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12월 3일 ‘제2의 한국동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국가부도라는 ‘폭망’직전 IMF의 구제금융안에 서명한 날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2001년 8월 23일 졸업했다. 그 눈물의 졸업을 조기졸업이라며 자축하는 이상한 나라이기도 했다.
IMF시절, 잘나가던 대기업들이 줄도산을 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은행들까지 연이어 문을 닫았고,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딱 20년이 흘렀다. 대한민국 땅에서 이런 일이 또 엄습할 조짐이다. 당시에는 대기업과 은행들 소위 화이트칼라들의 직장이 문을 닫았다면 이번에는 블루칼라들의 직장이 위기에 빠져있다.
조선업의 붕괴로 직장을 잃은 숙련공들과 한국GM으로 대표되는 소위 기름밥먹는 사람들의 실직은 큰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일로 언론의 관심이라도 받지만 영세자영업자들과 작은 중소기업들의 절절한 사정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얼치기 정치인들과 영혼 없는 경제관료들, 현장을 모르는 어공들(어쩌다 공무원)이 내놓는 어슬픈 정책인 한국경제와 맞지 않는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시장의 상황과 동떨어진 부동산정책, 그리고 이번엔 근로시간단축으로 한 번 더 한국경제(중소기업)를 멍드는 수준에서 잘못하면 IMF 때처럼 ‘폭망’이라는 단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감지되고 있다.
먼저 최저임금 관련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다보니 영세기업들이 정말 아우성이다. 사업 못해먹겠다면서 문을 닫겠다는 중소기업사장들이 아우성이다. 그러다보니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서 월 13만원을 보태어 줄 테니 안정자금지원 신청을 하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급기야 세금걷는 국세청장까지 동원하여 홍보를 해댄다.
왜 신청율이 저조할까. 안정자금을 신청하면 4대보험에 가입해야하고, 1년간만 보조가 될 뿐이고, 나아가 세무사들에게 중소기업들의 신청을 대신하라고 강권하는데 세무사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사업주를 대신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하는 경우 사실과 다른 급여액 신고로 인해 세무사에게 주어질 패널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 세무사들의 말이다. 정부에서 공짜로 돈을 준다고 해도 안정자금 신청률이 저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정부는 또 ‘근로시간 단축’까지 끄집어냈다. 많은 사람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이라는 타는 불에 휘발유를 들이 부은 격이라고 말한다.
근로시간단축은 최저임금과 또 다른 문제다. 최저임금은 근로의욕이 향상되어 매출이 늘어나면 영업이익으로 커버가 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제품의 납기를 맞추려면 추가 고용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지금 영세기업들이 추가고용 여력이 있을까. 최저임금까지 올린 마당에.
세무사사무실을 돌아보자. 법인세신고기간에 52시간을 넘기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좋다 그때만 알바를 쓴다고 하자. 알바생들이 세무사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는 나라다. 어떻게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까지 왔을까. 삼성전자의 핸드폰 사업과 반도체 사업으로만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월남파병의 목숨으로 경부고속도를 세웠고, 중동의 더위와 모래바람을 싸워이긴 우리 선배들, 그리고 독일로 갔던 광부들과 간호사들, 국내의 논밭과 건설현장, 노동현장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설움을 겪으면서 눈물겹게 일 해온 우리 선배들 덕 아닌가. 공무원들은 자기들이 좋은 정책을 써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겠지만 우리 노동자들의 피와 땀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무슨 자원이 있는가. 우리가 가진 것은 오로지 노동력이었다. 그것도 값싼.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느 쪽일까.
우리가 한때 개성공단에 목을 멘 이유가 무엇인가. 북측의 값싼 노동력 때문 아니었던가. 지금 대한민국 땅에 필리핀 베트남 등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뭔가. 싼 인건비 때문 아닌가.
세계 1등인 나라가 해야 할 노동시간 단축을 세계 10등인 나라(우리나라 GDP순위는 11위, 미국이 1위)가 왜 난리를 피우는지 대체 모르겠다. 정치인들이야 국민들 현혹하는 재미로 그런다고 하지만 의식있고 강단있는 학자들까지 가세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한 마음뿐이다.
하나 예를들어보자. 우리나라가 현재 세계에서 몇 등인가. 10등쯤 된다. 공부 1등하는 친구가 ‘나 7시간 공부할 테니 너도 7시간만 공부해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 친구가 자기는 계속 1등만 하겠다는 뜻이다. 굳이 1등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10등이 1등을 하려면 1등인 친구가 7시간 공부할 때 10등은 10시간 12시간해야 따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왜 10등인 나라가 1등인 나라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
정부와 정치인들이 그리고 학자들이 미래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일까. 분배도 좋지만 생산의 효율성도 가르쳐야 한다. 지금 몇 개의 사과를 나눠먹지 못해 안달을 낼 경우 나라의 미래는 없다. 주4일제, 주3일제 모두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시점이 있는 것이다. 최근 몇년 세금이 잘 걷힌다고 이렇게 급속하게 일을 적게 하는 나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도 기업 자율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말이다. 대통령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전한다. 대통령의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간언하라고. ‘간언하라, 이 먹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