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한 납세자는 종합소득세 중간예납 납부기한인 지난달 30일 뜬금없는 ‘징수유예 신청서’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내년 5월까지 매월 분납해서 내라는 것이었다.

소매업을 하는 자신의 업체가 소득세 1000여만원을 못내는 어려운 형편도 아니었는데 생전처음 접하는 통지서여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 같으면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징수유예를 신청하면 잘 해주지 않던 것을 세무서가 알아서 먼저 징수유예를 하라는 통지서를 보낸 온 것은 말 그대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장을 맡기는 세무사에게 문의를 했더니, 세무사 역시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국세기본법 징수유예 조항에 따르면 세무서장은 ▷재해 또는 도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을 입은 경우 ▷사업에 현저한 손실을 입은 경우 ▷사업이 중대한 위기에 처한 경우 ▷납세자 또는 그 동거가족의 질병이나 중상해로 장기치료가 필요한 경우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상호협의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등으로 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영세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 초점이 맞춰줘 국세행정서비스는 과거보다 훨씬 ‘기업친화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국세청이 납세자의 어려움을 헤아려 각종 맞춤형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그동안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세청은 징수유예 조항을 납세자에게 까다롭게 적용해 왔다는 게 납세자들의 오랜 경험칙이다. 이 납세자가 국세청의 ‘셀프서비스’에 고마운 마음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국세청의 호의好意에 부담감이 없지 않다는 것. 그리고 징수유예 사유에 해당된다면 11월초에 미리 알려주지 않고 납기가 임박해서 갑자기 서류와 함께 신청서가 날라 왔다는 것.

어쨌든 이 납세자는 국세청의 선의善意에 따른 신청서를 받아들고 징수유예처분의 이유를 ‘사업상 어려움으로 인한 자금경색’이라고 썼다. 기간은 2018년 12월1일부터 2019년 5월 31일까지. 이에 따라 이 사업자는 1회차 12월 31일부터 내년 5월 31일까지 6개월간 종합소득세를 분할해 납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왠지 자꾸 뭔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 세무사들에 자문을 구해봤다. 그동안 징수유예를 신청해도 잘 해주지 않던 국세청이 알아서 유예를 시켜주다니 ‘세수가 초과되니 이를 분산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일 것’이라는 견해들이 많았다. 이런 세무사들의 반응을 국세행정에 대한 ‘색안경’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뒤따랐다. 실제로 지방국세청의 한 세무공무원 역시 “세수초과에 따른 징수유예 조치일 수 있다는 말이 아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지방국세청 관계자는 손사레를 치며 이런 분석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세수가 초과돼 징수유예를 한 것은 아니며, 올 여름 폭염으로 영세업자들의 어려움이 컸다. 전남 완도를 비롯 여러 군데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에따라 지역 기업의 어려움을 미리 파악해 국세청 직권으로 취하고 있는 징수유예 조치의 일환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청의 경우 서울에 본사를 두고 특별재난지역에 사업장이 있을 경우 본인들이 신청하지 않더라도 징수유예 처분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신청서를 10일경 발송을 했는데, 30일 도착했다고 하면 전달 착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말을 요약하면 이 납세자는 국세청의 기업친화적 행정에 따라 셀프징수유예를 받는 것이 맞고, 단지 우편발송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내 탓보다는 네 탓’에 길들여진 멘트다.

국세행정이 세금의 주인인 납세자들을 위해 기업과 납세자 친화적 행정으로 나아가는 것은 맞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선의라도 ‘식사 후 배부를 때 배달되는 피자’라면 환영보다는 핀잔이 먼저 나올 것이다. 국세행정 잘하고도 욕먹지 않게 좀 더 꼼꼼하게 합시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