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끌림중 작은 부분만 경험하고 살아 간다면 나머지 경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안정되고 실력 있는 고전 문헌학 교수로 인정 받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그를 존경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랐던 학생들에게 시선을 뒤로 한채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교실을 훅 떠난다.

그는 미지의 빨간 자켓을 걸친 여인이 두고간 책 한권 그리고 곧 출발하는 리스본행 야간 열차표를 쥐고 무작정 눈 내리는 새벽 스위스 베른 역을 홀연히 출발하여 포르투칼의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는다. 뭔가 강렬한 끌림에 속절없이 몸을 던진 것이다.

스위스는 내가 여행한 나라중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아름다운 새소리와 함께 공기가 청량해 머리가 가장 맑았던 상쾌함이 늘 기억되는 나라다. 묵고 있던 호텔 주변을 산책할 때는 이런 곳이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좋은 나라를 그는 왜 훌쩍 떠나야만 했을까? 일상이 무의미하고 무료하여 특별한 삶과 경험의 열망이 솟구쳤던 것일까?

웬지 리스본이란 말만 들어도 설레는데 거기에 눈이 내리는 역에서의 야간 열차라니 더욱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꽉 차있을 듯 기대했다. 아니 큰 잘못이라도 저질러 야반 도주하지 않는가라는 방정맞은 생각도 해봤다.

내가 열차를 가장 많이 탓던 때는 고딩 때일 것 같다.

고향에서 좀 떨어진 사립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때에 주중에는 학교와 기숙사 생활후 주말에는 기차로 귀향하는, 학교 기숙사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학창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차에는 먼지 한톨도 안묻었을 듯한 새 하얀 순백의 빳빳한 카라에 진한 남색 투피스 교복을 입은 통학 여학생들이 칸을 메우고 있으면 가끔 그런 여학생이 만원인 칸에 내가 앉아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였다.

몇년전 영화감상 동호인 30여명의 여인들 속의 한켠에 쌩뚱맞게 혼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내 모습과도 흡사했다.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을 통해서 잠시 내 감성의 뒤안에 있던 과거가 아름답게 반추됨을 느끼니 이런 점이 영화 감상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전 문헌학과 언어학을 가르치는 착실하고 성실하며 모범적임은 물론 실력이 빵빵한 노교수가 어느 비오는 날 출근 길에 다리 난간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빨간 코트를 입은 한 묘령의 여인을 발견하고 몸을 던져 구한다.

교실에 잠시 머물다가 교수의 수업 도중 아무 말없이 홀연히 교실을 떠난 그녀가 벗어놓은 빨간 코트속의 책 한권과 책 갈피에서 떨어져 나온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달랑 들고 부랴부랴 무엇에 쫒기듯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열차 속에서 책을 독파한 후 책속의 주인공 아마데우 프라듀의 삶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었던 여동생, 친구, 여인, 신부, 하녀, 비밀 경찰관 등 온갖 사람들과 만나 실타래와 같이 얽히고 섥힌 파란 만장한 사연들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탐방을 통해서 퍼즐 맞추듯 풀어가는 여정을 출발한 것이다.

영화속의 내용을 좀더 디테일하게 뜯어 보면,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철권 통치 체제하에서 의사인 아마데우 프라듀라는 당시 기득권을 누리던 판사인 아버지와 이념을 달리하여 반체제 레지스땅스 활동을 하여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 심화된다.

또한 이념과 가치의 대척점에 서있는 비밀경찰 멘데스가 살인마로 낙인 찍혀 동네 주민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여 죽음 직전의 순간에 살려내는 의사로서의 사명과 주변인들과의 갈등을 격게 됨은 물론 조지라는 친구와의 우정과 배신,치명적 아름다움의 팜므파탈 에스테파니아란 여성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순간적으로 무너지게 되는 아마데우의 에로스적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능을 엿볼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데우가 죽음직전에 살려준 비밀경찰 멘데스로부터 위기의 순간에 구원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 등 어쩌면 우리도 일상에서 사실적 내용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비슷하게 겪게되는 사연들을 그레고리우스는 보물을 찾듯 주인공 프라듀와 주변인물들에 대해 추적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백미는 그런 개인의 사실적 과거 현상을 관객에게 파헤치는 것만이라면 함의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반감 되고 퇴색해 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특별한 삶의 임팩트가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일 매일을 똑같은 일만 반복하던 일상을 갑자기 일탈하여 왜 홀연히 리스본행 야간 열차에 올라타야 했고,

몇권의 책을 금방 암기 할 정도로 천재적이고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순수한 영혼의 프라듀는 왜 조지의 눈동자만 바라보며 반독재 내용이 담긴 졸업 축사를 자기의 신념인 것처럼 소리쳐 낭독함으로써 레지스탕스에 몸을 던져야 했으며,

인간 컴퓨터이며 절세 미인인 에스테파니아는 순수하게 프라듀에게 순간 반했지만 결국 프로로서의 레지스탕스인 그녀는 아마추어 레지스땅스인 프라듀의 순수한 바램을 끝내 부응 할수 없었으며,

그의 친구 조지는 프로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여 뜻 대로 살라자르 체제가 무너졌지만 왜 음지에서 은신 생활을 할수밖에 없었고 ''리스본의 살인자'' 멘데스의 외손녀는 왜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 했을까?가 더욱 궁금 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는 여정을 마치고 리스본역에서 스위스 귀국 열차를 타기 위해 기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 깨진 안경을 맞춰준 여의사의 포르투칼에 남아 달라는 청을 받아 드렸을까? 장면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삶을 어떻게 대처하고 판단하며 살아갔느냐가 더 중요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판사인 아마데우 아버지는 처자식을 거느린 부모의 입장에서 어쩔수 없이 체제에 순응하며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적 가족애적 고민이 있지는 않았을까?

포르투칼에서의 삶이 낮설고 물설은 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그의 여정에 길라잡이 역할을 친절하게 해주던 그 여성과 그와의 대화와 분위기는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서로 사랑이 흐르고 끌림이 있는듯 했다.

그가 빨간 코트의 여인이 남긴 책과 티켓 하나를 들고 리스본으로 홀연히 떠나 왔듯이 정작 목석같고 변할수 없고 지루하며 고리타분할 것 같은 그도 자신에게 ''지루함을 못느끼겠다''라고 대해주는 여의사와 로맨스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삶도 시작할수 있었을 듯 하다.

또한 바싹 마른 몸으로 그레고리우스와 사랑하던 아마데우를 그리워하며 인터뷰를 하는 암기의 천재이며 프로 레지스탕스인 에스테파니아와의 대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박힌다.

"그녀는 만물이 새로운 빛으로 가득했으며 인생 전체가 환희로 가득찼던 순간이었고, 안먹어도 배가 안고프고 말도 필요없는 오묘하고도 지독한 아마데우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연민 어리고 우수에찬 눈동자와 눈빛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듯 하다.

우수에찬 여인의 눈빛에 마음이 고요할수 있는 남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에스테파니아로 하여금 만물과 인생 전체에 새빛이 드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사랑했지만 사상과 이념으로 뭉쳐진 골수 레지스땅스인 그녀가 순수한 아마데우를 이용 했을수도 있고 또한 분명히 사랑했지만 아마데우가 본인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삭정이처럼 마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데우는 아버지가 판사이고 본인은 의사로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고 상류층의 삶을 여유있게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졸업식장에서 자기 눈만 똑바로 처다보며 반체제를 외치는 내용의 축사를 읽으라는 꼬심으로 순진한 친구를 정의의 난장판으로 끌어들여 파란만장한 삶에로 견인하고 끝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를 그렇게 끌어들인 조지라는 친구는 죄책감으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지?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친구는 삶의 여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운명까지도 좋게 혹은 나쁘게 전환 시킬수 있으니 조심도 해야할 듯 하다.

다리 난간에서 죽음을 시도한 카타리나 멘데스는 자기가 존경했던 외할아버지가 인간 백정과 같이 철면피한 삶을 살았던 사실을 아는 순간 그동안 자기만 모르고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허구고 비참했을까? 그러나 외할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외손녀인 그가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지나치게 죄의식과 책임의식을 강하게 갖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동서고금의 역사속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아마 외할아버지인 멘데스도 체제와 이념의 꼭두가시로 어쩔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는 조금의 연민어린 동정을 보내 본다. 또 그에게 과연 돌팔매를 던질수 있을 만큼 당당하고 떳떳한 인간이 지구상에 많기를 바래본다.

영화속의 큰 주인공은 그레고리우스지만 또다른 주인공 프라듀와 조지 그리고 에스테파니아를 통해 파란만장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의 작고도 편린같은 삶의 한 토막을 본듯하다. 그리고 나의 작고도 소박한 삶을 그들의 삶에 오버랩 시켜본다.

그레고리우스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는 스위스의 카키라는 교장선생님에게 믿도끝도없이 끊어버리는 고집스런 그레고리우스, 또 아무 말없이 교단을 무단으로 떠난 그를 기다려주고 감싸주는 교장선생님도 인간적이고도 인상 깊었다.

성실하게 살아온 교수이기에 짜르지도 않고 기다리면서 당연히 말못할 사정이 있어 떠났으려니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어디서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상에 길들여지고 존경받고 안정된 삶을 박차고 떠나 미지의 특별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조용하나 과감한 용기와 결단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긴 기다림과 억누름이 있었기에 그리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았기에 그런 결단도 가능할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강렬하고 열망에 넘치며 충만된 삶을 그는 포르투칼에서 몇일 일지라도 구가했을 듯 하다.

누구나 인생은 단한번으로 끝난다. 살면서 스스로를 뒤돌아 보지 않고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라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새롭고 특별한 삶을 체험할수 없고 어쩌면 자신의 삶을 울타리에 가뒤 놨을때 불행할수 밖에 없다 든지 불행할수 있음을 갈파하기 위해 이 영화가 나온 것은 아닐지 궁금해진다.

불행하게 될지라도 떠날 것인지 정지상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멈칫 멈칫 할것인지 언제나 생각하며 삶을 살아 보라는 팁을 주는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자리한 두려움과 약함을 극복해야 할듯 하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라는 글귀의 묘비명을 남긴 독일의 지성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삶보다 ''나는 바라는 바가 없다. 나는 두려울 것도 없다. 나는 완전한 자유다''라고 외친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타 키스의 묘비글에 관심을 둬야 하게 되는 것은 이 영화의 교훈인 것 같다.

누구든 자기의 총체적 삶이 잘못 진행된다거나 지금의 삶이 자기가 소망하거나 꿈꾸는 삶이 이니라는 자기 내부의 음성이 들릴때 아니 삶이 가장 바람직하고 안락하다고 생각되어 지더라도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슴속에서 강렬히 용솟음 칠때 과격하고도 소리 소문없는 행동과 무음으로 우아하게 주춤거림 없이 떠날수 있을까?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The real director of life is accidents''라고 외치는 영화속 대사속에서 앞으로도 내 인생의 축을 흔들 수많은 ''무작위의 가능성''이 내재된 우연이 조우되리라 기대된다. 과연 그 감독은 얼마나 ''잔인하고 연민을 동반하기도 하고 가득한 매력''을 지녔을까? 과연 나는 언제 그런 내면의 끌림에 우연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고 던질수 있을 것인지?

인생을 살다 보면 요란한 사건만이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바뀌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수 없을만치 사소할수 있다. 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완전히 새로운 빛이나 어둠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소리없는 고요함속에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사소함과 고요함은 고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기쁨에 넘처 늘 미소를 주며 온갖 재롱을 부리는 28개월째 된 귀엽고 예쁜 손녀가 있어 호기심만 따라서 선뜻 떠나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아직은 세상에서 예쁘고 앙증맞은 손녀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손녀보다 더 큰 기쁨을 안겨주는 대상을 찾기 전에는 떠나기가 쉽지 않을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그리고 영화의 여진이 가슴에 남아 있는 이 순간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서 재음미해 본다. 영화속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내면 변화에 초점을 둘 것이냐 아니면 책속의 아마데우와 그와 함께했던 자들의 삶에 촛점을 둘것인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뭐죠? 지난 몇일을 제외하고요. 그의 삶이 특별해서 제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요''라고 내뱉는 그레고리우스의 조용한 외침 속에서 ''특별한 삶과 무의미하고 지루한 삶의 차이''를 생각해 봄은 어쩔수가 없는 이 영화의 끌림인 것 같다.' "오늘을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면서 내일이 새로워 지기를 희구한다면 정신병 초기 증세다''라고 갈파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가슴 한켠에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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