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캠프 트레킹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구간
14좌 완등 '박영석 산악인, 지현옥 대장' 위령탑 숙연

 

▲ 설산이 바로 안나푸르나이다.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신의 땅, 하얀 눈의 세계가 길게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 그중 안나푸르나를 가는 길은 그야말로 해발 3000m까지 밀림에 이어지는 웅장한 산과 마주한다. 8000m급 14좌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 8개의 산봉이 네팔에 있다.

안나푸르나(8091m)는 네팔어로 ‘곡식이 많다’라는 의미로 비가 많이 오는 만큼 농사가 잘돼 풍요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는 트레킹 하는 사람들 중 한국인의 비중이 90% 이상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는 길은 몇 개의 코스가 있지만, 크게 나야풀에서 힐레~울레리~고라파니~푼힐전망대~츄일레를 거쳐 촘롱마을~도반~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방법과 나야풀에서 시와이~지누단다~촘롱을 거쳐 가는 코스이다. 첫 번째 코스는 돌아가고, 두 번째 코스는 비교적 단거리이다. 두 코스 모두 촘롱에서 만나게 된다.

▲ 포카라에서 나야풀까지 간 다음 왼쪽으로 트레킹을 시작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간 다음 다시 내려와 지누단다와 시와이를 거쳐 다시 냐야풀로 오는 여정이 시작된다.

기자는 지난 1월6일부터 15일까지 9박10일간 총 82.km 정도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했다. 하루 평균 10km 정도를 걸었으며, 짐과 식사는 포터와 키친보이가 담당했고 잠은 롯지(산장)에서 해결했다.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를 가기 위해서는 네팔의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국내선 비행기로 40분 정도 가야 한다. 다시 포카라에서 나야풀까지 버스로 2시간30분 정도 이동 후 다시 40여분을 지프차로 이동해 힐레마을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다. 약 2시간 트레킹 후 울레리마을에 저녁식사를 하고 숙박하게 되는데, 롯지에서 요티(8)라는 어린 소녀를 만났다. 주인의 딸로 영어공부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요인인 7일 아침식사를 하고 울레리(2210m)를 출발, 마차푸차레(6993m)와 히운출리(6441m)를 보며 산행을 시작했다. 반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야생화가 인상적이었던 깊은 계곡을 걸어 마침내 해발 2860m 고라파니에 도착했다. 낮엔 영상의 기온, 밤엔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 고라파니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계속 북쪽으로 가면 티벳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이드 라나가 설명했다. 그 옛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낙타와 말을 끌고 실크로드를 따라 걸었을 것이다. 고라파니는 대상들이 말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가이드 라나는 한국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네팔에 있는 한국어학원에서 한글을 익혔다 한다.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라나는 당초 독일인 등 유럽 사람들의 가이드를 했는데, 점점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방향을 한국인 가이드로 전환했다. 고라파니에 도착해 멀리 히운출리와 안나푸르나 1봉을 바라보았다.

▲ 해발 3200m인 푼힐전망대.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8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1시간 정도 걸어 푼힐전망대(3210m)로 향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오전 7시경 동이 터왔다. 반대편 설산 왼쪽부터 다울라기리(8167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안나푸르나 1봉(8091m)이 붉은색으로 변하며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약 100여명이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왔다. 중국인도 상당수 보였다. 사진촬영을 하고서 30분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8시경 출발, 반단티(3180m)를 지나 밀림과 계곡, 폭포와 얼음 계곡... 선 라이스 롯지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츄일레(2560m)에 도착하니 넓은 잔디가 있는 롯지이다. 밖엔 빨랫줄이 길게 이어져 있고,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롯지에서는 샤워와 핸드폰 충전, 와이파이 요금으로 100루피 또는 200루피까지 한다. 와이파이가 이렇게 깊은 고산까지 가능하다니 마치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것 같다. 100루피는 우리 돈 1000원 정도 이다. 식사 후 난로에 앉아 있는데 젊은 부부와 아이 미라노(8)가 있었다. 아빠의 나이를 물으니 30세라 하더니 아내의 핀잔을 듣고, 곧바로 40대로 정정한다.

▲ 촘롱마을 구리정초등학교 학생들.
▲ 젊은 아낙들이 밭에 퇴비로 쓰기 위해 소똥 등을 맨손으로 대나무 바구니에 담고 있다.

♦ 촘롱마을, 남해의 ‘다랭이밭’ 연상…다섯교실 구리정초교 ‘모금의 손길’ 기다려

트레킹 4일째인 9일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먹고, 8시가 조금 넘어 트레킹을 시작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주변엔 계단식 밭이다. 마치 남해의 다랭이밭을 연상하는 풍경이다. 겨울이라 빈 곳이 많았고, 맞은편 밭에는 소와 말, 양들의 먹이인 청보리를 심어 놓았으며, 유채꽃도 노랗게 피었다. 이외 수수, 조, 감자, 유채 등 농사를 짓는다.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트레킹족을 위한 숙박시설과 가게가 전부였었다. 촘롱(밭의 끝이란 의미)이라는 마을인데 군데군데 집들이 있었다. 촘롱마을을 지나면 시누와부터는 더 이상 밭이 없다. 오직 여행객들을 위한 롯지가 있을 뿐이다. 예전 우리처럼 소를 이용해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 그리고 소 등 배설물을 퇴비로 모아놓은 곳에서 대나무로 만든 도구에 배설물을 담아 밭에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젊은 아낙들은 맨손으로 배설물을 담고 있다. 옆에는 토마토나무가 있다. 촘롱마을 약 500m 전방에는 구리정초등학교가 있다. 다섯 교실 정도의 작은 학교인데, 학교라기보다는 시골의 작은 분교로 작은 운동장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초콜릿을 나눠주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길가에는 통이 하나 있다. 학생들을 위해 기부해달라는 영어 안내문이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니 한글로도 써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트레킹 출발지인 나야풀 초입 초등학교는 산악인 엄홍길이 후원했기에 태극기와 엄홍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악인 엄홍길 후원재단은 전남도교육청과 함께 네팔의 16개 초등학교에 컴퓨터 보급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촘롱마을(2360m)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인 시누와(2360m)까지 3시간 정도 걸었다. 오는 도중 촘롱마을 내려오면서 소녀들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어린 꼬마 여자에게도 초콜릿을 주었다. 아주 예쁜 아이였다. 점점 고도가 올라간다.

10일 오전 시누와를 출발, 도반(2600m)을 거쳐 해발 3200m인 데우랄리까지 7시간 동안 10km를 걸었다. 3개의 폭포를 지나는 구간이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보통은 6시간 정도 걷는데, 1시간 정도 길게 걷는 것은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도반을 지나 밤부 인근 선두에서 히말라야 원숭이를 보았다고 했다. 도반에서 점심 식사 후 원숭이를 보기 위해 우측만 보고 가는데, 가이드 라나가 우측 숲에 원숭이가 있다고 얘기를 한다. 멀리 숲을 보니 털이 하얗고 얼굴 부분이 까만 히밀라야 원숭이 무리가 보였다. 데우랄리에서 숙박을 하고 7일째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까지 올라 숙박을 해야 한다. 2개의 폭포를 지나면서 한국인 학생들과 네덜란드, 독일, 칠레에서 온 사람들과 만났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에 도착했다. 마차푸차레(6997m)는 마차(물고기), 푸차레(비늘)이란 뜻으로, 마치 물고기 비늘 같다고 해 네팔에서는 신성한 산으로 여겨 등반이 통제된다. 베이스캠프 우측 웅장한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오르는 동안 폭포와 빙벽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다. 캠프에는 외국인들 몇이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한국 천안에서 온 아가씨는 가이드도 없이 혼자서 힘들게 간다.

▲ 박영석 대장 등 3인의 위령비. 이들은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르다 실종됐다.

캠프를 출발, 오후 5시경 마침내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가파른 절벽 위에 오색천이 길게 늘어져 있고, 박영석 대장 등 3명의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중 사망한 것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과 지현옥 산악인이 해맑게 웃는 모습의 동판이 새겨진 위령탑이 서 있다. 마음이 아팠다.

박영석 산악인은 1993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을 국내 최초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으며, 그해 1년간 히말라야산맥 8000m급의 6개 봉우리를 등정하는 세계 최초의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바 있다. 이후 8년 2개월에 걸쳐 히말라야 고산 등반에 주력해 2001년 K2(8611m) 등정에 성공, 8000m급 거봉 14좌 완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남극점과 북극점까지 정복 14좌 7대륙 최고봉을 등반, 세계 최초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했지만, 2011년 10월 18일 박영석 원정대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 새로운 루트을 개척하기 위해 도전한 등반 도중 6500m 지점에서 실종됐다.

▲ 지현옥 산악인의 위령비.

지현옥 산악인은 1993년 한국 첫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고 정상에 올랐으며 1998년 가셔브룸 2봉(8035m)을 무산소로 단독 등정해 8000m급 여성 단독 등반시대를 열었다. 1989년과 1990년 네팔의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8586m) 등반에 성공했다. 하지만 1999년 4월 29일 네팔 현지시각으로 새벽 3시 30분 3캠프를 출발 10시간 30분만인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5시 15분)에 자신의 네 번째 8000m급 도전인 안나푸르나를 등정했으나 하산하던 중 해발 7800m 지점에서 실종됐다. 이처럼 안나푸르나 남벽은 에베레스트 남서벽(8850m), 로체산 남벽(8516m)과 함께 세계 3대 난벽으로 꼽히는 루트이다.

산악인들은 보통 남벽은 위험해 북벽으로 등정을 한다고 라나가 전했다. 실종 당시 라나의 친구가 수색대에 합류해 수색했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크레바스에 빠지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안나푸르나 1봉(8091m)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나푸르나로 참으로 웅장한 모습이다. 안나푸르나 베에스캠프로 오르면서 석양에 비친 마차푸차레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한밤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서울의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성운들과 별들로 가득찬 하늘이다.

▲ 마차푸차레의 웅장한 모습. 물고기 비늘을 닮았다고 마차푸차레라 부른다.

♦ 물고기 비늘 모양 마차푸차레, 네팔 ‘신성의 산’…안나푸르나 일출 '백미'

트레킹 7일째인 12일 오전 8시경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한국인 아가씨 2명이 빠르게 내려간다. 혼자 왔느냐? 물으니 친구가 앞에 간다고 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간다고 했다. 천안에서 온 아가씨는 어제와 달리 걸음이 빠르다. 어제까지 계속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은 양떼구름으로 덮여있다. 헬기가 몇 대 보였다. 포카라공항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관광객을 싣고 온다는 것. 비용은 1인당 25만 원 정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차를 마시고 다시 데우랄리에서 점심을 먹은 후 밤부(2310m)에서 숙박을 했다. 도반 도착 전 기원탑 인근에서 갑자기 히말라야 원숭이를 만났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사진을 찍으려 하니 나무 위로 올라갔다. 최대한 가까이 가 사진을 찍었다. 한국인 서너팀이 올라왔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한국인이 90% 이상이듯 자주 한국인들을 만났다. 포터없이 무거운 짐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는 외국인도 보였다.

▲ 엄청난 무게의 짐을 운반하는 포터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포터를 보고 외국인들이 놀라워 한다.

다음날인 13일 밤부에서 촘롱마을 바로 아래 지누단다(1780m)까지 약 10km를 걸었다. 초반 오르막은 시누와에서 끝난다. 시누와에서 차를 마시고 내려와 2800계단 촘롱마을에 이르게 된다. 점심식사 후 오후 2시 20분경 가파른 길을 내려왔다. 도중 큰 철제상자(주방용품으로 추측)를 메고 올라가는 포터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무게가 상당하다. 어디에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지...차 한 잔을 마신 후 오후 4시40분경 온천이 있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허름한 매표소에서 여자가 돈을 받고 있다. 1인당 100루피(한화 1000원 정도)라고 했다. 15분 정도 내려가니 계곡 옆에 노천온천이 있다. 위와 아래 2개소에 탕이 마련돼 있고 아래 탕 옆에는 3곳에서 온천수가 흘러나오는데 온도는 35도 정도인 듯 했다. 탕은 미지근하고, 물이 나오는 곳에 손을 넣으니 다소 따뜻했다. 생각보다 온도가 높지 않아 실망을 했다.

14일 지누단다를 출발 시와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인 팀이 지나갔다. 시와이에서 지프차를 40여분 타고 처음 출발했던 나야풀에 도착했다. 한 바퀴를 돈 것이다. 나야풀에서 포카라 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패여 공사를 하는 구간이 있어 길이 좋지 않았다. 오는 길에 학생들 모습이 보였다. 일요일인데 학교를 간다. 네팔을 일요일이 정식 휴일이 아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쉰다. 1시간 조금 넘어서 예전 왕의 별장이었다던 폐와호수 피시 트레일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은 독립식 롯지가 여러 개로 열대 식물과 꽃 등 잘 조성돼 있다. 예전 미국의 대통령과 영국의 왕자 등이 묵었던 기록 사진이 남아 있었다. 이로써 모든 트레킹 일정이 끝났다. 다음날인 15일 오전 페와호수를 약 30분 정도 보트를 탄 후 포카라공항으로 출발 약 30분 비행기를 타고 카투만두에 오전 11시경 도착, 인도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세계문화유산인 보드나트 사리탑과 재래시장인 타멜거리를 둘러봤다.

▲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보드나트 사리탑.

♦ 페와호수, 빙하의 물로 형성, 히말라야 조망...해발 800m '왕의 별장'으로 유명

가이드인 라나의 설명에 의하면, 페와호수는 네팔 포카라 남쪽에 위치한 호수로 면적은 약 4.4km²에 이르고 있어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해발 800m에 있는데,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빙하의 물이 녹아 형성됐다. 호수 동쪽 기슭은 레이크 사이드 또는 바이담이라고 불리는데, 호텔, 식당, 상점 등의 편의시설이 몰려 있어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왕의 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한데, 네팔은 왕의 비리로 18일 동안 국민들이 집회를 한 후 대통령제로 바뀌고 왕의 별장은 일반인에 숙소로 공개됐다고.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은 공익재단을 통해 기부된다.

▲ 안나푸르나 출발지인 포카라 시내.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출발점이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북서쪽으로 약 200km, 해발고도 800m에 위치하고 있는 교육과 관광의 도시이다. 도시명은 '호수'라는 뜻의 네팔어 '포카리'에서 유래됐다. 과거에는 인도·티베트와의 무역 중개지역으로 번영했으며, 현재는 인도와 네팔을 연결하는 동시에 평지와 산지를 이어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히말라야 등산과 트레킹을 시작하는 서쪽 출발점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50여 개의 코스를 시작할 수 있다.

아열대 기후로 겨울에도 따뜻하며,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이루어졌다는 거대한 페와(Fewa)호수 외에 베너스호, 루파호 등이 있어 뱃놀이, 낚시 등 다양한 수상놀이를 즐길 수 있다. 페와호 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는 힌두교 사원인 바라히사원이 있다. 힌두교사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포카라에서 비행기로 카투만두로 이동해 인도식당에서 인도음식을 먹은 후 네팔에서 가장 높은 사리탑인 보드나트사리탑 관광에 나섰다. 이 탑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티베트와 네와르족 불교신자들의 숭배지로 고대 카트만두와 라싸 사이의 고대 무역로로 사용되었던 차바힐(Chabahil) 동쪽 1km 지점에 있으며, 높이는 38m이고 기단의 높이만 36m에 이른다.

5세기경에 축조됐으며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티베트인들은 탑이 카투만두 계곡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부처의 사리가 묻혀 있다고 믿어 왔다. 탑은 4개의 방형 기단부 위에 세워져 있으며, 돔과 정상부 사이에는 1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첨탑이 있는데, 이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13단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탑 이름을 'Bodh(깨달음)의 Nath(사찰)', 즉 보드나트(Bodhnath)로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천민인 자드지모(Jadzimo)가 부처에게 공양할 것을 찾다가 왕의 허락을 받고 짓기 시작하였는데, 지방 귀족들이 천민이 탑을 건설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탄원하였으나 왕은 "한번 허락된 것은 철회할 수 없다(Jarung Kashor)"라고 말하며 거부하였다고 한다. 또한, 훗날 자드지모의 공덕으로 그의 아들이 8세기 티베트 불교를 확립한 왕으로 환생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네와르족의 연대기에 따르면, 15세기 후반에 마나데바(Manadeva) 왕이 아버지를 살해한 후 속죄를 위해 건립하였다고 하며, 한 여인이 왕에게 사리탑을 지을 땅을 허락받아 지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트레킹 하는 동안 가이드인 라나에게 네팔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질문하고 들었다.

네팔의 국명은 '신의 보호'라는 뜻을 가진다. 80% 이상이 힌두교인이다. 왕정시대에는 힌두교가 국교였다. 아마도 인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인도인들이 참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힌두교는 우주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 등 삼위일체로 비슈누와 시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힌두교를 형성했다. 힌두는 거대한 물이라는 뜻으로 인더스강의 산크리스트어 ‘신두’에서 유래했듯 인더스강에서 목욕을 하면 죄를 씻을 수 있다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더스강을 찾아 몸을 씻는다.

네팔은 비교적 작은 국가이나 인도와의 국경지대에 펼쳐져 있는 습지와 중국과의 경계에 있는 히말라야 등 고산지대에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이 많다. 북쪽의 중국 국경 지대는 소위 히말라야산맥군으로 에베레스트 8848m를 비롯한 칸첸중가 8586m, 로체 8516m, 마칼루 8462m, 초오유 8201m, 다울라기리 8167m, 마나슬루 8163m, 안나푸르나 8091m 등 8개의 산군이 있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