종류로 나누어 분석했다.

연구 결과 기장보수 결정요인으로 납세자와 세무대리인 모두 매출액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무대리인은 투입자원을 중요한 기장보수 결정요인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의뢰인은 세부담 최소화나 세무서비스 만족도, 세무대리인의 명성과 세무서비스 만족도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무조정료나 불복청구 보수, 세무자문료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세무대리서비스 보수 결정 시 세무대리인은 투입자원 요인을 고려할 뿐 아니라 의뢰인의 세부담 최소화를 위한 노력과 의뢰인이 세무대리인이 제공하는 세무서비스에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의 세무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또 의뢰인 입장에서도 세무대리인이 제공해야할 세무서비스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 비용 등 투입자원 요인에 대한 평가를 충분히 고려해 합리적인 보수결정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이처럼 합리적이고 공정한 세무대리서비스 보수는 세무대리인에게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세무서비스를 제공할 동기를, 의뢰인에게는 세무대리인의 세무서비스에 만족하는 세무서비스 시장이 되도록 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최근 세무대리업계에 명의대여나 수수료 덤핑으로 낮은 가격의 보수를 받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납세자들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저가로 수임하는 경우 처음에는 이득인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의지와 열정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이에 더해 가정이 안정되고, 경제력이 있고,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사까지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신과 봉사덕분이었음을 고백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또 학위취득 후 대진대 법학과에서 강단에 서는 기회도 찾아왔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더욱 공부가 되고, 학생들에게 해주는 조언과 인생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 장사를 했으면 망했을 것…나에게 세무사란 ‘천직’

그에게 세무사란 ‘천직’이라고 말했다. 만약 세무공무원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더라면 망했을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고 나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일을 했다면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세무공무원 19년 경력을 통해 납세자에게 필요한 것, 납세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갖고 있는 지식으로 도움을 주면서 함께 이익을 취해 서로 윈윈(win-win)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항상 하는 말이 바로 ‘납세자의 일을 내 일같이’이기 때문인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바로 ‘이금주 세무사를 찾아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러 문제나 상황이 닥쳐올 때도 안 된다는 말보다는 먼저 수용하고 노력해서 바꿔나가고자 했던 자세도 그의 성공에 한몫할 수 있었다. 그가 존경하는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은 자세였다.

후배들에게 전하기 싶은 조언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그는 주저없이 “꿈을 가져야한다”고 조언했다. 후배세무사들은 세무사의 미래로서 그들이 꿈과 희망, 그리고 목표를 가져야만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발전이 지역세무사회, 중부세무사회, 그리고 한국세무사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학위도 취득하고, 회직에도 많이 참여해 봉사하는 과정도 거쳤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제자리에 머물러있지 말고 무언가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고 봉사하고, 또 꿈을 위해 실천한다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꿈을 이룬다면 더 큰 꿈도 이룰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인생의 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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