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처럼 흰 눈이 듬성듬성 앉아있고 구름이 정상을 살짝 가린 한라산을 보노라면 고요가 찾아온다. 창문 밖에는 쌀쌀한 기운이 나무와 깃발 사이를 맴돌지만, 창문 안은 바람이 없어 오히려 따습다. 고뇌와 세월이 만든 흰 머리카락과 주름진 이마 그리고 안경 너머 생각에 잠긴 눈을 지닌 자크라캉처럼 욕망이론을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바라봄을 즐기면 될 때도 있다. 무념이 주는 평화다. 어쩌면 죽음이 저와 같지 않을까. 어떤 이는 걸으면서 사유도 하고 안식도 찾는다고 하지만 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삶의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욕망의 그늘에서 피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고 끊임없이 살아오는 그로 인해 항상 욕구불만이고 불안하다. 되도록 풍경이 주는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싶지만 삶은 이런 호사를 오랫동안 내버려두지 않는다. 새가 날기 위해 날갯짓을 하듯 인간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그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벌레 같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존재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검은 구름 뒤에 숨어있는 천둥이거나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다. 쫓아내거나 도망가고 싶지만, 섣불리 벗어날 수가 없다. 가면을 벗기고 실체를 파악하고 싶은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로 인해 불면의 밤이 방문을 노크하고 불면의 밤은 고통과 무기력증을 가져오기도 한다. 과거의 언행이나 업보에 의한 막연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저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며 흔들리는 갈대처럼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이라는 손님을 어이할까.
 

이모할머니에게도 손님이 찾아왔는지 모른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할머니께서 모 사찰의 납골 추모공원을 구경 가고 싶어 하시니 같이 가잔다. 그녀는 이 세상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 자신의 흔적을 남길 장소를 구하려는 듯하다. 그것은 남아있는 자의 몫인데 그마저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걷기 버거운 다리로 저리 나선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삶도 참 박복하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자식이 없어 양아들을 두었는데 아들 걱정으로 맘이 편할 날이 없다고 한다. 아들이 조선족 여인과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지금은 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집을 나갔단다. 며느리는 식당 등에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억척같이 돈을 버는 모양이다. 그런데 돈이 대부분 처가로 나가는 눈치다.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타국으로 시집을 와 같이 온 가족까지 챙기려고 하니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인 이모할머니에게는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시어머니 모시기를 저어하는 모양이다. 이모할머니는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저 잘 살아주기만 바라면서 외로움과 아픔을 홀로 견뎌온 인생이다. 아들에게 눈치 주지 않기 위해서 며느리의 원대로 홀로 생활하는데도 저들의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항상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가 몸에 배신분이라 손수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 두고 싶은 것이리라. 죽어서도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이모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짠하다.
 

어머니도 이모할머니의 핑계를 대셨지만, 한라산 자락에 부처님이 모셔진 그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흘러가는 얘기로 들어서 잘 알고 있는 터다.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이 모인 가운데서 의논 한 일도 아니고, 당장 눈앞에 닥친 매우 급한 일도 아니라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머니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형님은 생활이 팍팍하고 고단하여 여유가 없다. 동생은 육지에 나가 있어 샛놈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동행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를 따라 동행하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성격상 살갑게 아양을 떨지 못해도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다. 어머니는 눈물로 나를 키우셨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을 어찌 다 갚으랴마는 어머니의 멍든 가슴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안치단은 이미 분양된 곳이 많았다. 게다가 전보다 가격이 올랐다. 어머니는 명당자리를 다른 사람이 모두 차지해 버릴까 걱정하는 소릴 한다.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마도 부처님 잘 보이는 곳이 어머니로서는 명당자리인가 보다. 이모할머니는 부부단은 싫다고 한다. 생전에 많이 다투어서 그렇단다. 저승에 가서도 다투기는 싫다고 손사래 친다. 아마도 영혼이 되어서는 그리움이 깊어져 싸울 일이 없겠지. 저승에서는 절대로 싸우는 일은 없다고 말해주니, 이모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내도 고개 끄덕이며 부처님처럼 미소 짓는다.  
 

이모할머니와 어머니가 자리를 정한 것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단 안치단 비용은 아내와 의논하여 샛놈*인 내가 사는 걸로 하기로 했다. 가족 모두와 상의한 상황이 아닌 약간은 충동적인 면이 있기는 했다. 어머니는 나중에 형제들에게 공동으로 부담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신경이 쓰인다. 동생들은 서로 공동 부담하겠노라 약속하고 반기는 분위기다. 문제는 형수님이다. 섭섭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어찌 됐든 상의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부분에 대해 아내가 몇 번이고 사과했다.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그때만 수긍하는 척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싫은 소릴 하곤 다닌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챙기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어른이 되는 게 만만하지 않음을 알겠다. 형수님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형님과의 불화가 형수님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물론 가장으로서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경제적 파탄에 직면한 형님의 처지를 탓할 수밖에 없는 서글픔이 있다. 살다 보니 불안과 우울이라는 손님이 찾아왔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삶이 어려우면 누구에게나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리라.
 

꿈은 참으로 기괴하기도 하다. 분명 몸은 하나인데 사지가 갈려서 제각기 날개를 달고 도망치려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육체며 의식이다. 인간이기에 더 나은 욕망을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막연한 불안감에 떨고만 있다면 누가 구원을 해줄 것인가. 낯선 것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낯선 손님에게 굴복하고 말리라. 우리를 지배하던 불안도 우울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추억을 잉태하기 위한 약간의 미열 같은 것이다. 감기와도 같이 생겨났다가 소멸하고 또다시 생겨났다가 소멸하곤 한다. 그러니 감당하지 못할 존재도 아니다. 살다 보면 우리가 맞아야 할 그야말로 곧 떠나갈 손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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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라는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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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작가 프로필]

△ 현재 거창세무서 근무
△ 2010년 계간 『에세이문예』로 등단 ·
△ 애월문학회 회원
△ 제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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