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 제1호로 ‘韓一稅務法人’설립…"세무사업무는 혼자해선 안돼"

변호사의 세무대리금지 헌재 위헌결정, "세무대리주면 조세소송 가져와야!"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2일, 1979년부터 국세청 외국인세과(현 국제조세국)에서부터 지금까지 39년간을 국제조세업무만을 연구하고 있는 세무사 한분을 만났다.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에서 세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특화된 세무법인으로 키워온 한일세무법인 김천옥 대표세무사(73세, 세무학 박사)를 강남구 대치동 그의 사무실에서다. 그는 마침 ‘부가가치세법 및 근로소득세에 대한 안내’책을 일본어로 저술하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해서 세상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그가 던진 한마디 한마디는 말 그대로 혜안(慧眼)이었다.

그는 1982년 4월 세무사 개업을 할 당시 '세무법인'이라는 명칭이 생소했던 시절에 굳이 개인세무사로 개업하지 않고 처음부터 한일세무법인으로 출발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미래에 납세자의 조세에 대한 니즈(needs)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개인세무사 혼자서는 대응 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고 했다. 그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반드시 세무법인을 설립하여 그 세무법인을 구성원으로 하여금 각각 전문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름도 ‘한일세무법인’으로 지었다. 한국에서 제1호(韓一)의 세무법인이라는 뜻에서였다고 했다.

그는 국제 세무업무를 취급함에 따라서 연간 150억 원 정도의 조세를 외국법인으로부터 외화로 송금 받아오기 때문에 조세를 통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국세청장으로부터 납세자의 날에 표창을 수상했다. 그는 스스로 애국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할 때에도 그의 왼쪽 눈에 살짝 핏발이 서려있어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최근부터 한일세무법인의 후계자를 찾는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산수(傘壽)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의 세무사가 나아가야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세무사 개업을 하면서 개인사무실보다 세무법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세무사란 법률, 회계뿐만 아니라 이전가격에 대응하기 위하여서는 무형자산의 기술적 가치까지 해결하여야하며, 또한 개인의 재산을 관리해야하는 사회적 책임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세무사 혼자서 해결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만용이거나 세무사의 지위를 너무나 가볍게 보는 것입니다. 구성원 각각의 세무사들이 그 전공을 정하고 매일 토론을 하여야하는 것이 당연히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먼 미래 납세자의 조세에 대한 수요는 단순한 기장대리에 국한 것이 아니라 사회학의 전문가로서 납세자의 니즈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인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세무사법에 ‘세무법인’이라는 규정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상법에 따른 합명회사로 세무법인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합명회사' 한일세무법인으로 법원에 등기를 했습니다. 결국 '제1호 세무법인'인 셈이었죠."

"그 후 계속적으로 세무사법에 ‘세무법인’을 설립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우리들의 줄기찬 노력 끝에 2003년에 드디어 세무사법에 세무법인 규정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상법에 따른 합명회사를 세무사법에 의한 세무법인으로 등록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거의 세무법인으로 조직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회상하자면 제가 세무사업계의 비전을 앞당겨 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한일세무법인의 거래처는 개인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외국법인과 내국법인체라고 했다. 법인의 운영은 구성원 6명의 세무사 각각의 거래처를 구분 할 수 없는 완전법인체 형식이다. 거래처는 모두 100건 정도이며, 개인기장은 10여건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한일세무법인은 개인기장을 탈피하고 △국제조세 △M&A △연결납세 △세무조정 △세무고문 △조세불복 등에 주력을 해오고 있으므로 6명의 세무사들이 먹고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살짝 자랑을 곁들였다.

▶ 변호사의 세무조정 업무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요즘 한국세무사회가 초비상(?)상태하고 합니다. 혹시 난국을 타개할 만한 고언이 있다면.

"변호사가 세무기장하고 세무조정도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기장을 하게 되면 세무사 1~2명 채용해서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10년을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위 '알파고' 시대에 접근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보면, 향후 개인기장을 하는 세무사의 역할은 거의 필요로 하지 아니한 세대가 올 것입니다. 지금이야 피부로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겠지만, 우리 세무사 대부분이 기장만을 고집하며 쟁탈전을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먼 장래를 바라보고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기장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투자를 한다고 하면서 서울시내에 연탄제조공장을 신설한다는 것과 같은 투자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한일세무법인)는 35년 정도의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어떤 급변상황이 도래해도 버틸 수 있습니다.”

"즉 변호사가 세무조정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납세자의 수요는 실력 있는 대리인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들의 세무조정을 못하게 저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 세무사가 독일처럼 조세소송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말에서 번쩍이는 스파크를 느꼈다. 수세적 입장보다는 변호사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키워 변호사들의 시장을 거꾸로 공략하자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세소송이 세법인데 세무사가 조세소송을 못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독일은 세무사가 대법원까지 직접 소송을 하고 있고, 일본도 소송보좌인제를 두어 소송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세무사들은 조세심판원에서 패소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라고 세무사들의 아픈 부위를 강하게 눌렀다.

그는 이어 또 다른 해법도 전했다. "변호사, 세무사, 변리사를 하나로 통합해서 변호사로 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미국의 경우 변호사가 각각 조세담당, 민사담당, 이민담당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변호사 업무 안에 △조세소송전문 △특허전문 △형사소송 전문 △민사소송 전문 등 분야별 전문가로 나누어 질 것입니다. 이러한 통합만이 자격사간에 불필요한 경쟁을 해소하고 실력 대 실력으로 국민들 앞에 서야 할 것 입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변호사로의 통합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였다. "변호사로 통합하는 방법은 대학에서 관계법령(소송법, 회계, 세법)에 대한 각자 필요한 해당과목을 12학점이상 받은 자들에게 통합 변호사자격을 주는 것 입니다. 이렇게 되면 통합변호사로의 전환은 일시적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은 보다 질 좋은 법률 서비스를 선택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통합변호사로 발전한다면 지금의 볼썽사나운 자격사간의 싸움은 종료되고, 외국의 대형 로펌이 우리나라에 진출하여도 그 대응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에 통합변호사 제도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로스쿨제도가 생기면서 1년에 2500명의 로스쿨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습니다. 세무사600~700명, 회계사 1000여명 등 세무영역을 서비스할 전문가들이 년간4000명이 배출됩니다. 이러한 전문가 집단끼리 쟁탈전만을 해서는 변호사도, 변리사도, 세무사도, 회계사도 모두 그저 자격증 소지자 정도로 전략하는 시대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자격사간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열쇠 수십 개를 가져온다는 망상시대에서 우리 모두는 벗어나야하고 세무사, 변리사,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면 실업자 수에서 제외시키는 망상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로스쿨은 이제 전문자격사로서의 기본자격이고, 실제로 서비스하는 영역은 각각의 전문영역을 담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변호사회, 세무사회, 변리사회 등 관계자격사들의 임원진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노(老) 세무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기자의 뇌리에서 자꾸 되새겨지고 있었다.
 

▶ 한일세무법인도 힘든 점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국제조세업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제조세법에 대한 충분한 이론이 뒷받침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영어, 일본어가 필수입니다. 전화통화로 외국인과 상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일본말을 할 수 있어서 일본거래처가 많은 편입니다. 영어를 잘하면 미국의 거래처가 많을 것입니다.”

“저는 1979년 국세청 외국인세과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외국인에게 과세 할 수 있는 조세기반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의 각 지방국세청에 국제조세국이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그때부터 39년간에 걸쳐 축적된 국제조세에 대한 노-하우와 자료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도 세무서 8급 서기처럼 실무를 하고 있으면서, 또한 세무학 박사로서 연구를 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한일세무법인은 능력 있는 후계자를 뽑아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후계자를 삼을 만한 세무사를 5년 정도 가르쳐 놓으면 개인세무사로 등록하여 기장업무를 한다고 나가고 있기 때문에 참 힘듭니다. 현재 한일세무법인 홈페이지(www.haniltax.com)를 보면 세무사 초빙공고가 올려져 있습니다. 참으로 먼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훌륭한 후배들이 모여 들면 좋겠습니다."

김 박사는 기자에게 (자신의 후계자 삼을만한)훌륭한 후배세무사가 있느냐고도 물었다. 그는 그러면서 "나는 세무사로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그 사람 옆에 내가 서 있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고 보니 먹고 살아 갈 돈은 저절로 따라오더라“고 했다.

이날 기자에게 다가온 김천옥 세무사는 노장 세무사가 아니라 진정한 시대의 리더이자 전문가인 ‘세‧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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