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여름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를(노무현 전 대통령) 벼랑 끝에 서게 한 원인제공자가 다름 아닌 우리의(국세청) 수장이었다니…".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국세청의 한 직원이 국세청 내부 인트라넷에 이렇게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원인을 전직 국세청장과 국세청이 제공했다면서 강하게 비판하는 절절한 내용이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국세청 수뇌부는 태광실업 세무조사 착수의 이유, 관할 지방국세청(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국세청 조사4국에서 조사를 하게 했으며, 왜 대통령에게 직보를 했는지 여부 등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또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공직을 떠나야 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상처 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적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당시 사과는커녕 이 직원을 징계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국세청은 `17년 '국세행정개혁TF'를 꾸려 과거 정치적 세무조사로 의심되는 조사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TF는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 총 5건의 세무조사에서 국세기본법상 중대한 조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사례가 있다면서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했다. 이때 국세청장(한승희)은 TF의 조사내용을 수용한다면서 “국세청에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난 10일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왔다.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2008년 이뤄진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경우 감사대상 기간(5년)을 벗어나 국세행정개혁 TF의 기존 조사내용을 참조하는 수준에서 재검토하는 데 그친 이상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교차세무조사 신청 관서인 부산청이 교차세무조사 선정검토표와 분석보고서를 보관하지 않고 있어 선정과정이 적정했는지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세월이 흘러 당시 교차세무사가 정당했는지, 절차를 지켰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부산국세청이 작성했다는 ‘신발제조업체(태광) 분석계획 및 신발제조업체 심리분석 결과’에는 기안자 및 결재자 등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2008년 당시 부산지방국세청 조사국에서 비정기조사대상자 심리분석 및 선정업무를 담당했던 현직자를 면담한 결과 관련 분석을 수행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참으로 대단한 성과(?)다. 다만 선정과정과 관련 기록물 및 근거자료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비정기선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저해된 사실은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렇게 결말지어지는 것인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지적받아온 그 조사가 절차와 법적으로 정당했는지, 권한남용은 없었는지에 대한 적잖은 국민적 의혹은 일말도 해소되지 않은 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또 그렇게 묻히게 되는 것인가. 시대가 그런 시대였으니 하고 그냥 또 넘어가는 것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시 태광실업에 대한 교차세무조사는 아무런 근거와 자료도 없이 막무가내로 이뤄졌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는 추상적 기억만 남겨야 하는 것인가. 의도와 목적이 순수하지 않고 절차가 정당하지 않다면 그것은 깡패 짓이나 다름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2008년 여름, 국세청은 태광실업에 소위 특공대(특별조사국으로 불리는 서울국세청 조사4국 조사팀)를 이 기업이 소재한 경남 김해로 보냈다. 버스에 태워. 그리고 기업과 사주를 소위 탈탈 털었다. ‘털면 먼지 안나오겠어’라는 은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그리고 검찰에 고발조치까지 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도 국민들은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세무조사가 이뤄졌는지, 절차는 정당했는지, 세법상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세월이 오래되어 알 수 없었다는 결과물만 확인하고 말았다.

우리가 왜 지금의 일을 기록하고 역사를 배우는지를 정말 모르는 것인가. 참 마음이 아프다.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니. 이 나라는 정말 ‘백가지 성을 가진 백성의 나라가 아니라 권력기관의 나라’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하는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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