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미 / 영월세무서

 

왜 그런 날들이 있지 않은가...분명 내 인생은 내 걸음으로 걸어가는 시간들인데, 그 신발은 쇠덩이로 만들어져 무겁고, 버거워 벗어 던져 버리고 싶은 날, 나만이 그런 신발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소유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공평함으로 마음이 스산하게 내려앉아 버리는 날 말이다.

아마 그날도 그랬을 것이다, 헛헛해지는 마음에 하늘이나 한번 쳐다보자고 사무실 뒷마당으로 나서는데, 직원 K가 다급하게 “관사 뒤편에 있는 낡은 주택 울타리안에서 처절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와 그곳으로 가보니,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을법한 고양이 세 마리가 간절한 몸부림으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말을 이어가는 K도 이어가는 말을 되짚어 가는 나도,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뒤에 합류한 J는 그들의 부모가 있을 터이니 내버려 두자고 했고, 그 말에 K는 그러다간 모양새를 보니 죽어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 나는 그러하니 그곳에서 그들을 꺼내 살펴 펴보자고 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론에 이르러 일단은 그들의 “건강 상태나 확인”해보자고 팔 길이가 가장 긴 직원 J가 나무로 둘러쳐진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두 마리를 꺼내 보았다. 마지막 한 마리는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놓여 있었는데 울타리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비쳐지는 그 작은 존재의 모습이란, 옆으로 누운 채 미동도 없이 고요히 눈감고 있어, 우린 그가 이미 죽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꺼내놓은 두 마리도 크기는 한 뼘 정도로 그간 먹이라곤 입에 대지도 못한 듯 몸통은 비쩍 말라 있었으며, 눈가엔 고름이 고여, 어미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임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다행이도, 그들은 영양주사와 항생제를 맞고 주사기로 분유를 받아먹은 지 하루 만에 거짓말처럼 생생한 어린것들로 돌아와 주었다. 포기하자고 내 자신이 제안했던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하고 힘겹게 구출된 마지막 한 마리 또한 예상대로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돌이킬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때가 되면 주사기에 가득 든 분유를 힘차게 빨아 당겼고, 직원 J가 마련해준 보금자리인 라면박스 속에서 잠이 들었고, 사무실 뒷마당을 내 집인 냥 뒤뚱거리며 돌아다녔다.
가끔씩 나처럼 스산한 마음이 일어나는 직원들이 나와 들여다보기도 했고, 담배 한 모금 생각나는 직원들도 라면박스 곁에 모여 그들의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봐 주기도 했다. 그들의 일상은 이제 직원들의 공통 얘깃거리로 자주 입에 오르락 거렸으며, 어떤 이들은 그들의 미래를 논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좀 더 큰집을 지어 주자고도 했고, 이젠 분유를 끊고 사료를 먹여야 하지 않겠냐고. 한마디씩 거들기도 했다.

뒷마당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직원 K와 나는 사무실 지하로 더 커다란 박스를 옮겨놓았다. 물론 그들은 처음보다 몸짓도 커졌으며 더 큰 동선으로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지하 한구석에 박스와 그들이 좋아하는 모빌 장난감과 물과 사료를 놓아주고, 그들이 계단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계단입구에 발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그들의 향후 거처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였다, 인터넷 카페에 그들의 입양처를 찾는다는 광고와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구걸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짐작했던 것만큼이나 입양은 난항을 겪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은 상처와 안타까움과 분노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던 중에 직원 S의 지인이 가장 여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마지막으로 구출된 생명하나를 분양함으로써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이어가 보고자 했다.

이제 그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지 3개월이 지나간다. 아기였던 그들은 청소년기로 접어들었고. 그간에 설사를 동반한 장염에 걸려 우리를 애태우게도 했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고, 속내들 들여다보면 어쩌면 내면엔 도시의 이방인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들을 여전히 단순한 몸짓하나로 웃게 만든다.
그들의 거처는 이제 뒷마당에서 옥상으로 옮겨졌으며, 그들이 먹는 사료의 양은 처음의 다섯 배쯤으로 늘어났고, 엎어 치며 매치며 두 마리가 심심하지 않게 성장해가고 있으며, 캣타워 또한 훌쩍훌쩍 올라갈 정도로 튼튼한 몸으로 다져져가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들의 앳된 얼굴과 몸짓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만큼이나 직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간다는 것과, 얼마 뒤 성묘로 되어버릴 그들의 거처가 지속적으로 옥상일수가 있냐는 문제와 그들이 세상으로 나갔을 적에 견뎌낼 수 있냐는 의구심이, 생명에 대한 최선의 예의에 대해, 여전히 고민으로, 풀어나가야만 하는 과제로, 이따금씩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는 한다.

엊그제 직원 J가 사무실 앞마당 잔디에 그들을 놓아주는 모습을 보았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비치는 날 이였고, 하늘하늘 바람이 섞여 기분 좋은 날이기도 했다. 아마도 J도 언젠가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담고 있으리라. 그래서 그렇게라도 ‘세상과의 접촉 연습’을 시키는 것이리라...

오늘도 그들은 옥상에서 사료를 먹고 이따금씩 선심 쓰며 놓아주는 참치통조림을 부산하게 삼켜대고, 캣타워에 오르락 거리고, 옥상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다니고 있을 거다. 그러다, 이따금씩 보이는 우리의 얼굴들을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 줄 것이고 역시나 미소를 짓게 만들이라.

산·들·바람...처음부터 우린 그들을 그렇게 불러왔었다. 최후에 구출된 연약한 녀석은 산처럼 꿋꿋해지라고 산으로,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있는 둘은 들과 바람으로.
어쩌면 시원하고 부드럽게 부는 산들바람처럼 그들은 무더웠던 지난 여름 우리에게 그렇게 왔으리라.. 이제 그들이 조물주의 뜻에 따라 그들이 생명을 이어가보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우리 집에 들어온 강아지마냥 그들도 그들의 안녕을 지켜줄 입양자를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놓아버리지 않고 있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감히 자신 있게 말해주리라. 당신들에게 그들은 산들바람처럼 기분 좋은 위로를 안겨줄 것이 틀림없으므로, 당신은 행운을 잡은 거라고...

 

[박선미 작가 프로필]

△현재 영월세무서 근무

△국세가족문예전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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