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촌놈’이 품은 공부의 한(恨)이 ‘박사세무사’로 만들어
"폐가(廢家)에서 가마니 깔고 앉아 촛불 하나에 의지해 공부“

"납세순응도 제고, 납세자‧세무대리인‧세무공무원이 소통하고 신뢰해야”
김승한의 명품강의 여전히 진행형…내게 세무사란 ‘고맙다’란 세글자다

 

‘맑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가을의 중턱에서 9대 세무대학세무사회장 임기를 끝으로 경기도 수원 광교산 자락에서 본업인 세무사업무에 푹 빠져있는 ‘김승한 세무사’를 만났다.

늘 그랬듯 그의 말투, 그의 행동은 들꽃같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폐가(廢家)에서 가마니 깔고 앉아 촛불 하나에 의지해 공부하던 ‘마곡사 촌놈’이 품은 공부의 한(恨)은 그를 ‘박사세무사’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 시작은 ‘돈’ 때문이었다. 전 학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공주사대부고 대신 공주농고를 택한 그는 10대의 마지막, 첫 시련을 맞이한다. 농협대 불합격에 이어 농림직 9급 시험에 도전했으나 영어과목에서 과락이 나온 것. 농고(실업계)라는 특성 탓에 3년 내내 국어 영어 수학 공부 대신 농장에서 수업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해 6월에 마곡사로 가 농사꾼이 되려고도 해봤지만, 체력이 약했던 탓에 그 역시도 맞지 않았기에 몸과 마음만 괴로웠다고 한다.

결국 그해 7월경 독한 마음을 먹고 공주시내의 한 헌책방으로 달려가 인문계 책 약 5만원어치를 사들고, 암기위주의 독학으로 학력고사에 준비에 매진했다. 책을 사서 마곡사에서 한 시간여 정도 떨어져있는 예전 화전민이 살던 집으로 달려가 가마니를 깔아놓고 촛불에 의지해 영일 없이 공부하기를 4개월, 시험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 그는 농협대를 생각했지만 점수가 아깝다는 생각에 국립세무대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세금과의 운명적 ‘인연’이 시작되었다.

한 학년에 내국세학과 280명, 관세학과 80여명 정도를 선발했는데, 동기생들에게 물어 물어보니 학력고사 점수가 본인보다 다 높아 한편으로는 자신이 거의 꼴등으로 입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세무대학 생활 내내 말 그대로 ‘열공’할 수밖에 없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그리고 그는 1번지 세무서로 불리는 서울의 한복판 종로세무서에서 국세공무원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조미료NO, 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다’…‘송민정’

이런 김승한 세무사가 즐겨찾는 맛집은 어떤 곳 일까. 그의 수원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남짓 떨어져 있는 ‘자연맛집 송민정’이었다. 그리고 그가 추천한 메뉴는 ‘연잎밥’이었다.

송민정은 연잎밥은 물론 다른 메뉴들 모두 조미료나 감미료 일체를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거래처나 귀한 손님이 오실때 모시고 가면 보통 ‘자극적이지 않아 속이 편했다’며 좋아한다고 했다. 좋은 재료를 쓰니 그 맛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지만, 최고의 맛을 내겠다는 송민정 측의 노력 또한 그 맛을 더한다고 했다.

조미료 대신 야채껍질이나 채소뿌리 등을 말리고 삶아 맛을 채우고, 100% 국내산 콩을 농협에서 수매하여 만든 두부며 정성스레 연잎에 싸 두 번 쪄낸 밥까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이날 연잎밥과 같이한 기자 역시‘베리굿’을 연발했다. 그리고 곧 한번더 찾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입 발린 소리가 아닌 진심이다.
 

◆개업 첫 해에도 ‘마이너스’ 아닌 ‘소득세 납부’

아이러니하게도 김승한 세무사는 세무사자격시험을 공부한 이유가 승진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동기들보다 약간 빨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6급을 빨리 승진하다보니 이내 ‘사무관’ 승진에 욕심이 생기더라는 것. 그리고 세무사자격증이 있으면 사무관 승진 시 0.5점의 가점이 부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세무사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는 계획대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처음에는 승진을 목표로 자격을 취득했지만 막상 세무사자격증을 취득하고 보니 주변사람들의 권유와 더불어 본인 또한 공부도 더하고 싶고 좀 더 큰 뜻을 펼쳐보고 싶은 욕망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자격증 취득 직후인 2003년 1월 국세청의 울타리를 나와 세무사로서 망망대해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세무사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작은 목표를 세웠다. ‘첫해부터 마이너스는 내지말자’는 것. 열심히 노력한 결과 다행히 ‘마이너스’ 대신 ‘소득세’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납세자와 과세권자의 납세순응도 인식차이에 관한 연구’

세무사사무실이 자리를 잡아가자 공부 욕심이 꿈틀거렸다. ‘박사학위’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2005년 고려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약 3년 동안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수원에서 성북구 안암골까지 그것도 자정을 넘겨가면서 통학을 한 탓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박사는 포기하려고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혀지게 될 쯤 사무실에서 좀 가까운 수원대학교와 인연이 되어 2010년 박사과정을 등록하고 2013년 2월 드디어 박사 타이틀을 얻었다. 석사부터 박사까지 내리 달려왔지만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특히 박사 논문 연구에 필요한 통계자료를 구하기 위한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설문 문항수와 설문대상자를 너무 많이 계획한 것이 고생길을 자처했던 것.

통상적으로 박사논문을 설문조사에 의하는 경우 ‘대상자 선정 및 회신의’ 어려움과 대표성 논란에 휩싸이게 되어 설문 대신 빅데이터 통계자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반 납세자 및 개업세무사, 현직세무공무원을 대상으로 약900부의 설문 선정 대상에서 627부에 대한 응답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일일이 모두 수동으로 입력한 후 통계프로그램을 활용했다고 한다.

더불어서 박사 논문을 쓰면서 ‘내 설문을 꼭 넣어야 하느냐’는 압박(?)성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솔직히 마음의 동요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힘이 된 것은 본인이 ‘납세자이자 세무사이며 과세권자’라는 세 가지 입장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세 집단’ 간에 입장차이로 인한 납세순응도 인식차이가 성실납세에 저해되어 이를 극복하고 건전한 납세문화를 조성하는데 일조를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 눈 딱 감고 그 길을 갔다고 한다.

그렇게 수원대에서 ‘납세자와 과세권자의 납세순응도 인식차이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조세에 관한 자진신고납부와 부과징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납세순응도와 관련해 납세자와 세무공무원, 세무대리인 이 세 집단 사이에 납세순응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본 결과 그 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납세자와 과세권자는 서로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납세자가 사업을 영위하다보면 접대비 초과지출, 사채이자, 불법 외국인근로자 임금, 신용불량자 임금 등 세법상 증빙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과세권자 입장에서는 원칙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고 결과적으로 세법과 경제현실과의 차이점이 납세순응도에서 인식의 차이로 나타나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연구결과 납세자의 납세순응도를 높이고 건전한 납세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과세와 납세의 객체에 대한 연구와 함께 납세자와 과세권자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과세와 납세의 주체에 대한 연구가 함께 진행돼야 하며, 또한 불성실 납세자에 대한 강력한 제제와 함께 성실납세자를 위한 적절한 보상제도가 이루어지는 납세와 관련한 신상필벌이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공무원 시절부터 시작된 명품강의…지금도 '현재진행형'

김승한 세무사’ 그는 알려진 베테랑 강사이기도 하다.

국세청 재직 시절에 직원들을 대상으로 친절강의, 직무강의, 연말정산강의는 물론2003년도부터 프랜차이즈 신규 가맹점주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세금강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직후부터 본인이 과중한 경제적 부담과 함께 힘들게 격은 석사, 박사과정을 후진들은 조금이라도 시행착오와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또 거리상으로도 가까이에서 학업에만 전진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원대학교 경영대학원 내 석사과정의 졸업이수과목 총 10과목 중 4과목(세무조사론,납세자보호론,상속증여세론,재산제세론)을 신규로 개설하여 직접 강의를 맡아오고 있다. 또한 새로 입학하는 세무사와 세무공무원들에게 입학금 면제와 50% 이상 등록금의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을 조건으로 수원대학교와 MOU 체결을 주도하는 등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 “세무사란…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그에게 세무사란 어떤 존재일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맙다’라는 세 글자다.

세무대학을 졸업했지만 세무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사회봉사도 할 수 있었다. 만약 세무공무원만 했었더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세무사를 함으로 인해 가능하게 됐다는 것.

실제로 그는 세무사라는 직업을 갖고 난 뒤 외국으로 나가 안목을 넓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구열을 더욱 불태울 수 있었다.뿐만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한 단계 더욱 도약할 수 있게 된 것은 세무사라는 직업을 갖게 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며, 개인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됐고 그렇기에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세무사를 하지 않고 세무공무원만 했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세무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렇기에 역시 세무사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

또한 그는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사물에도 감정이 있어 아끼고 사랑해주면 나를 다시 이롭게 해준다는 사랑과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명상을 즐긴다는 그는 9대 세세회장을 지내면서 부담도 되고 어깨가 무거웠지만, 회직 당시 듣게 되었던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모두 감정이 아닌 마음으로 듣고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이처럼 무엇보다 마음이 아름다운 김승한. 그와의 인연이 오래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나친 총명은 화(禍)요, 적당한 어리석음은 복(福)이라.” 그가 작년 가을 어느 날 만났을 때 기자에게 전해준 ‘바보경’에 나오는 말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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