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 거창세무서

 십이월 저물어 가는 언덕에 서서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는 노을을 본다. 우울하고 스산한 바람이 언덕을 맴돌다 붉은 한숨을 내쉬며 노을 속으로 빠져든다. 처량하고 아쉬움이 너무 붉어서 시린 계절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을이 우수에 젖은 내 마음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노을 진 언덕 저문 하늘에 별과 달을 단 귀걸이가 반짝 빛난다.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눈에 익은 풍경이 정겹고 편하다. 그래도 여행의 끝자락에 선 마지막 종착역을 향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보다. 참회 속에 빠져들게 하는 부끄러운 기억, 이루지 못한 소망 등이 절박함과 함께 나를 물결 속에서 출렁이게 한다. 이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보다는 늘 있는 것에 대한 바라봄이 더 편하고 익숙한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이다.

 왜 이 계절을 좋아하냐고 나 보다 어린 직장상사가 묻는다. 옷깃을 여미고 움츠리게 하는 쌀쌀한 날씨에 우중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 활력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 숨어 있다. 밝은 햇살아래 환한 웃음이 꽃처럼 피어나는 생기 있는 계절을 좋아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도 피력한다. 내가 태어난 계절도 꽃 축제가 열리고 연두 빛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4월이다. 그러니 어쭙잖은 감상을 불러들여 우울의 심신을 만들지 말고 생기 담은 햇살을 머금은 꽃의 심신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어찌하랴. 몸은 4월의 생기와 싱싱함을 갈구하지만 마음은 처량함과 우수에 찬 12월의 노을언덕에 빼앗기고 만다.

 내가 태어난 신성하고 거룩한 사월에 꽃다운 청춘이 속절없이 지고 말았다. 수많은 눈과 귀가 지켜보는 가운데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겼으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분노가 치민다. 사월의 꽃 축제 속에 숨어있는 기득권의 욕망과 탐욕, 무지와 비상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탐욕에 눈 먼 자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지침에 따라 순종하던 저 착한 아이들이 침몰해 간 것이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이 세상의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어찌 용서 받을 수 있을까. 미안하다 아이들아.

 세월호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며 지나치게 집착하여 호들갑을 떤다고 말한다. 자식을 팔아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죄인 취급한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마음에 조롱 섞인 폭력의 언어로 비수를 꽂는다. 자신은 국정원이 주관하는 단체의 임원이라고 살짝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언젠가 동백섬에 가서 동백꽃 꽃술에 꿀벌이 아닌 똥파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미모가 뛰어나다는 그녀가 꿀벌이 아닌 동백꽃 속에 똥파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알 것이다. 매의 눈을 하고 능숙한 사냥꾼처럼 아이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가슴에 잡아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자식을 거짓과 타락과 무능으로 너무도 어이없게 잃었다면 그 슬픔과 분노를 어찌 쉽게 삭일 수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며 참담함이다. 4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역사적 아픔이 진행 중이며 정년 잔인한 달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은 사과와 용서대신 거짓과 폭력으로 국민을 옥죄어 무지렁이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충실한 짐승으로 길들여 보다 많은 부와 명성을 쌓으려고 골몰한다.

 죽은 자는 여기 남아있는 세상에 대한 기억이 없으리라. 오로지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아프게 남아있다. 그 아픔이 세월이 흐른 뒤에 치유되고 잊히길 소망한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자의 탐욕과 거짓으로 허무하게 죽어갔다는 사실만은 영원히 교훈으로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잘못된 가치관으로 자신을 철저히 합리화시키려는 가짜 눈물이 아니라 진짜 눈물을 보고 싶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눈물을 보고 싶다.

 노을언덕 저 물결 속에서 사월의 꽃이 일제히 촛불처럼 타오르는 것을 본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견고한 거짓의 성이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별과 달빛으로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변화는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정치인이나 자본가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엾고 숭고한 죽음이 우리들 밑바닥을 지탱하던 진실의 소리를 깨우치는 양심이 되었다. 무력한 양심에 촛불을 밝히는 희망이 되었다. 처량하고 우울한 심장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꽃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철수 작가 프로필]

△ 현재 거창세무서 근무
△ 2010년 계간 『에세이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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