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출신~내부인사~외부인사 등 롤러코스터에 연이은 구속의 ‘흑역사’까지
 

▲ 2017년 6월 29일 제22대 한승희 국세청장의 취임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 국세청]
▲ 한승희 국세청장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국세청]
▲ [사진: 국세청 홈페이지]

1966년 발족 당시 700억원의 세수입을 올렸던 국세청이 지난해에는 무려 255조원이 넘는 세수를 거두어들이면서 국가재정확보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다. 약 반세기 만에 3600배가 넘는 거대한 성장을 이룬 것이다. 과거엔 징세였고, 지금은 납세로 달라지긴 했지만.

또한 현재의 국세청 역할은 국가재원조달이라는 징수의 역할 뿐만 아니라 EITC 등 분배의 기능도 담당하면서 국가를 움직이는 주요 핵심부처 중에서도 단연코 그 역할의 비중이 적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기획재정부 외청이지만 국세청은 검찰, 경찰, 국정원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장관급인 검찰총장, 국정원장과는 다르게 국세청장과 경찰청장은 차관급으로 분류되며, 그 중에서도 경찰청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임기제로 운영되고 있으나 국세청장은 그렇지 않다.

이에 따라 정권이 바뀌면 자연스레 국세청장은 교체되고, 언제 어떠한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지 모르는 위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국세청장은 불법 대선자금 모금인 세풍사건, 대통령 차남의 청탁에 의한 세무조사 무마 등 정치권력에 휩쓸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 왔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국세청장의 임기를 정해두는 국세청법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어느 역대 정부에서도 통과된 적은 없다.

세정일보가 창간 5주년을 맞아 역대 국세청장들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어떤 사람들이 국세청장으로 임명되어 왔는지를 조목조목 분석해봤다.

◆ 국세청장, 군인 출신→순수 국세청 출신→외부 청장 임명되기도

초대 이낙선 청장부터 현 한승희 청장까지 반세기동안 총 21명의 국세청장이 임명됐다. 추경석 청장이 8대, 9대를 연달아 지내 현 한승희 청장은 제22대 국세청장이다.

먼저 국세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국가재정확보를 위해 국세청을 발족했다. 1967년부터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1996년 3월 3일 발족한 국세청은 초대 청장으로 조세행정특별조사반의 활동으로 큰 성과를 올린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군인 출신 이낙선 청장이 임명됐고, 2대 청장으로는 해병대 출신의 오정근 청장이, 3대 청장 역시 군인 출신의 고재일 청장(육사8기)이 임명됐다. 특히 고재일 청장의 재임기간은 무려 5년 9개월(73.9.~78.12.)로 최장수 국세청장이다.

이처럼 1966년부터 1978년까지 12년의 시간동안 군 출신의 청장들이 국세청장으로 활약하면서 강력한 조세권을 행사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제4대 청장으로 김수학 청장을 임명했다.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세제를 통해 이제는 국세청의 내실이 필요한 시기였고, 국세청의 일방적인 세정집행에서 납세자와 함께하기 위한 개선이 필요한 때였다. 김수학 청장은 보통학교(초등학교) 출신으로 대구시장, 충남도지사, 경북도지사를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이후 전두환 대통령은 군인출신의 안무혁(육사14기), 성용욱(육사15기) 청장을 5·6대 국세청장으로 임명했다.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산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납세자가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지 않거나 부가가치세 부당환급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다시 군 출신의 국세청장이 활약하는가 싶었지만 성용욱 청장은 재임 중 아내가 돈뭉치를 받은 사실이 문제가 돼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고 7대 국세청장으로 서영택 청장이 임명된다. 서 청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천안세무서 총무과장, 군산세무서 조사과장, 재무부 세제국장 등 일선생활을 거친 순수 세무인의 국세청장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8·9대는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청장, 국세청 차장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추경석 씨가 청장에 올랐다. 추 청장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9대 청장으로 다시 신임받아 재임명됐다. 당시 문민정부는 부패척결, 경제활성화 등을 강력히 추진해 금융실명제 세무대책 등 국세청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였고, 유일하게 차기 정부까지 연임한 청장으로 기록됐다.

이어 10대 청장에는 제2회 행정고시 출신의 임채주 청장이 임명되면서 행시출신 청장 시대가 시작된다. 이후 IMF 등으로 인해 어려워진 국가상황은 국세행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됐고 국민의 정부에서 11대 이건춘, 12대 안정남, 13대 손영래 청장 등이 활약, 강도 높은 국세행정 개혁을 펼친 시기다. 안정남 청장은 김대중 정부들어 임명된 첫 호남출신의 국세청장이기도 하다.

안정남 청장과 손영래 청장이 부정축재, 썬앤문그룹 감세청탁 등 잇따른 부정부패 의혹에 휩싸이자 참여정부 들어 14대 국세청장으로 외부인사인 이용섭 청장이 임명됐다. 이용섭 청장은 첫 인사청문회를 거친 국세청장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국세청은 권력기관에서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내부 출신인 15대 이주성 청장, 16대 전군표 청장, 17대 한상률 청장을 임명하지만 이용섭 청장 이후 모두 각종 비리에 휩싸여 불명예 퇴직하는 등 문제가 계속됐고, 이명박 정부에서 18대 청장으로 공정거래위원장(장관급)을 지낸 백용호 씨를 국세청장(차관급)에 임명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그렇게 임명된 외부인 인사 뒤로 현재까지 내부 승진자가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19대 이현동 청장, 20대 김덕중 청장, 21대 임환수 청장, 그리고 현재 22대 한승희 청장이다. 한편 이현동 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하는데 가담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1심은 무죄였다.

◆ 국세청장 출신지역 ‘대통령’과 같으면 될 임명확률 높다

이들 국세청장의 출신지역을 살펴보면 당시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인 사람이 임명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국세청장 21명 중 대통령과 동향인 청장은 11명(52.4%)으로 집계됐다. 즉 통계상으로 살펴보면 두 명 중 한명은 반드시 대통령과 동향이라는 뜻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북 구미 출신이다. 초대 이낙선 청장(경북 안동), 김수학 청장(경북 경주)도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이다. 이어 전두환 대통령은 경남 합천 출신이며, 당시 성용욱 청장(경남 산청)이 동향이었다.

또 노태우 대통령과 서영택 청장은 같은 대구 출신이며, 이어 추경석 청장 역시 부산으로 같은 영남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경남 거제 출신이며, 임채주 청장이 경북 포항으로 영남이라는 같은 꼴이었다.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첫 호남출신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 이후부터는 안정남(전남 영암), 손영래(전남 보성) 청장 등 호남출신의 국세청장이 임명됐으며,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전남 함평 출신의 이용섭 청장까지 잇따라 호남 출신 청장이 임명됐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주성 청장(경남 사천), 이명박 정부(경북 포항)에서 이현동 청장(경북 청도), 박근혜 정부(대구)에서 임환수 청장(경북 의성) 등 또다시 영남 출신자들이 임명돼 호남 출신 청장은 단 한 번도 탄생하지 못했다.

영.호남으로 구분할 시 21명 중 영남 출신자 9명(42.9%), 호남 출신자 3명(14.3%)으로 집계된다.

◆ 국세청장, 행정고시 출신자가 ‘독식’

군사정부에서 초대 이낙선 청장부터 추경석 청장까지 군인 출신 청장시대를 지나 문민정부 들어 행정고시 출신의 청장들이 임명되기 시작한다. 행시2회의 임채주 청장이 행정고시 출신 청장의 시대를 열었고, 이건춘(행시10회), 안정남(행시10회), 손영래(행시12회), 이용섭(행시14회), 이주성(행시16회), 전군표(행시20회), 한상률(행시21회) 청장까지 전원 행시출신으로 임명됐다.

이어 백용호 청장은 행정고시 출신은 아니지만 외부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백 청장을 제외하고 나면, 이현동(행시24회), 김덕중(행시27회), 임환수(행시28회), 한승희(행시33회) 청장까지 전원 행정고시 출신만이 국세청장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2월 기준 국세청 2만여 공무원 중 6급 이하의 직원이 전체의 92.3%를 구성하고 있다. 나머지 5급 이상인 7.7%의 인원 중에서도 행정고시 출신자만이 약 30여 년간 국세공무원으로 근무해야 국세청장으로 임명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출신대학별로 살펴보면 서울대 출신이 5명(23.8%)으로 가장 많았으며, 연세대·건국대·중앙대·동아대 출신이 각각 2명(9.5%), 성균관대·전남대·경북대·영남대 출신이 각각 1명(4.8%)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 밖에 오정근, 김수학 청장은 학사 출신이 아니며 안무혁, 성용욱 청장은 육사 출신이다.

◆ 어떤 코스 거쳐야 승진하나?

앞서 군사정부 시절 군인출신의 국세청장 등을 제외하고 문민정부가 시작된 이후부터 청장들의 승진코스를 살펴보면 다양한 경력이 있지만 공통분모를 살펴보면 행정고시 출신으로 세무서장→조사국장→지방청장→국세청 차장→국세청장의 코스를 밟는 것이 정통 엘리트코스인 것으로 분석됐다.

행정고시로 5급 사무관 임용이 된 이들은 일선세무서 운영지원과장 등 일선에서의 근무부터 시작한다.

추경석 청장은 익산세무서장, 이리세무서장(직무대리), 동래세무서장, 동부세무서장, 을지로세무서장 등 관서장을 맡았고 이후 지방청과 본청으로 이동했다. 중부국세청 간세국장, 국세청 감사담당관, 국세청 조사국장까지 근무한 후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이어 국세청 차장, 그리고 국세청장까지 근무했다. ‘정통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은 셈이다.

임채주 청장은 남대문세무서장,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차장 직을 역임했고, 이건춘 청장 역시 제주·개포·반포세무서장 등을 역임하고 경인·중부·서울지방국세청장을 거쳐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이어 안정남 청장은 벌교(직무대리)·목포·광주·강동·남산·광화문세무서장을 지내고 광주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을 지낸 후 국세청장에 임명됐으며, 손영래 청장은 제주·남부산·부산진·수원·관악·남대문세무서장을 지냈으며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했다.

이용섭 청장은 외부인 출신이지만 행시14회로 국세심판원장(조세심판원), 재경부(기재부) 세제실장 등 재경부에서 근무하다 관세청장을 지낸 후 곧바로 국세청장에 임명된 케이스다.

이주성 청장은 거창·마산·수원·서부세무서장, 부산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을, 전군표 청장은 장항·춘천세무서장, 그리고 서울청 조사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차장 등을 역임했다. 이어 한상률 청장은 천안·논산·삼성세무서장, 서울청 조사4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을 지내고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백용호 청장은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이화여대 교수로도 근무했으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 등을 지냈다. 이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 제14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 이후 국세청의 각종 비리사건으로 인해 외부인 인사로 제18대 국세청장에 임명된 인물이다.

아울러 이현동 청장은 의성·구미·강동세무서장 등을 지내고 지방청 조사국 등에서 근무하다 08년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파견을 다녀와 곧바로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김덕중 청장은 천안세무서장, 서울청 조사국장, 국세청 기획조정관, 대전·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을 역임하고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임환수 청장은 세무서장은 단 한번, 고양세무서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청 조사국 및 중부청 조사국 등 조사국에서 꾸준히 근무하다 본청 조사국장에 이어 법인납세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승진, 국세청장까지 올라섰다. 현 한승희 국세청장도 예산세무서장에 이어 조사국 근무경험이 긴 ‘조사통’ 출신으로 서울청 조사4국장, 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한편 국세청장 직전 보직만을 살펴본다면 문민정부 이후 12명의 국세청장 중 국세청 차장에서 국세청장으로 승진한 것은 7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청장에서 국세청장이 된 경우는 4건, 중부청장에서 국세청장으로 올라간 경우는 1건 등으로 분석되면서 국세청 차장이 다음 청장으로 가장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다.

◆ 국세청에 ‘외부인 청장’이 올 수밖에 없는 이유

1960년대 대한민국은 세수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개발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수를 안정적으로 조달해야하는 필요성이 있었다. 이같은 시대적 배경 하에 국세청이 출범했고, 당시 군사정권에서는 군인 출신을 국세청장으로 임명해 세수 조달에 힘썼다.

이후 문민정부에서부터는 국세청 출신 중에서 국세청장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내부의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세무공무원들이 국세청장에 임명되는 것은 유지되고 있지만 이용섭, 백용호 청장과 같은 외부인 청장이 임명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국세청이 가진 ‘세무조사’라는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세청장은 국세청 내부의 상황을 잘 알고 세금에 대한 전문지식을 보유한 세무공무원 출신 중에서 임명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진다. 국세공무원들은 개인과 기업의 자금흐름을 살펴보고 세금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는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검찰 고발 등 각종 제재까지 가능한 국세청 고유의 ‘세무조사’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눈앞의 ‘검은 돈’에 현혹되기 쉬운 자리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개인사정에 의해, 누군가는 승진하기 위해, 누군가는 윗선의 지시로 인해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에 휘말리게 된다. 이에 따라 국세행정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바닥까지 떨어지자 정부는 내부인 출신이 아닌 외부인이 국세청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앞서 안무혁, 성용욱 청장은 98년 대선 당시 불법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으며, 임채주 청장은 유명한 불법 대선자금 모금사건인 세풍사건으로 인해 유죄를 선고받는 등 정치적인 문제로 국세청에 불명예를 안겼다.

이어 안정남 청장은 부동산 투기의혹 등으로 국세청장 직후 건설교통부 장관 영전 23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손영래 청장은 썬앤문그룹 감세지시 등으로 세무조사권한을 마음대로 휘둘러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에 세제실장 출신인 이용섭씨가 국세청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다시 내부승진자인 이주성 청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 그리고 전군표 청장은 인사청탁 및 뇌물수수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뿐만 아니라 CJ그룹 세무조사 무마청탁을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어 한상률 청장은 학동마을 그림로비, 성탄절 골프회동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등 잇따른 국세청장의 청렴‧도덕성에 의심가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공정거래위원장인 백용호 씨가 국세청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잠잠하던 국세청장의 흑역사는 다시 이현동 국세청장이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으로 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 수사를 돕고 뇌물을 받는 등의 혐의로 현재 법의 심판을 받으며 국세청의 흑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국세청장으로 임명된 현 한승희 국세청장은 취임 직후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을 뿌리 뽑기 위해 ‘국세행정개혁 TF’를 발족하고 그간 국세청의 조사권이 남용되는 사례들을 수집 분석해 발표하는 등 공정하고 공평한 국세행정을 위한 노력에 힘쓰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소위 자영업자 프랜들리 세정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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