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근 시인
말을 한창 배우는 중인 세 살배기 외손녀가
‘할머니’는 벌써 오래전부터 또박또박 발음했다
어린이집을 다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젠 제법 말귀도 척척 알아들을 뿐더러
어렵지 않는 웬만한 말은 곧잘 따라 하는 편이다
몇 달 전부터 틈틈이 저네엄마와 내가
‘할아버지’ 불러보라니까 그럴 때마다 아저씨란다
혹시나 ‘할아버지’ 발음하기 힘든가싶어
‘할버지’라 해보기도 하고 ‘할배’라 해보래도
할머니와 똑같은 ‘할’ 자인데 여전히 아저씨라 한다
헌데 공연히 마음 한구석이 서운해지는 건 왜일까
아인아! 할아버지가 이웃집 아저씨야?
아무 망설임 없이 ‘응’이라 대답하는 외손녀다
웃어야할까 울어야 될까 영 헷갈릴 뿐이다
무의식중에 ‘할아버지’ 소리를 이제나저제나
행여 들을 수 있으려니 딴엔 은근히 기다렸던가보다
옆에 앉아있던 딸내미가 웃으면서
할아버지라고 하는 것보다야 아저씨라 하면
더 젊어져 좋은 거 아니냐며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어찌되었든 언어마법사인 외손녀 덕택으로
적어도 십 년쯤 젊어지는 셈이라 기분좋다해야 할까.
[박귀근 시인 프로필]
△국세청 35년 근무 정년퇴직
△『문예사조』로 등단(신인상 및 문학상 수상)
△시집 『숲속의 빈터』
△한국문인협회회원, 문예사조문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