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작은 법인은 공직자 취업제한 없어…법제도 보완 필요성

상당수 대형회계법인은 세무업무를 담당하는 소규모 세무법인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실상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세무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공직자의 취업 제한 규정을 피해 전관을 영입하기 위한 창구로 악용된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려는 국회의 움직임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9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성공세무법인에서 일하는 전직 조세심판관 B씨는 최근 현직 심판관에 전화를 걸어 삼정KPMG가 대리한 사건의 심의를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해당 사건은 기각되면서 B씨의 '부탁'은 조세심판원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 담당이 아닌 사건을 자신이 일했던 조세심판원의 현직 심판관에게 은밀히 부탁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전관 로비'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왜 B씨는 삼정KPMG가 아닌 성공세무법인 소속으로 부탁 전화를 했을까.

올해 고위공무원으로 조세심판원을 퇴직한 B씨는 삼정KPMG에 취업할 수 없다.

고위공무원은 연 매출액 100억원 이상인 법무법인·회계법인에는 원칙적으로 퇴직 후 3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한 공직자윤리법 때문이다.

다만 연 매출 5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성공세무법인에는 퇴직 직후 '직행'할 수 있었다.

삼정KPMG와 성공회계법인은 지분 관계는 없지만 업무 제휴를 맺은 관계다. 하지만 이번 사적 접촉과 관련해 삼정KPMG와 B씨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삼정KPMG 관계자는 "성공세무법인과 밀접하게 협업을 하는 관계는 맞지만 파트너와 오너가 모두 다른 회사이고 B씨는 삼정과 관련이 없다"며 "B씨가 현직 상임심판관과 우리 사건과 관련해 사적 접촉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B씨는 "성공세무법인은 삼정KPMG 내부에 소속된 다양한 법인 중 하나"라고 말해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다.

삼정KPMG가 성공세무법인을 통해 전직 고위공무원을 영입해 사건 로비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공생구조는 재취업을 원하는 고위 공직자의 욕구와 '전관'을 이용하고자 하는 대형회계법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꼼수'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취업구조는 이미 공직자윤리법상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B씨의 취업 자체는 공직자윤리법상 문제가 되지 않지만 취업제한기관의 업무를 처리하거나 조언·자문을 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만약 대가를 받았다면 공직자윤리법상 취업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관을 위한 공생구조는 대형회계법인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삼정뿐 아니라 다른 국내 대형 회계법인 대부분 이런 매출액이 50억원이 넘지 않는 '미니 세무법인'과 파트너십을 맺고 업무 협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니 세무법인에 취직한 국세청·조세심판원 출신 공무원도 상당수 있으며, 이들은 '로비'의 대가를 일부 성과급 형식으로 건네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대형회계법인과 미니 세무법인은 공식적으로는 지분 계약을 맺지 않은 협업관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형회계법인의 사건과 관련해 미니 세무법인이 활용될 때에는 하나의 법인인 것처럼 두 법인 간 밀접한 관계를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대형회계법인이 미니 세무법인을 두는 것은 세무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회계법인 소속 세무사는 세무사협회에 등록이 어렵다는 점도 별도 세무법인을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끼법인을 둬서 전관 영입 규제를 피하는 사례는 세무법인뿐만 아니라 법무·회계법인에서도 다수 있는 관행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회계법인이 미니 세무법인을 전관 로비의 꼼수로 일부 활용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공직자윤리법의 취업 제한 조항을 더 꼼꼼히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공직자의 재취업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 의원은 "공직자 재취업 제한 대상을 대형로펌, 회계법인의 자회사, 관계사는 물론이고 이해관계를 지속해서 공유하는 곳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공직에 오래 근무하면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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