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중체납액 올 6월 8.4조…국세청, 징수가능 없으면 ‘정리보류’ 지시
체납재산 압류시 소멸시효 중단돼…국세체납 소멸시효는 ‘사실상 없다’

 

▲ 서울지방국세청 숨긴재산 무한추적팀.

대한민국에서 세금체납 1위는 누구일까.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십수년간 수천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재정확보의 최전방에서 힘써야하는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고액상습체납자 명단공개가 실시된 2004년 첫 공개 당시 체납액 1위의 불명예를 안은 후부터 14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세금을 내지 않아 계속해서 체납액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7년 국세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의 체납액은 1992년 증여세 등 총 73건으로 무려 2225억 여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국세청 홈페이지 고액체납자 명단의 상단을 줄기차게 고수하고 있는 정 전 회장의 명단은 언제쯤 사라지는 것일까.

◆ 정부, 고액.상습체납 정리위해 명단공개 등

국세청은 성실납세자가 존경받는 성실납세문화를 정착시키고, 공정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체납세금의 납부를 회피하거나 재산을 은닉하는 체납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2004년부터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명단공개를 실시했다.

고액·상습체납 명단공개 대상자는 체납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고 2억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사람으로, 국세청은 이들에 대한 은닉 재산 추적조사 및 출국규제, 민사소송과 형사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특히 재산을 숨긴 채 호화생활을 하는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해서는 추적조사 등 끝까지 추적해 엄정 조치하고 있다.

세정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은 올해에도 이들 고액체납자를 중심으로 체납정리에 대한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실익 없는 압류 물건은 해제하여 소멸시효가 진행되도록 해 영세사업자에 대한 재기를 돕도록 각 일선세무서에 시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 27조 체납액 중 얼마나 징수했나 살펴보니, 현금징수액 10.3조원(38%)

그렇다면 국세체납액은 얼마일까.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체납발생총액은 27조1269억 원이다. 이중 현금으로 징수해 정리가 끝난 금액은 10조3497억 원이며, 징수가능성이 없어 정리를 보류시킨 금액이 8조2766억 원, 기타 1조5004억 원 등이다. 따라서 남은 징수해야할 세금인 정리중체납액은 7조2억 원이다. 정리보류액까지 합하면 15조2700여억 원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이 중 정리중체납액은 지난해 6월 기준 6조8000억원에서 올해 6월 현재 8조4000억원으로 1조6000억원이 증가해, 국세청은 고액체납자를 중심으로 체납정리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2014년 7조8482억원이었던 정리중체납액은 2015년 7조2436억원, 2016년 7조2억원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올해 6월 현재 8조4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에따라 국세청은 올해 6월 기준 8조4000억원으로 늘어난 정리중체납액을 줄이기 위해 징수가능성이 없는 체납은 정리보류로 처리해 정리중체납액이 줄어들 수 있도록 일선 세무서에 시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 국세체납 소멸시효 5년…세금 안 내고 ‘버티기’ 가능할까?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며, 5억원 이상의 국세는 10년이다. 즉 국가가 5년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체납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세금을 내지 않고 5년만 버티면 내야할 세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납세고지 △독촉 또는 납부최고 △교부청구 △압류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소멸시효는 중단되고 납부기간이나 압류해제의 기간이 지난 뒤 다시 5년간의 소멸시효가 새롭게 진행된다.

즉 소멸시효 5년 안에 납세고지를 받고, 납세고지에 적힌 납부기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다시 5년간의 소멸시효가 시작되므로, 사실상 세금의 소멸시효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체납자의 재산이 압류되면 그동안 소멸시효는 중단되므로 압류가 해제되기 전까지 체납액의 소멸시효는 끝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십수년간 2225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지만, 국세청이 납세고지 및 재산을 압류하면서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아 해마다 고액상습체납 명단공개 대상자의 맨 꼭대기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체납된 2225억원의 세금 중 2223억원을 납부해 내야 할 세금을 2억원 이하로 낮추거나, 국세청이 징수권을 포기해 권리행사를 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되면서 명단공개에서 빠질 수 있다. 또한 체납자가 사망한다면 명단공개 대상자에서 빠지게 된다.

체납자가 체납세금을 내지 않은 채 사망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자의 사망 시 체납자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있다면 재산을 계속해서 압류하는 등 징수는 계속 된다”며 “또한 자녀가 재산을 상속받을 시 체납도 함께 상속돼 자녀에게 납세의무가 승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산보다 체납액이 많다면 상속을 포기하게 되므로, 상속자도 없으며 은닉 재산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해당 체납액은 결국 징수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경우처럼 재산을 숨기거나 해외로 도피해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와는 달리, 영세사업자가 폐업하면서 돈이 없어 내야할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는 체납세액 때문에 신규로 사업을 시작하거나 회사에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어 국세청은 올해부터 ‘체납액 소멸제도’를 도입해 시행에 들어갔다.

체납액 소멸제도는 지난해 말 이전 폐업한 자영업자가 신규 사업을 시작하거나 취업을 한 경우 1인당 최고 3000만원 한도 내에서 밀린 세금을 소멸시켜주는 조치다.

이와 관련 6개 지방국세청 중 가장 많은 세수를 거두고 있는 서울지방국세청이 7월말 기준 체납액 소멸제도 승인건수가 200여건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돼 매우 저조한 실적을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체납액 소멸제도에 대한 홍보를 적극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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