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민 / 동안양세무서

 

서울 인근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들과

눈 덮인 남한산성을 등산하다가

어느 순간 삼백 팔십 여 년 전

오랑캐들이 쳐들어오고 있는 그 참상 속으로 들어갔다

 

공포에 떨면서 성벽을 쌓고 있는 백성들이 보이고

노역을 재촉하는 관군들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게 된다

 

오랑캐에게 쫓겨 도망가는 아낙네의 겁에 질린 낯빛과

울면서 따라가는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과

피 흘리며 싸우는 병졸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본다

 

끝내

추위와 배고픔을 못 이겨 항복하면서

삼전도에 나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하는

임금을 따라 나도 언 땅에 머리를 짓찧고 있다

 

선혈이 얼굴을 타고 내려

눈물과 범벅이 되어 가슴으로 흐른다

짐승처럼 소리치며 가슴을 살펴보니 땀이다

 

그때

앞서가던 친구 녀석이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소리에

오랑캐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 날의 치욕은 언 땅속에 묻힌 채

눈 덮인 남한산성은 묵언 수행 중인데

 

*절을 세 번 하고 머리를 땅에 아홉 번 찧는 의식
 

[장석민 작가 프로필]

△현재 동안양세무서 근무

△2016년 국세가족문예전 금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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