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석래 효성그룹 전 회장이 항소심 첫 공판을 위해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분식회계, 조세포탈, 횡령, 배임, 위법 배당 등 수천억원의 기업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효성그룹의 조석래 명예회장 및 장남 조현준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의 막이 올랐다. 지난해 11월 30일 시작된 공판준비기일 이후 약 11개월만의 공판기일이다. 공판기일에는 준비기일과 다르게 피고인이 출석해야 한다.

20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재판장 김대웅)의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첫 공판에서는 검찰측 증인으로 비자금 조성 등 효성 일가의 재산을 관리한 인물인 고모씨와 이모씨의 신문이 진행됐다.

고모 전 상무는 1983년경부터 2013년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수사가 진행될 때까지 효성그룹에서 근무했다. 그는 1992년 효성 종합조정실 경영관리팀과 기획팀에서 근무하면서 조석래 전 회장의 주식 관리업무를 담당하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석래 일가의 재산, 주식과 금융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다.

이날 검찰은 고모 증인이 직접 작성한 1996년 10월 31일부터 1998년 1월 31일까지의 자금운용표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신문을 이어갔다. 해당 자금운용표는 국세청 세무조사 당시 발견된 고모 증인의 USB에 담겨있던 자료로, 조석래 명예회장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보유주식뿐만 아니라 채권, 배당금, 주식과 채권 운용에 따른 이익을 정리한 표다.

앞서 고모 증인은 2013년 5월 19일 서울지방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에서 USB 4개를 숨기려다 세무공무원에게 발각돼 영치당했으며, 이후 돌려받은 USB 사본을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넘겨 효성 일가의 개인재산관리내역과 자료에 대한 내용을 검토한 바 있다.

이날 고모 증인은 USB에 담겨있던 해당 자금운용표에 대해 직접 작성한 것은 맞으나, 단순 기장업무만 담당했으므로 실제 자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효성그룹의 재산이 아닌 모두 조석래 명예회장의 개인재산을 기재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앞서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명재산은 수기로 작성·관리돼 왔으며, 고모 증인이 엑셀을 사용해 전산화를 시작했고 증거자료인 자금운용표는 상사인 이모씨의 지시로 이모씨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후 고모 증인은 2000년 초부터 조석래 명예회장의 지시로 개인재산관리를 총괄했으며, 차명주식 리스트는 2011년까지 작성했고 해당 리스트는 조석래 명예회장 외에 다른 사람에게 보고하거나 알려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검찰에 따르면 1993년경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 조석래 명예회장이 효성 주식을 가명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이를 임직원 및 친인척의 실명으로 전환해 보유했다.

당시 카프로 2대 주주인 코오롱은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효성을 공정위에 고발했고, 공정위는 조사를 거쳐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명주식 처분을 명령, 조석래 명예회장은 카프로 차명주식 53만여주를 300여억원에 매각하고 55만여주를 330여억원에 다시 매입했다.

고모 증인은 당시 카프로 사태가 난 뒤 정모 재무본부장이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명보유주식을 다른 차명으로 변환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조석래 명예회장 측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변호인은 자금운용표에 기재된 것은 모두 조석래의 소유라는 취지로 답변했는데 ‘소유’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이에 고모 증인은 “소유에 대해서 어떻게 판정해야할지 법률적 지식은 없으나, 우리(효성)한테 유리하게 해줄 수 있으니 소유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즉 자금운용표에 기재된 모든 것이 조석래 명예회장의 소유라는 것은 효성의 의결권 행사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측면에서 조석래 명예회장의 소유라고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당시 부장이라는 직급이기 때문에 실제 조석래 명예회장으로부터 직접 자금운용표에 기재해 관리하라는 지시는 받거나 보고할만한 위치가 아니었다고 진술하면서 조 명예회장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음을 인정했다.

이어 이모 증인에 대한 신문이 이어졌다.

이모 전 전무는 1989년부터 효성그룹에서 근무한 인물로, 1995년부터 조석래 명예회장의 현금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이때 현금은 주식배당금으로, 배당금을 받아 조석래 회장의 개인 현금사용에 지급하거나 주식 및 부동산 구입에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으면 현금을 지급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이모 증인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석래 명예회장이 카프로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사실을 적발하고 금감원의 조사를 받자 1996년 5월 금감원에 근무하던 남모 부국장에게 잘 봐달라는 취지로 1000만원의 뇌물을 건넸다. 이에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선고돼 5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모 증인은 홍콩에 CTI, LF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카프로 주식을 취득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라며 “그 당시 효성이 코오롱과 상당한 분쟁이 있었고, 조석래 회장 차명으로 있던 주식을 다른 쪽으로 전환했어야 했기 때문에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매입해 관리하면 결국 효성의 지분도 유지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동양나이론 배 사장이 주도했고 매입한 내용은 동양나이론 김 상무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검찰의 신문에 대해 “나이가 70이 넘어 요새 하루 이틀 일도 잘 기억을 못하는 상황”이라며 CTI, LF와 관련된 지시에 대해 “주식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 모르겠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다음 공판은 11월 1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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