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뜨거운 태양을 보듬은
뒤꼍 아주까리 야물게 여물어 가고
하늘은 날마다 서로 키재기하며
아이 송곳니만큼 높아져 간다
아파트 화단의 수호신 섬단풍
바람 한 점에도 사색에 잠기고
노인정 옆 공터 아이들은
한나절 내내 햇살을 수색하다 지쳐
온 세상 풍문 내려놓고
불이 켜지기 시작한 집으로 찾아든다
아이들이 흔들어 놓고 간 시소에 앉아
실어증 앓은 하늘을 쳐다보니
손으로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리 달아난 하늘
내 사랑도 허명도 그러했을까
잡으려 할수록 더욱 멀어져
지순한 마음으로 하늘 바라보듯
서로에게 가늠했던 눈금조차 내려놓고
지울 것 지우고 버릴 것 버리고 나니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누워있는
초록별 하나
[김정호 작가 프로필]
△ 1961년 전남 화순 출생
△ 2002년 시의나라 신인상으로 시, 2010년 문학광장 신인상 수필 등단
△ 시집 『빈집에 우물 하나』『부처를 죽이다』등 7권의 시집 발간
△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바다문학회 회원, 부산시인협회 회원
△ 국제펜클럽 부산지역 이사, 부산시인협회 이사, 한국바다문학이사 및 국세청 문우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