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그곳 그길, 無何有之鄕에 안기다.

이제 가을이 곳곳에서 떠나려 한다. 입동이 지났으니 미련이 남은 가을 외는 떠났어야 맞을 것 같다. 만추지우와 입동지우가 다정하게 부슬부슬 함께 내리는 것을 보니 가을과 겨울이 교대식을 하는 듯하다.

봄에 푸른 잎으로 시작한 온누리가 한여름 폭우와 폭염 속에서 농염한 짙은 녹색으로 변하더니 가을이 되니 온천지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수채화로 변하였다. 자연이 인간에게 무료로 주는 선물이다.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 등 그야말로 색의 향연이다. 봄에는 만화방창 꽃의 향연이요. 여름에는 녹색의 향연 이라면 가을은 온갖 형형색색의 단풍의 향연이다. 이젠 그 아름다운 단풍이 낙엽으로 여기 저기 하염없이 뒹군다. 채움에서부터 비움의 미학과 적기를 알려 주기라도 하는 듯 하다.

언제부터인가 꽃보다는 단풍에 더 마음이 끌리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가슴 심연에서부터 일기 시작하였는데 유엔에서 정한 기준에 의하면 아직 청년의 나이인데 아마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좀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금년에는 무엇이 그리 바빳던지 흔히 가을이면 누구나 한번씩 이산 저산으로 가는 단풍놀이나 등산 혹은 둘레길 트레킹조차 가보지 않은 것 같다. 가을을 유난히 타던 내가 이제 감성발이 줄어든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세월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마침 11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국세동우회 문우들과 단양을 거쳐 예천과 문경일대의 관광과 문화 탐방을 가게 되어 그나마 만추의 정취를 흠뻑 만끽하고 가을과 조우할 수 있었음은 다행이다. 문자 그대로 가을에 풍덩 빠져 물씬 허우적댔다.

단양 팔경중 명소인 사인암 앞에 잠깐 주차 후 단풍으로 둘러싸인 괴암과 절리 앞에서 단체 사진이나 개인적으로 사진 한방 찍는 것으로 여정의 에피타이저로서 첫맛을 장식했다.

고려 시대 임금을 모시던 벼슬인 정4품 즉 주사급의 사인 우탁이라는 관료가 이곳에 머물고 갔다하여 성종때 단양 군수가 사인암이라 명명했단다. 괴암이기는 하나 뜯어보니 우아한 자태가 엿보인다.

여행을 하다보면 지명이나 하나하나의 사물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연이나 스토리를 품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러나 그런 호기심없이 사연을 막연히 지나치고 지역이나 사물을 스쳐 지나가 버리면 그냥 가볍게 관념적이거나 감성적으로만 느끼게 되는 얕은 여행이 되기가 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의미가 없다라는 뜻은 아니다.

예천에서는 삼강 주막과 회룡포 그리고 김용사와 대승사를 연이어 들리는 릴레이식 여행을 하였다. 삼강 주막은 예천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으로서 보부상들과 시인 묵객들이 오가며 쉼과 시서를 뽐내던 명소였단다.

초가 지붕의 형태를 취해 옛 모습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가상할 뿐 그 당시의 모습과 정취는 현재의 모습은 아녔을 듯 하다. 나는 그곳에서 막걸리와 전을 곁들인 단일메뉴 국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며 잠시 그들을 그려보는 순간을 가졌다.

회룡포는 그야말로 내성천의 물이 용이 휘감고 지나가는 듯한 특이한 경관이었으며 주위의 지형 자체만으로도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 상서로운 기운이 있었다. 김용사와 대승사는 우리나라의 대부분 사찰터가 명당이 듯이 전망이 일망무제로 확트인 명당이고 단풍이 절정 이기는 하나 수리 보수로 사찰의 분위기가 반감 되었다.

특히 스님들이 보이지 않아 마치 이사하여 빈집 같은 쓸쓸하고 고즈넉하게 느껴졌으나 고찰이며 대찰 이란다. 사찰의 고유 의미보다는 주변 경관과 아름다운 단풍에 더 시선이 감은 어쩔수 없었다.

예천 지역의 여정에 특이한 것은 동우가 운영하는 사과 밭을 방문하여 사과를 따서 현장에서 먹어보는 체험과 자기가 직접 사과를 한 박스씩 따서 저렴한 가격으로 사는 행사로 수확기인 가을에 의미 있고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그리고 야간 숙소 또한 폐교가 된 김용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문경시에서 펜션으로 활용 중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었다. 숙소의 룸명도 1,2~학년부터 7학년까지 있었는데 특이한 체험이었다.

저출산에 따른 농촌 지역의 피폐해진 상징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저버릴수가 없었다. 그런대로 비나 눈을 피할수 있도록 개조된 숙소였다. 천막을 치고 자기도 하고 풍찬 노숙도 하는 여객도 있는데 그 정도면 호텔급이다.

이틑날 문경 지역의 여정은 그야말로 만추의 정을 흠뻑 느끼고 빠질수 있는 멋지고 추억에 남을 문화 탐방이었다. 진남의 고모산성에 오르니 신라의 화랑들이 산천을 유오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키웠을 법한 빼어난 경관과 기세등등한 산세가 확 와닿아 느껴지는 곳이었다.

영남 팔경중 제 1경이라니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동서로 요란하게 뻗어 있는 도로 때문에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파괴되었음이 아쉽다는 생각 또한 지울수가 없었다. 문명과 편리성 경제성 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움이 무자비하게 파괴된 현장에 서게된 기분이들어 씁쓸하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백미요 핵심은 아마도 문경새재의 제 1관문에서부터 2관문을 거쳐 3관문에 이르는 9킬로미터여의 문경 새재길을 관통하는 트레킹이 단연 최고 였다고 말하고 싶고 이글을 쓰게 되는 이유라고도 말하고 싶다.

문경새재길은 그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가는 과거길 이었다고 한다. 영남이나 호남 사람들이 한양에서 치뤄지는 과거 시험을 보러가기 위해서는 추풍령과 죽령 문경새재 길이 있는 조령을 넘어야 했는데 문경새재를 넘으면 합격률이 높다하여 호남인들까지도 문경새재를 이용하는데 선호했다고 한다.

문경쪽에서 진행하여 1관문 들어서기 전의 단풍나무 군락은 가을을 한 장소에 모아 놓은 듯 장관이었다. 그리고 많은 만추의 상추객들이 떠나는 가을을 만끽하고 심신을 다지기 위하여 새재를 넘어 오고 있었으며 또 진입하고 있었다.

문경새재길은 과거시험 응시생들이 벼슬길에 오르려는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한양을 향해 걷던 깊숙한 산속에 숨겨져 있을 오솔길이었을 것으로 상상하고 들어섰지만 입구에서 부터 그런 상상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요즘은 길을 걷기 편하게 단장하고 정리하여 자동차도 지나 다닐수 있는 대로였다. 그러나 자동차는 출입을 통제 하여 걷는 내내 자동차 내연을 접하게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또한 비포장도로라서 걷는 맛이 있었으며 길에 널부러진 낙엽을 밟는 소리와 주변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3시간여의 트레킹 동안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줄을 몰랐다. 흙내음과 낙엽 내음 그리고 온갖 가을 내음이 범벅이 되어 나 스스로가 어느 순간 가을속에 몰입 되어 빠져 있음을 실감했다.

특히 트레킹중 일행 몇분과 중간에 있는 주막에서 막걸리와 나물전 감자전을 주문하여 땀을 식히며 잔속에 가을의 정취를 띄워 한잔 들이키니 마치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감응이 있었다. 트레킹의 진수가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이 아닐까 하는 로맨틱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동참한 여성 문우들께서 한잔 땡김을 즐거워하시니 더욱 좋았다.

더욱이 3관문에 가까이 오니 단풍이 절정이었으며 오래전 공무원을 시작하기 전에 연수를 받으며 이곳에 와서 시 한수씩을 지어 읊었던 추억이 생생하였다. 금년초에도 지나던 길에 이곳을 산책하던 아름다운 추억 한편이 뇌리 깊숙히 스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맛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하는가 보다.

이런 저런 이유와 추억으로 문경새재길은 내 인생에서 지우기 힘든 길이 되었으며 아름답게 기억 되리라는 기쁨과 함께 행복한 길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멋지고 로맨틱했던 그 길은 보이지 않았고 살포시 수줍은 듯 조령 어느 곳엔가 숨겨있는 듯 민낯을 내 보이지 않았다.

새색시 폭포가 새재길 어느 옆에 수줍어 숨어 들릴 듯 말 듯한 물소리를 내며 숨 쉬고 있듯이 그 길 역시 고히 숨어 있었다. 그래서 이 가을이 그런 추억을 할수 있어 고독하지도 않고 쓸쓸 하지도 않으면서 한층 아름다운 가을로 수놓아 지리라 확신해 본다.

멋진 여정이었다. 마치 제우스 신이 행복의 신에게 행복의 씨앗을 숨겨 놓으라고 한 그 산이 조령의 새재길이 아닐까하는 생각 과 함께 그 씨앗은 마음에 있음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행복한 여정이었다. 조령숲속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던 나 자신과의 만남이었다.

마지막 3관문이 지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그 길, 자꾸만 무슨 미련이라도 있는 듯 뒤돌아 보게 하는 그 길이었다. 옅은 보라색 코트에 짙은 보라색 스카프를 목에 휘감고 걷던 그 아름답고 멋진 여인과 단풍 색깔과 조화롭게 차려 입고 홀로 터벅터벅 쓸쓸해 보이게 걷던 그 여인은 어떤 색깔의 로맨틱한 사연과 꿈을 품고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그 길이었다.

유난히 혼자 걷는 여인이 많은 길이었다. 그 여인들이 단풍과 늦가을 정취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같은 그림이었다. 그분들도 나와 같이 떠나가는 가을을 만끽하며 그 길을 걷고 또 걸었으리라.

예천 문경의 여정을 통해 우리나라는 거대장엄하고 웅대무비하여 큰 감동을 안겨 주는 곳은 없더라도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많을 것임을 느낀다. 그래서 금수강산이라 하는가 보다.

▲ 석호영 세무사

특히 문경새재길의 트레킹은 ‘낙엽 만큼이나 많은 고독, 단풍 냄새만큼이나 향기로운 그리움, 가을 정취에 취해 시 한수라도 읖조릴 듯한 감성, 그리고 단풍잎 수만큼이나 많은 행복’을 가슴속 깊이 숨겨 둔채 멋진 만추의 추억 한편으로 오래 오래 간직 될 것 같다.

이런 점이 요즘 말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요 욜로(You only live once)와 워라벨(balance of work and life)을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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