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전직 국세청 고위직의 이야기다. 자신이 잘 아는 한 중견기업가가 세무문제 자문을 해왔다. 이 중견기업가는 회장님으로 불리는 꽤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런데 주위의 젊은 세무회계전문가들은 자신의 재산분할과 관련 ‘공격적 절세’를 권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이 전직 국세청 고위직은 딱 들어보니 말 그대로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을 넘는 방법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회장님께서는 ‘그동안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왔고, 또 나름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해 오셨는데 굳이 얼마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차후에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선택하시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동안 살아오신 삶의 철학과도 맞는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이후 이 기업인이 세금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 아마도 당시 그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점에서 이 고위직의 고언을 새겨 처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7일 국세청이 그간 대기업 사주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증기회가 부족했던 중견기업 사주일가, 부동산 재벌, 고소득 대재산가 등 소위 ‘숨은 대재산가’ 95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최근 일부 ‘숨은 대재산가(hidden rich)’ 그룹의 탈세수법은 전문가의 조력 하에 대기업을 모방하여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고, 정기 순환조사 대상이 아닌 점을 악용한 불공정 탈세 행태가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이번 세무조사의 배경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이 밝힌 ‘숨은 대재산가(hidden rich)’는 아마도 재산은 많지만 성실하게 세금을 내지 않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탈세를 시도한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일 것이다. 솔직히 난해하기로 소문난 상속세 증여세 등 촘촘한 세법 그물망을 뚫고 세금을 절약하려는 시도는 사업에 바쁜 중견기업인들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국세청이 조사배경에서도 밝혔듯이 그들의 탈세수법은 필시 세금전문가의 숨은 조력을 받아 이뤄졌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대재산가들의 탈루세금을 추징하는데 그치지 말고 소위 그들 뒤에 숨어서 나쁜 길을 종용하는 ‘숨은 조력자(hidden assistant)’를 찾아내는 것도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혹시 그들이 직업윤리를 어기지는 않았는지, 절세로 위장한 탈세를 부추기는 공격적 세무대리를 하지는 않았는지를 밝혀내 검찰에 고발하는 등 추상같은 세정의 의지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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