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시각각 죽음만이 실감되고 대량학살의 그림자만이 드리워진 홀로코스트(Holocaust)속에 핀 부성애(父性愛)의 극치!! ☆

연말을 보내며 나치 치하의 홀로코스트를 소재로한 영화 몇편을 감상했다. ‘Life is beautful’은 친구의 강추로 감상하였고, 그 외 ‘Holocaust 2’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스터피스 ‘Schindler's list’등이다. 친구의 강추 영화를 제외하고 두 편은 앵콜 감상이다. 같은 소재의 ‘The pianist’는 시간 제약상 이번에는 건너 뛰었다.

▲ 석호영 세무사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을 말하라면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살인공장이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대량학살을 포함하여 나치는 유대인이라면 보는 족족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죽이려했기 때문이다.

총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고 15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총살 혹은 가스에 의해 학살 되었다니 살인공장 외에 다른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1939년도에 설립되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하루 8천여 명의 유대인이 기차에 실려 들어 왔으며 도착 2시간만에 80%를 학살하고 나머지 20%는 노동력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2013년도 나는 관광차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들렸다. 수용소 정문에 "Arbeit macht Frei 일(노역)만이 자유를 보장한다"라고 아치형틀에 표현된 표어를 보며 입장한 그 광기의 살인 현장에 산처럼 쌓인 희생자들의 머리카락과 가방이나 구두 등 그들의 전시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수용소 입소 후 노약자, 임신부, 어린이, 병약자 등 환자는 학살 우선 순위로 분류 되어 하루에 6400여명씩을 살해했다니 가히 살인공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를 자행한 살인마들이 인간들이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아니 유태인을 해충 내지는 벌레 혹은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없는 만행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나치는 태연히 농담하며 웃으면서 살인행위를 수행했다니 인간의 잔인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정말 참혹한 상황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인류에게는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와 명예와 인권, 그리고 꿈과 희망은 본래부터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 같은 것"이라는 명제는 독일 나치에게의 유대인은 예외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영화 속 유대계 아버지 귀도는 유머러스한 선의의 거짓말과 거짓 약속을 통해 아들 조슈아에게 '삶'에 대해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절박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라는 환희와 행복의 메시지만 들려주고 싶은 것 같았다.

죽음이 임박한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오롯이 희망을 떠올리며"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영화를 통해 비참하고도 절망적인 현실을 버텨나갈 힘인 "희망과 삶의 의지를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우리 모두에게 헌사 해주고 있는 것 같다.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후 시(詩)를 쓰는 건 죄악"이라는 유대계 독일 사회 철학자이자였던 아도르노의 절규처럼 너무도 무겁기만 한 이 주제를 감독은 오히려 사랑, 상상력, 해학과 유머로 분장하여 감동으로 뒤집어 그려 낸 것 같다.

하여, 귀도와 도라의 풋풋한 사랑과 죽음으로 바꾼 아들 조수아에 대한 아버지 귀도의 숭고한 부성애를 진중하게 품어내는 화면은 자못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건네주는 것 같다. 영화는 해학과 풍자의 우화가 얽혀 있는 전‧후반의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사랑의 환희로 이뤄진 전반부에는 소박하고 유머러스한 시골 청년 귀도가 귀족적인 도시의 까도녀 아니 예쁘고 발랄한 도라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까지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전개 된다.

반면에 후반부는 암울한 나치 치하의 시대상이 빚어낸 일상이 된 비극 속에서도 아버지 귀도는 아들 조수아에게 선의의 거짓과 유머를 통해 마주할 공포를 차단하고 행복의 암시들로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 아버지 귀도와 아들 조슈아, 절망과 극단의 슬픔을 희화화 하여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귀도의 처절한 부성애에 자식을 둔 아버지라면 웃으면서도 가슴 심연에 감춘 귀도의 슬픔에 심금이 울리고 공감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웃으면서 동시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감상할 수 없는 슬픈 코미디 영화였다. 또한 어린 아들을 위해 유희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내며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버지 귀도. 그러나 그의 영혼 중심에 흐르는 슬픔을 알기에 더욱 처연한 영화였다.

그는 마지막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도 아들 조슈아의 행복을 위해 끌려가면서도 피에로처럼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장면은 가히 가슴 먹먹하고 시리도록 처절한 클라이맥스적 감동의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귀도 입장에서는 절망적 슬픔과 공포를 가슴 깊숙히 깔고 있으면서도 선의의 거짓 웃음과 행동을 통해 아들 조수아에게는 면전에서 전개되는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기쁨과 슬픔의 오버랩이요 패러독스가 아닐런지. 그래서 이 영화는 상황을 모르는 4~5세의 조슈아는 웃을 수 있으나 성인에게는 극치의 슬픈 영화일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렇게, 어린 아들을 살려내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투,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영화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지요”라는 성인이 된 조슈아의 내레이션과 함께 그 막을 열어간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9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전원 도시 아레쵸.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귀도는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이상형의 여인인 초등학교 교사 도라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도라에게 첫눈에 빠져버린 귀도는 그녀가 부유하고 잘생긴 전도양양한 공무원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끈질기게 구애를 위해 귀도는 도라가 오페라 감상을 하러간 것을 알아내고 오페라가 공연되는 극장까지 찾아간다.

오페라 감상을 마치고 나오는 비오는 날 저녁, 약혼자의 자동차 키를 훔쳐 약혼자를 따돌리고 약혼자의 차에 도라를 몰래 차에 태운 귀도는 깜작 놀라며 "어떻게 된거에요"라고 묻는 도라에게 답한다.

"지붕 아래 있었더니 그대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자전거에서 넘어지자 내가 당신 품속이었으며, 학교에 시찰 갔더니 또 당신이 있고 언젠가는 당신이 꿈속까지 쫓아 왔더군요. 제발 날 내버려둬요. 제가 그렇게 좋은가요?" 라고 그동안 우연히 만나고 혹은 우연을 가장하여 발생했던 일을 너스레를 떨며 귀도는 도라에게 오히려 질문한다. 차까지 훔쳐 탔으면서 철면피에 적반하장이다.

귀도는 운전도 할 줄도 모르면서 무작정 도라를 태우고 가다가 사고를 내는 등 빗속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의 그날 밤, 귀도는 도라에게 자못 엉뚱한 프러포즈를 한다.

"당신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수백, 수천 번을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죠."

그렇게, 도라의 마음은 천진난만한 유머로 웃음을 선사하는 귀도에게 조금씩 기울어진다. 급기야 귀도는 조랑말을 타고 약혼식장에서 도라를 말위에 태워 달아나면서 두 사람은 어렵사리 동화 속 주인공처럼 부부로 맺어지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들에게 귀여운 아들 조슈아가 태어나고 그들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안타깝게도 귀도 가족 앞에는 유대인 차별이라는 넘기 힘든 정치적 이념적 사회적 큰 장벽이 놓이게 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된다.

길거리의 가게에는 이미 '유대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간판이 걸리기 시작한다. "왜 유대인과 개는 못 들어오게 하는 거지?"라는 아들 조수아의 물음에 귀도는 기발하고도 재미있게 순발력을 발휘하여 답한다.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지, 가게 중에는 스페인 사람과 말을 못 들어오게 하는 가게도 있단다. 그리고 저기 가면 약국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는 중국 사람과 캥거루를 못 들어오게 하지"라고 귀도는 아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결국 1944년, 하필이면 아들 조슈아의 생일날에 피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쳐온다. 나치에 의해 이들 부자가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어 죽음의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귀도는 조슈아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끌려가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건 아빠와 엄마가 몇 달 동안 고민했던 네 생일 선물이야. 깜짝 놀라게 하려고 말을 안 했단다. 어디로 가는지도 비밀이야!”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아들에게 태연자약하게 해댄다. 상상력의 ‘끝판 왕’ 같다.

아내 도라 또한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자원해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의 뒤를 따라 수용소행 기차에 몸을 싣지만 귀도는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들 조슈아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실은 하나의 신나는 놀이이자 게임이라고 핵폭탄급 거짓말로 왕창 속인다.

조슈아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안심시키려는 선의의 거짓말은 실로 기상천외해서 차라리 눈물이 날 정도이고 또 코믹해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사이코패스적 정신 상태와 감성의 소유자가 아닌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짬뽕시키지 않고서는 감상키 어려운 영화다.

“우리는 지금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있어. 벌점을 얻지 않고 1000점을 먼저 따면 이 게임은 끝나고, 이긴 사람에게 탱크를 주지. 다들 1등을 하고 싶어서 너에게 거짓말하는 거니까 절대 속으면 안 된다!”어휴 이런 기발한 거짓말을 어떻게 순간적으로 상상해 낼 수 있을까 싶다.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별이라도 따줄 수 있다는 기세다.

귀도는 수용소의 처참한 상황을 거짓 상황으로 조수아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조수아는 "우리를 가지고 단추와 비누, 땔감을 만든대"라며 겁에 질려 울먹이며 상황인식을 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러나 귀도는 재치있게 "1등을 해서 탱크를 타려고 그러는 거야"하며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이유를 장황하게 또 설명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울하기만 한 미래, 가스실, 혹독한 강제노동, 그리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어로 질러대는 호령, 하지만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분주히 만들어내는 귀도의 너스레는 무지막지한 홀로코스트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더욱 그 빛을 발하여 아들 조수아는 행복하기만 한 듯하다.

전쟁 전에 수수께끼 놀이를 하며 알고 지냈던 독일 군의관 장교를 수용소내에서 만나 그의 도움으로 수용소의 나치 장교식당에서 일하게 된 귀도는 나치 간부들의 연회장에서 음악이 멈춰 있는 전축이 눈에 띄자 옆에 있던 음반으로 바꿔 낀다.

수용소 어디엔가 있을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도라가 있는 여자수용소 방향을 향해 "사랑하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나의 공주"라고 육성 방송을 하며 둘이 평소 즐겨듣던 '호프만의 뱃노래'를 틀어 준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 안개인지 가스인지가 자욱한 격리된 여자 수용소에서 어디엔가 있을 귀도와 조슈아를 애타게 그리던 도라는 서서히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창가로 다가서며 남편이 보낸 뱃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웃음을 지어보지만 곧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노래 제목처럼 '아름답고도 사랑스런 밤'의 선율에 젖어든다.

도라에게 노래도 들려주며 힘든 노역을 마치고 수용소에 돌아온 귀도는 졸립다며 칭얼대는 조슈아를 품에 안고 음악이 실려 가는 도라의 수용소 방향으로 무연히 걸어간다. 이미 잠들어 버린 아들에게 혼자말처럼 현실이 아닌 꿈일 거라며 독백을 해댄다.

죽음의 공포만이 감도는 수용소 생활이 흘러가고 마침내 독일이 패전 직전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나치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용자들을 차례로 처형하기에 이른다.

귀도는 조슈아를 살리기 위해 궤짝 속에 꼭꼭 숨게 하며 간절히 당부한다. "1000점을 채우려면 마지막 숨바꼭질 게임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까진 절대 나오면 안돼! 착하다. 우리 아들 잘 있어라"라는 귀도의 당부에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 조슈아는 아빠 당부대로 꼬박 하루를 나무 궤짝에 숨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게 된다.

죽음에 임박한 것을 감지한 귀도는 이렇게 조수아를 숨기고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아내 도라를 찾던 중 독일군인에게 그만 붙잡혀 끌려가면서도 궤짝에 숨어 이를 지켜보던 조슈아를 안심시키려고 아들을 향해 윙크하고 병정놀이라도 하듯 과장된 걸음걸이로 끌려간다. 결국 "빠바방" 총성과 함께 귀도는 사살당하고 만다.

패망한 독일군이 물러나고 수용소에서 학살당하지 않은 유대인은 풀려나 연합군이 접수하여 자유의 행진을 하는 중에 정적만이 가득한 수용소 광장에는 숨어있던 조수아가 궤짝에서 나와 혼자 천진하게 서있다.

누가 1등상을 받게 될지 궁금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조슈아 앞으로 미군 탱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간 다가온다. 조슈아는 1등상이라 기뻐하며 탱크탄 군인의 올라오라는 말에 아버지 말대로 상금으로 받은 진짜 탱크 위에 올라탄다.

가족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 도라와 기적적으로 재회한 조슈아는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의 품에 안기며 환호한다. "엄마, 아빠 말이 맞았어, 우리가 이겼어! 이겼단 말이야! Yes, We won! We won!"라고 외치는 조수아는 아우슈비츠수용소의 공포로 부터 차단되고 동심을 간직한채 풀려나게 된다.

영화 ‘가을의 전설 Legend of the fall’에서 아들 브래드피트에 대한 아버지 안소니 홉킨스의 부성애를 강렬하게 느낀 후 접하게 되는 처연하게 아름다운 귀도의 조수아에 대한 부성애(父性愛)영화였다.

한편, 생명과 뿌리의 근원인 조슈아라는 꼬마를 통해 삶에 의지와 생명력을 발양하고 번성하며 자자손손 유대인도 인류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몸부림이요 외침의 영화인 듯 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고귀한 '희생'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그날 아버지는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라며 회고하는 성년 조슈아의 마지막 내레이션과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결혼하여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과 함께 역설적인 슬픔의 아름답고도 사랑스런 영화의 엔딩 막이 올라간다.

1941년 1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제안된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이런 상황의 연유로 ‘세계인권선언’에 채택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I believe that the "Freedom from Fear" proposed by President F.D. Roosevelt in 1941 was adopted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because of this Holocaust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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