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량권 일탈·남용한 처분…해외로 빼돌릴 재산 없어 보여"
 

수억원 세금을 체납했더라도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려 했다는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A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출국금지 기간 연장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총 4억1천여만원의 국세를 체납한 상태였다.

법무부는 국세청 요청을 받고 지난해 5월 A씨에 대해 출국금지 처분을 했고, 이후 두 차례 그 기간을 연장했다.

법무부는 A씨 가족들이 필리핀에 거주했던 점, 자녀들이 해외 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재학했던 점, A씨가 필리핀 등으로 자주 출국한 점을 근거로 그가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등 체납세액의 강제집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건물 신축 때문에 많은 돈을 빌렸지만 분양이 잘 안 돼 빚을 갚지 못하는 등 경제적 문제로 체납세액을 내지 못한 것일 뿐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켰다고 볼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다소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A씨가 체납세액의 강제집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달성하려는 공익에 비해 A씨가 받게 될 불이익이 더 커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2013년 12월 면책 결정을 받은 것에 비춰 특별히 해외로 도피시킬 만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이어 "A씨와 배우자가 근로소득을 얻고도 체납액을 내지 않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소득 액수를 볼 때 생계유지와 자녀 교육에 전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의 배우자가 하루에 두 곳의 음식점에서 주방보조원으로 근무하면서 일당을 받는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 배우자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친정의 도움을 받아 필리핀으로 이주한 것이라는 A씨 주장에 대해 "필리핀 물가가 저렴한 점, 대한민국 국민 사이에 경제적 무능력으로 자녀들에게 사교육 시키지 못할 경우 좋은 대학교로 진학시킬 수 없다는 사고가 일반화된 점 등을 고려하면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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