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 조선시대. 폭군 연산을 몰아내고 중종을 새 임금으로 옹립한 중종반정이 성공했다. 태조 이성계 이래 왕을 세운 세력들의 힘이 그러했듯 당시도 공신봉록이 있었고, 그 세력들의 힘은 막강해졌다. 특히 중종반정은 신하들이 직접 왕을 몰아내고 새 임금을 추대했다는 점에서 반정공신들의 힘은 무소불위 그 자체였다.

더욱이 중종반정의 성공은 공신숫자만 백여 명을 훌쩍 넘었다. 태조 때 수십 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서너 배가 넘었다. 문제는 공신이 되면 벼슬과 노비를 하사받고, 토지도 얻었다. 그리고 공신전은 세금도 내지 않았다. 엄청난 특혜였다. 그러나 이들 훈구세력들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초심을 잃었다. 일반인들의 땅을 빼앗았고, 상업에도 개입했고, 공물을 대신내주는 방납 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점차 국고는 비어갔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그러자 중종은 개혁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한 이가 ‘조광조’였다. 그 유명한 공신들의 위훈삭제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대단했다.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될 것이다)이라는 글자에 꿀을 발라놓고 벌레들이 갉아먹게 했다. 조광조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공작이었다. 결국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중종은 ‘조광조를 사사하라’는 명을 내렸다.

개혁은 이처럼 꼭 필요하면서도, 또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는 ‘촛불혁명으로 불리는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고,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서 백성들의 힘에 의해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리고 민주당 정부의 수장이 새 대통령으로 탄생했다. 새 대통령은 헌법이 정해놓은대로 정부 부처의 수장들을 교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다. 과거 정부와는 완전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국가를 움직이는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촛불의 힘은 지방정부의 구성원을 선출하는데도 쭉 이어져 지방정부까지 완전히 민주당이 장악했다. 혁명이라고 한다면 시민혁명의 완성이었다.

그리고 새 정부는 오늘(18일) 문재인 정부들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처럼 우리민족의 최대 숙원인 통일을 향한 발걸음으로 남북화해를 택했다. 국민들은 불안한 대치보다는 불안하지만 안정되어 보이는 화해에, 과거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점수를 주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솔직히 일반 서민들은 대통령이 누가되던, 통일이 되던 그렇지 않든, 하루하루 먹고사는데 관심이 더 크다. 그래서인지 경기가 나빠지면서 그리고 새 대통령이 청와대에 상황판까지 만들어 국정의 제 1순위에 두겠다고 한 일자리정책은 ‘실패’의 길로 들어서면서 민심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러자 대통령은 지지도 때문인지 여전히 경제에 앞서 ‘적폐청산’을 화두로 던졌고, 밀고나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우리사회는)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사회가 되고 말았다. 국가권력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면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도 권력기관으로 불린다. 국세청의 권력이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까. 그렇다면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을 펼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국세청에는 전혀 그런 낌새조차 없다.

그러나 국세청 바깥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전직 국세청 고위직에게 물어봤다. 그는 “일 잘하는 사람이 종종 특별한 이유없이 사표를 종용받고 국세청을 떠나는 국세청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좀 더 근무하고 싶었는데 ‘명퇴’라는 국세청만의 관행이 맘에 안드는 모양이었고, 또 조그만 문제가 부풀려져 사건의 무마를 위해 사표가 종용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새삼 강조한 ‘적폐청산’의지를 접하면서 ‘세금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생각을 가진 기자는 지금 대한민국의 세금은, 세정현장의 적폐는 무엇일까, 그리고 고쳐지고 있을까 반문해 보았다, ‘특권과 반칙이 사라지고, 특히 국가권력이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대통령의 말 이전에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편들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이후 국세청의 개혁에 바라는 국민들의 관심은 ‘과거에 국세청이 저질렀던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그래서 ‘세정개혁TF'가 발족되었고 활동을 마쳤다. 그런데 기자의 기억에는 현 국세청장이 “세무조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확인된 것에 대해서는 국세행정을 책임지는 국세청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민의 신뢰를 토대로 존재하는 국세청에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문을 읽은 뒤 감사원에 그런 세무조사들이 정치적이었는지를 감사해 달라고 의뢰한 것이 전부다.

어떤 누구에게도 티끌만큼의 책임도 지우지 않았고, 국세청장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이었다. 국민들을 솔직히 졸(卒)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외치지만 국가권력은 말로만 되뇌일 뿐 행동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곰비임비 나온다.

이것 말고 국세행정 주변의 적폐는 없을까. 대통령이 언급한 반칙과 특권, 국가권력의 사유화는 없을까. 국세청 고위직을 지내면 대기업들의 사외이사나 고문을 하면서 고액의 금전을 받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일까. 방패막이 일까. 세무서장을 마친 후 곧바로 관내에서 세무사로 개업을 하고, 주변의 기업들로부터 고문료를 챙기는 것은 무엇일까. 세무사들이 사무장을 고용하여 사무장에게 월급을 받는 ‘명의대여’는 또 무엇일까. 국세청 고위직을 지냈다고 하여 큰 기업에는 안되고 작은 기업에는 취직을 해도 된다는 것은 또다른 반칙은 아닐까.

1999년 국세청이 제2의 개청이라면서 각종 개혁조치를 밀어붙이며 떠들썩하던 시절, 우리는 수십년간 세정가에 똬리를 튼 ‘지역담당제’를 폐지하면 세원관리가 아예 방치될 것이라는 우려와 거센 반발이 있었던 것을 경험했다. 그러나 세원관리는 소위 과학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더욱 나아졌고, 세정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잘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국민들에게는 ‘특권과 반칙’으로 여겨지고, 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세정가의 주변에서 단단한 똬리를 틀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 익숙한 것과의 이별, 누가 해내야 할까. 오롯이 이 시대 국세청 호(號)의 조타(操舵)를 잡은 국세청장의 몫이다. 훈구대신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이 따를 것이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후세는 그를 세정가의 ‘조광조’처럼 기록할 것이다. 자신의 영달이 아닌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몸부림 친 몇 안되는 국세청장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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