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는 서기관급 이상은 정년보다 2년 앞서 퇴직하는 명예퇴직(名譽退職) 문화가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 ‘용퇴(勇退)’라고도 부른다. 공무원의 정년은 60세지만 국세청 명예퇴직의 경우 2년 먼저(58세)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 주는 것을 말한다. 그 문화가 너무나 공고하여 100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고위직들은 53세에도 옷을 벗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후진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아름다운 용퇴 문화’를 두고 쓴웃음을 짓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세청 조직을 살펴보자. 2018년 2월 1일자 기준 국세공무원의 수는 2만116명이다. 이중 국세청장(정무직)을 제외하고 고위직은 36석(0.2%). 3급 부이사관은 20석(0.1%), 4급 서기관은 346석(1.7%), 5급 사무관 1158석(5.7%)이다. 6급 이하 정원이 전체의 92.3%를 차지하고 있다.

국세청 조직은 9급으로 입사해 30년을 헌신해도 사무관 승진조차 하지 못하고 은퇴해야 하는 ‘압정형’ 구조다보니, 열심히 일해도 승진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고 조직 전체적으로는 사기저하로 이어지면서 적극적인 조세행정을 펼치지 못하게 되는 나비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듯 극도로 적은 고위직때문에 타부처와는 다른 국세청만의 조기 명퇴 문화가 생겨나게 됐다.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서, 즉 ‘후진을 위해’ 정년보다 2년 앞서 퇴직하며 후배들에게 승진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1급(고공단 가급)으로 승진할 경우 1년만 근무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등이다. 인사적체 문제로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국세공무원교육원에 서장후보자들을 6개월동안 교육을 보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렇듯 국세청 고위직의 명퇴 문화는 조직의 숨통을 트이게 해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후배들이 고위직이 됐을 때에는 선배들의 덕을 본 만큼 자신들도 기꺼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전통이 관습처럼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이제는 ‘국세청 명퇴제를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곰비임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상률 국세청장은 성과주의 인사원칙을 내세우며 폐지를 추진했다. 1년은 정상근무하면서 능력있는 간부들은 현직에 머무르도록 하고, 능력없는 직원은 종전대로 명퇴제를 적용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러나 야심찼던 ‘명퇴제 폐지’는 결국 허병익 청장 직무대행 시절 다시 부활해 여전히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명퇴제가 현재에 이르러서 또 다른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국세청 고공단 명퇴 현황을 살펴보면, 2017년 상반기(59년생 명퇴대상)에 김봉래 차장(59년, 7급공채), 심달훈 중부청장(59년, 행시31), 서진욱 부산청장(64년, 행시31)이 퇴임하고 임환수 국세청장(62년, 행시28)이 물러나면서 한승희 국세청장(61년, 행시33) 시대가 열렸다.

그 해 하반기에는 김용균 중부청장(63년, 행시36), 신동렬 대전청장(59년, 행시34), 윤상수 대구청장(60년, 7급공채)이 용퇴를 결심했다. 특히 김용균 중부청장의 경우 취임 5개월만의 일이라 세정가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60년생 명퇴대상) 상반기에는 서대원 차장(62년, 행시34), 김희철 서울청장(60년, 행시36), 김한년 부산청장(61년, 세대1기)이 명퇴를 하면서 김 서울청장은 딱 연령 명퇴대상 이었지만 김 부산청장과 서대원 차장의 경우 조금 빠른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김희철 서울청장은 광주청장을 거쳐 고공단가급인 서울청장까지 했으며, 나이도 정년 2년 먼저라는 점에서 수긍이 갔다. 하지만 서대원 차장의 경우 국세공무원들의 선망의 대상인 지방청장 한번 경험하지 못하고 차장으로 승진했으며, 특히 가급 1년이라는 근무기한도 되지 않아 물러났다(11개월 근무).

이같은 현상은 작년 하반기 명퇴자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김용준 중부청장(64년, 행시36), 박만성 대구청장(63년, 행시36), 양병수 대전청장(65년, 행시35)이 눈물머금은 명퇴식을 가졌다. ‘후진들을 위한 아름다운 퇴진’이라고 포장했지만 2년 조기 명퇴 나이를 적용하더라도 5년은 앞서(만53세) 자리에서 물러나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지방국세청장은 명퇴를 적용하는 기준에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고시 동기임에도 특정 인물의 경우 지방청장을 지냈는데도 가급으로 승진까지 하는데 ‘왜 나에게 그 기준이 다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똑같이 조직에 헌신했지만 누구는 계속 승진해서 근무하고 누구는 명퇴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공평, 공정’을 내세우는 국세청에서 인사만큼은 공평하지 않다는 불만의 목소리로 발전하게 한 것이다.

문제는 국세청 고위직의 명퇴가 이처럼 무작위로 이뤄지면서 자연적으로 타부처에 비해 세대교체가 빨라져 인재 내보내기로 이어지고 국세청의 인재부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고공단으로 승진하면서 검증되고 인정받은 능력과 전문성을 활용하기도 전에 퇴직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 한승희 국세청장이 취임한지 2년여가 다가오면서 차기 국세청장감을 떠올리는 세정가 사람들은 젊어진 내부 인재군으로 인해 국세청 외부인이나 퇴직 선배중에서 임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19.2.) 국세청 고공단 명단을 나이순대로 살펴보자. 한승희 국세청장(61년, 행시33), 권순박(63년, 세대1), 김형환 광주청장(63년, 세대2), 이청룡 인천청 개청단장(63년, 세대2)이 있다.

아래로 이은항 차장(66년, 행시35), 유재철 중부청장(66년, 행시36), 김대지 부산청장(66년, 행시36), 그리고 이동신 대전청장(67년, 행시36), 마지막으로 김현준 서울청장(68년, 행시35)이다. 김현준 서울청장은 만51세의 나이에 불과하다. 국세청 내부인으로 차기 국세청장에 가장 근접해 있는 후보군들 대부분이 51세에서 53세 정도다.

무엇보다 올해 명퇴 대상자가 61년생이 대상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1급 자리에서 1년만 하고 물러나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난 연말 김용준 전 중부청장, 양병수 전 대전청장들처럼 ‘젊어도 너무 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세청 인사에 밝은 한 세정전문가는 지방국세청장 이상 고위직은 청장으로 부임하기 전 ‘백지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전했다. 청장의 조직과 인사관리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방청장에 취임한 후 1년이 지나면 국세청장의 마음먹기에 따라 더 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관복을 벗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국세청의 2년 조기 명퇴는 30년 가까이 근무를 하며 쌓아온 업무노하우가 한 사람당 2년이라는 시간이 합쳐져 수십, 수백, 수천, 많게는 수만시간이 버려지는 것과 동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국가적으로 볼 때에 ‘인재손실’일 수 있다. 또한 2년뿐만 아니라 5~7년 먼저 명퇴할 수도 있는 고위직 명퇴제의 경우 그 손실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위직 명퇴제도가 지금처럼 명퇴가 아니라 ‘강퇴’라는 뒷말을 낳는다면 이는 ‘미물美物’이 아닌 ‘괴물怪物’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전직 국세청 간부들도 조직을 위한다는 명문으로 아름다운 관습과 관행으로 포장되어온 ‘명퇴제’이지만 이제는 말이 아닌 정말로 후진들을 위한 아름답고 명예로운 퇴직이 빛날 수 있도록, 또한 숙련된 인재들이 조직에 조금 더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세정박물관으로 보내는 과감한 ‘도이모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고공단 명퇴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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