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8월 16일 한승희 국세청장이 서울지방국세청 1층 소회의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자영업자·소상공인 세무부담 축소 및 세정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세부담 완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사진: 국세청]

“국세청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집행합니다.”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국세청장들이 답변하는 내용 중 가장 흔한 표현이다. 이밖에도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국세청이 앵무새처럼 내놓는 공식 답변 중 하나다.

국세청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법에 따라 세금을 걷는 기관이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이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결정한 대로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59조에는 ‘조세의 종목과 세목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된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국세청이 항상 이야기하고 있는 ‘법과 원칙에 따른 집행’이라는 것은 자의적이거나 임의적인 세금을 부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 혹은 국세행정이 이렇게 ‘정치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법률에서 규정한대로 집행할 뿐인데, 어째서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붙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세무조사라는 기능 때문에 그럴 것이며, 자주 경제정책에 동원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금부과방식은 과거에는 정부부과제도였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납세자들은 국세청(세무서)이 부과하는 대로 세금을 냈었다. 정부가 직접 부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신고납부제도로 변경되면서 세금을 성실하게 신고했는지 안 했는지 국세청이 검증하도록 바뀌었다. 반드시 국세청이 부과해야만 세금이 정해지는 정부부과제도보다 신고내용에 오류·탈루가 있는 경우에만 경정결정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납세자가 자발적으로 신고한 내용을 바로 잡는 기능이 세무조사다.

세무조사는 고의든 실수든 납세자가 자기의 세금신고를 바르게 신고납부하지 못했을 때 이른바 ‘가산세 폭탄’ 등의 제재를 가하게 돼, ‘세무조사=세금 폭탄’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납세자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해 하나의 권력이 됐다. 그렇게 국정원, 검찰, 경찰에 이어 국세청도 4대 권력기관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국세청은 ‘정치적으로 힘을 휘두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YS는 과거사 바로잡기를 통해 성용욱 국세청장을 구속했다. 육사출신의 성용욱 청장이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중견기업체로부터 5억원을 받는 등 총 11개 기업으로부터 54억5000만원을 받아 전달하는 등 국세청이 대통령에게 전달할 대선자금을 거둬들였다는 혐의때문이었다.

또한 성 청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세무조사로 압박해 전두환 대통령과 면담을 주선하는 수법으로 2개 기업이 60억원의 뇌물을 제공하도록 알선키도 했다.

뿐만 아니라 문민정부때도 임채주 국세청장과 이석희 차장의 경우 ‘세풍(稅風)사건’을 일으켰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 측근 들이 국세청을 통해 166억3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사건이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안정남 청장이 대통령의 차남의 청탁을 받고 세무조사를 무마해주거나, 검찰총장의 동생의 부탁으로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권력형 비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으며, 노무현 정권에서는 이주성, 전군표, 한상률 청장 등 현금뿐만 아니라 고급시계에서 고가의 그림, 아파트 등 뇌물을 받는 등 국세행정이 개인 비리에도 이용되기도 했다.

또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현동 청장과 박윤준 차장이 국정원 대북공작금을 받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뒷조사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는 등 정치적 이슈의 중심에 서있다. 또 이명박 정부에서는 태광실업 세무조사,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순실과 관련된 이현주 대원어드바이저리 대표와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 등이 정치적 국세행정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정치적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국세청장이 직접 사과까지 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그런데 국세청의 정치적 행보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의 일만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정책을 펼쳤지만 잘 되지 않자 국세청이 서울 강남권 투기지역 등에 대한 집중 세무조사에 나섰다. 국세청은 언론을 통해 이런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케 하면서 집값 잡기에 이용했다. 다주택자 투기조사, 부동산 중개업자, 강남4구 등 주요도시 주택보유자, 주택 편법 증여거래, 금수저 미성년자 등이 조사 대상자가 됐다. 이들 세무조사 대상자들의 세금탈루를 적발하려면 평소에 소득세와 증여세 등을 제대로 물리면 될 일이다. 굳이 투기조사라는 명분을 붙여 정치적 구호로써 국민들 전체를 겁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승리 게이트’라고 불리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아레나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되자 국세청은 전국의 유흥업소에 대한 전국 동시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유흥업소 조사는 오랜기간의 내사 등 준비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시기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그나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평소에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정치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세무조사의 칼을 빼들고 달려드는 모습에서는 국세행정의 정치화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들어 실시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세무조사 면제’ 대책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자 자영업자 달래기에 국세청 세무조사가 또다시 동원된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국세청은 569만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세무조사와 사후검증을 2019년 말까지 유예 및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어려운 사업자, 즉 적자가게에 세무조사요원을 보내봐야 추징액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하는데 유예가 아니라 할 필요가 없는 사안을 유예한다고 생색낸다는 지적은 차치하고도 많았다.

실제로 현재 전체 개인사업자 중 약 0.1%만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당시 국세청이 발표한 대책에 포함되는 사업자는 고작 1000여명으로 대략 0.02%만 세무조사를 받는 것으로 추산되면서 실효성이 없는 ‘맹탕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소상공인의 경우 2011년부터 이미 연매출 100억원 이하는 세무조사를 면제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면서 국민들 사이에서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잠재적 탈세자로 보는 것이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성실납세 의식’에 큰 타격을 입히기도 하는 등 ‘정치적 국세행정’의 대표적 사례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우리나라 조세·재정정책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김유찬 원장은 홍익대 교수 시절 한 조세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개인사업자들의 세무조사를 늘려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개인사업자의 0.1%, 법인사업자의 1% 정도만이 세무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세무조사가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원장은 전체적으로 세무조사 빈도수를 늘려 납세자가 세무조사 대상이 될 확률을 상향조정해야 하며, 개인사업자의 경우 1%, 법인사업자의 경우 5%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현 국세청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예하거나, 면제한다고 했으니 국민들은 또다시 세무조사는 ‘재수없으면 걸리는 것이 세무조사다’라고 자조하면서 정치적 국세행정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런 국세행정의 정치화라는 지적에 손사래를 친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기 위해 정부정책에 발맞춰 국세행정을 펼쳐가고,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에 대해서도 그때그때 세무조사를 함으로써 국세청이 세법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와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세수여건에 따라 재량적으로 조절하거나, 정치적 이슈에 너무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청와대의 눈치, 정치권의 눈치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게 많은 선배 국세공무원들의 한결같은 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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