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 22일 전국의 유흥업소 21곳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세무조사는 사전에 광범위한 현장 정보수집 자료를 토대로 탈루혐의가 큰 업체를 조사대상으로 선정했고, 이들 중 명의위장 혐의가 큰 업체에 대해서는 조사 착수 시점부터 검찰고발을 전제하는 조세범칙조사로 시작했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지난해 ‘아레나’에 대한 조사처럼 탈세를 적발하고 추징액을 부과하는 것을 넘어 실사업자를 찾아내어 실제 수익을 가져간 자에게 적절한 탈루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라는 쪽으로 세정가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20일 작년 아레나에 대한 조사와 관련 뒤늦게 실사업자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초 조사시에는 강제수사권이 없어 실사업자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조사는 실사업자를 찾아내지 못해 일명 ‘바지사장’들만 고발하면서 체면을 구긴 전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명분도 엿보인다.

그런데 아레나의 경우 ‘과연 국세청은 강제수사권이 없어 실사업자를 찾지 못했을까, 아니면 찾고도 찾지 못했다고 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추후 경찰수사에서 밝혀질 가능성이 있지만 국세청 조사국의 조사 실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나라는 우문도 더해진다.

그래서 지난 2000년대 초 서울국세청 조사국 사람들이 내부 교육용으로 발간해 돌려 읽은 책 한권을 서재에서 찾아냈다. 제목은 ‘유흥업소 25시’다. 이 책은 당시 유흥업소 조사를 벌였던 노하우를 가진 사무관과 팀장들 10여명이 각자의 유흥업소 조사 경험을 공유하면서 펴낸 책이었다. 발행인 서울지방국세청장, 편집인 조사3국장이다. 이 책을 윗분들이 감수하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유흥업소의 현황, 주류구입과정, 음주형태와 더불어 마담이 손님을 객실로 안내해 손님에게 접대부를 인사시키면 손님이 취향에 따라 짝을 맞추며, 오후 9시경 음식이 나오면서 유흥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면 마담은 슬쩍 자리를 뜬다는 등의 호화유흥실태는 물론 업주, 큰마담, 작은마담, 고용마담, 멤버, 접대부, 인터걸, 웨이터, 종업원 등의 구성과 역할까지 그리고 유흥대가의 결정, 봉사료의 결정, 종업원들에 대한 수익의 배분과 귀속까지 빼곡이 백과사전처럼 기록돼 있다. 일견 유흥업소 세무조사의 바이블처럼 보였다.

압권은 당시 조사국 요원들이 집요하게 실사업자를 찾아내어 결국 과세에 이르는 생생한 조사 과정의 묘사다.

한가지 사례를 인용한다.

2000년대 초 어느 날 서울국세청 조사국이 서울 강남의 고급 유흥업소 밀집지역 내 룸싸롱을 급습해 이 업소의 회계장부 등을 싹쓸이 하는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22일 국세청이 21곳에 대한 유흥업소 조사와 비슷한 형태였다.

그런데 조사요원들이 급습한 이 업소에는 원시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도 사전에 정보가 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사팀은 이 클럽 관련자들의 전화번호가 기록된 작은 노트하나를 발견하고 예치했다.

예치된 노트는 카운트용 전화번호부였다. 조사팀은 거기서 사업자등록상 사업주(명의) 앞 순위에 기재된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사장, 부사장 등 중요 인물순서로 전화번호를 기록하는 관행에 비추어 사업자등록상 명의자 보다 중요한 인물일 것으로 판단하고 집중적으로 내사를 벌였다. 그리고 사업장의 임대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재임대계약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즉시 전화가입부를 발급 받아 주소지를 확인한 후 임대인으로 가장해 어렵사리 부인과의 통화가 이뤄졌다. 운좋게 이 부인은 임대계약 등에 대한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국세청 조사팀은 이 부인의 남편을 실사업자로 확정했다. 이어 이 실사업자의 거주지 또는 사업장 인근의 금융기관에 대한 계좌추적을 실시해 주소지 부근에서 시중은행 지점의 실 계좌를 발견해 내는데 성공했다.

조사팀은 이 계좌에서 주류도매업체에 지급한 어음발행 내역까지 확보해 장부상 매입액과의 대사를 벌여 매입누락까지 적출해 냈다. 당시 매출누락액은 룸싸롱 15개 업체의 평균 주류 원가율(16.58%)을 적용했다.

20년 전쯤 지금의 서울국세청 조사팀은 이런 방법으로 강남의 클럽을 조사하면서 기어이 실사업자를 찾아내 과세하는 집요함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이런 조사팀의 활약을 글로는 쉽게 옮길 수 있으나, 거미줄처럼 꼬여있는 유흥업소들의 실사업자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국세청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아레나’의 실사업주 강 모씨를 경찰의 요청에 따라 뒤늦게 고발하면서 ‘우리는 강제수사권이 없어~’라고 한말도 일견 수긍이 간다.

그래서 22일 국세청은 21곳의 유흥업소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명의위장 혐의가 있는 업체에 대해서는 조사착수시점부터 검찰과 협업하에 조세범칙조사로 착수했다고 밝혔다. 바지사장이 아닌 실사업자를 찾아내 소위 전주錢主에게 제대로 과세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다시는 아레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

그런데 과연 20년 전의 조사국 직원들은 끈질기게 추적해 실사업자를 밝혀냈는데 지금의 조사국 직원들은 강제수사권이 없어 바지사장들만 고발했을까. 정말 찾지 못한 것일까. 고도로 발달한 NTIS(국세행정정보망)를 보유해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자랑하는 국세청의 해명으로는 많이 궁색한 부분이다. 그래서 혹시 그 사이에 힘 쎈 전직 국세청 간부가 끼어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당시 조사팀이 20년 전 선배 조사요원들보다 노하우가 없었거나, 집요함이 없어서 그랬을까라는 우문이 또 뒤따른다.

그래서 이번에 나선 유흥업소 21곳에 대한 특별조사에 국세청 조사국의 ‘체면’이 달려있는 모양새다. ‘아레나’의 경우처럼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선배들로부터 ‘요즘 조사팀은 우리 때와는 많이 약하다’라는 소위 쪽 팔리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22일 국세청은 유흥업소에 대한 조사착수 사실을 알리면서 그동안 룸싸롱, 클럽, 호스트바 등은 무재산자인 종업원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사업자 등록 후 체납, 폐업을 반복하는 일명 ‘모자 바꿔쓰기’, 제3자 명의로 등록한 일반음식점, 모텔 등의 신용카드 단말기로 결제하는 등 위장가맹점을 통한 수입금액 등 고질적 탈세가 만연해왔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사에 나서게 된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은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가 소위 ‘난리’가 터지니 허둥지둥 조사에 나서는 것이라면 조사국의 직무유기였거나, 아니면 이전以前 정권에서는 감히 이런 업소들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다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아니면 유흥업소도 고용을 창출하고, 종업원 등 주로 저소득자의 소득을 증가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20년 전 책자의 한 구절처럼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뒷받침을 위해 속칭 ‘봐 준 것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엔 어떤 ‘빽’이 들어와도 ‘봐준 것 같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제대로 한번 해 봅시다. 국세청 조사국의 가오(폼)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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