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섭 / 김포세무서

 

거침없이 달려드는 겨울의 속도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여자는 먼 곳으로 떠났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희고 찬 씨앗이

한 삶에 뿌리내려 죽음을 움켜쥐고 있었다

흐린 향기를 머금은 국화꽃 사이에

환한 웃음을 남기고서야 죽음은 완성되었다

 

절을 하는 내내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나뭇가지마다 바람을 묻히고 돌아서는 계절

겨울의 호명으로 불려온 눈이

오후 풍경을 지워가고 있다

눈은 어떤 수식어도 거느리지 않고

오직 명사로만 내리는데

 

새들은 어디에서 이 추위를 견디고 있을까

화장터 전광판에는 죽음에 흡수되지 못한

여자의 이름만 남아 붉게 타오르고 있다

사라지기에 아쉬움이 남는 눈처럼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자

먼 곳으로 떠났던 눈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린 건

여자가 담아준 김치를 본 순간이었다

찬밥에 물을 말아 먹으면서

맵지도 않은 김치에 자꾸 눈물이 고인 것은

포기 사이사이마다 들어있는 붉은 이름 때문이었다

 

떠나고 나서야 기억되는 흔적들

때로 맛으로 다시 기억되는 이름은

얼마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가

겨울은 자신이 가진 눈송이를 다해

마지막까지 하나의 이름을 호명할 것이다

 

[이희섭 시인 프로필]

△경기 김포 출생
△건국대 행정대학원 석사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200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스타카토』,『초록방정식』
△한국작가회의 회원
△(現) 『詩우주』 회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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