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 (시인)
 

사내가 허공을 걷고 있다

하루 스물네 점

쉼 없이 건너는 시간여행자

외쪽불알 추로 세워

좌우 치우침을 모른다

아무리 걸어도 늘 제자리

사내의 구두는 발자국도 없이

소리로만 걷는다

 

입주 사십년, 붙박이

우리 부부의 내밀한 밤을 지켰고

아이 둘을 키워 내보냈다

바람벽에 붙어살면서도

제 몸 밖을 꿈꾼 적 없는 사내

내부를 열어보면

곁을 내주며 서로 품고 돌아가는

가계가 드러난다

 

속도전의 시대?

사내는 아날로그 식 보폭이다

텅 빈 허공에 결을 만들어

집안 구석구석 종소리로 채우고 있다

고물상도 등 돌리는 몰골

나는 사내의 보법을 배우고 싶다

낡은 구두로 또박또박 걸어가 닿는

시간 너머의 그 무엇,

 

하루가 기적처럼 지나가고 있다

 

[이영식 시인 프로필]

△ 전 국세청 근무

△ 『문학사상』으로 등단

△ 시집: 『휴』, 『희망온도』, 『공갈빵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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