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형철 고문
(법무법인 세종)

1. 의 의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이란 ‘자기의 언동(言動) 등 어떤 표시에 의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사실을 믿도록 하고 그 믿음을 기초로 하여 어떤 행동을 한 경우 다른 사람에 대해 그 표시와 모순된 사실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일반 법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합법성을 희생하여서라도 납세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와 형평에 부합된다는 이념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합법성을 희생할 정도로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법 제2조제1항에서도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세기본법에서도 이러한 신의칙을 세법의 영역에 받아 들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5조【신의ㆍ성실】납세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세무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또한 같다.

이러한 신의칙은 납세의무를 이행하는 일반 납세자보다는 과세관청의 신의칙위반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과세관청이 세법지식, 권한 등 모든 면에서 납세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과세관청에 더 엄격하게 신의측을 적용하여 납세자의 신뢰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신의칙 위반은 이를 주장하는 자가 위반 사실을 입증하여야 한다.

과세관청이 납세자가 신의칙을 위반하였다고 보아 과세를 하는 경우에는 납세자의 배신과 과세관청의 신뢰보호 필요성을 입증하여야 하고, 납세자가 주장하는 경우에는 과세관청의 신의칙 위반사실을 입증하여야 한다.

2. 적용 요건

가. 과세관청의 신의칙 위반 판단 기준

법원에서 과세관청의 신의측 위반을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대법원 1985.4.23 선고 84누593, 1995.6.16 선고 94누12159외 다수).

① 납세자가 신뢰한 과세관청의 ‘공적인 견해표명’이 있을 것

‘공적 견해표명’은 원칙적으로 일정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세무공무원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요하며, 공표된 지시, 기본통칙, 예규통첩(질의회신), 문서에 의한 신고지도 등이 포함된다.

② 납세자가 과세관청의 언동을 신뢰하고 그 신뢰를 기초로 하여 어떠한 세무상의 처리를 할 것.세무처리를 요건으로 하는 것은 단순히 신뢰한 것만으로는 납세자의 이익을 침해한 바가 없기 어떤 형식이든 세무처리를 하여야 한다.

③ 과세관청이 그 언동을 하게 된데 대해 납세자의 배신행위가 없어야 함.

과세관청의 잘못된 언동의 표시가 납세자측의 사실의 은폐나 허위 사실의 고지 등에 원인이 있는 경우에는 납세자의 신뢰이익을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④ 과세관청이 자기의 언동에 반하는 세무행정상의 적법한 처분이 있어야 함.

과세관청의 처분이 위법한 경우에는 신의칙을 주장할 필요 없이 그 위법여부를 바로 다투면 된다.

⑤ 납세자가 과세관청의 공적 표명을 믿고 그를 기초로 세무처리를 함으로써 조세부담 등 경제적 불이익을 받아야 함.

세무처리를 하였더라도 조세부담이 증가하는 등 불이익이 없으면 보호할 신뢰의 가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 납세자의 신의칙 위반 판단기준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국세기본법은 명백하게 납세자의 신의칙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납세의무자가 과세관청에 대해 자기의 과거의 언동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신의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과세관청이 실지 조사권을 가지고 있는 등 세법상 우월한 지위에 있음을 감안하여 납세자에 대한 신의칙 위반은 제한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1997.3.20 선고 95누18393 전원합의체판결).

판례에서는 납세의무자에게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가 존재하고, ⒝ 그 행태가 납세의무자의 심한 배신행위에 기인하며, ⒞ 그 행태에 기인한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을 것을 그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1999.11.28 선고 98두17968 참조).

2. 적용 사례

가. 신의측 위반으로 본 사례

(1) 과세관청의 질의회신에 반하는 처분은 신의측에 위반됨(대법 2008두1115, 2008.6.12)

피고와 피고의 상급기관인 내무부장관은 원고에게 원고가 취득세 등을 면제받는 구 지방세법 제288조 제2항 소정의 ‘기술진흥단체’에 해당된다는 공적 견해를 구체적이고도 명백하게 표명하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또한 원고는 위와 같은 피고 및 내무부장관 등의 공적인 견해 표명을 신뢰하고 2002. 9.경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하였으며, 원고측이 위 견해 표명을 신뢰한 데 대하여 어떠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2) 수출업자의 금지금 부정거래에 대한 매입세액 공제/환급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됨(대법 2010두10396 , 2011.4.14., 대법 2011두29182, 2012.2.23)

수출업자인 원고가 이 사건 금지금 거래를 함에 있어 그 전에 있은 일련의 거래과정에 매출세액의 포탈을 목적으로 부정거래를 하는 악의적 사업자가 존재하고 그로 인하여 원고에 대한 매입세액 공제․환급이 다른 조세수입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사정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입세액의 공제․환급을 구하는 것이라면, 이는 악의적 사업자의 부정거래에 편승한 원고가 매입세액 공제․환급제도를 악용하여 악의적 사업자가 포탈한 매출세액의 일부를 이익으로 분배받고자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단계세액공제 제도를 취하고 있는 부가가치세 제도 및 전반적 조세 정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 되므로 국세기본법 제15조가 규정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3) 명의신탁받은 부동산을 임대차계약으로 가장한 행위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됨(대법원 2009.4.23 선고, 2006두14865 판결)

납세의무자가 명의신탁 받은 부동산을 신탁자 등에게 임대한 것처럼 가장하여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그 중 건물 등의 취득가액에 대한 매입세액까지 환급받은 다음, 임대사업의 폐업신고 후 잔존재화의 자가공급 의제규정에 따른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등에 대하여 그 부동산은 명의신탁된 것이므로 임대차계약이 통정허위표시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

(4) 국민신문고 서면질의 답변 및 세무공무원 현장확인 등은 과세관청의 공적인 견해표명이며, 이에 반한 처분은 신의칙에 위반됨(조심 2016서 2354, 2017.07.17)

청구인은 쟁점용역이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인지에 대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직접 서면질의를 하였고, 담당 세무공무원이 쟁점사업장을 방문하여 현장확인 후, 쟁점용역이 면세 대상이라는 서면답변을 하여 청구인이 이를 단순 민원에 대한 회신이 아닌 과세관청의 공적인 견해표명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청구인이 국민신문고 회신에 따라 쟁점용역을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용역으로 보아 당초 환급받았던 부가가치세를 수정신고하여 납부하고, 거래상대방으로부터 부가가치세를 징수하거나 신고·납부하지 아니한 데에 청구인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처분청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청구인에게 이 건 부가가치세를 과세한 처분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된다.

나. 신의측 위반으로 보지 않은 사례

(1) 국세청이 발간한 실무해설책자는 과세관청의 공적 견해표명으로 보기 어려움(국심 2007중1485, 2007.9.4)

국세기본법 제15조에서 규정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과세관청이 납세자에게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를 표명하여야 하고, 납세자가 과세관청의 견해 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데 대하여 납세자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납세자가 그 견해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무엇인가 행위를 하여야 하고, 과세관청이 위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납세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된 경우라야 할 것이다. 국세청이 발간한「종합부동산세 실무해설」은 그 발간의 주목적이 국세청 직원의 종합부동산세 업무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이를 납세자에 대한 공적인 견해표명으로 보기 어렵고,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세부담 상한액에 관하여 “전년도에 납부하였을” 보유세의 300%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그 기재내용이 전년도에 실제 납부한 세액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세부담 상한액을 고려치 않고 정상적으로 납부하였을 세액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여 납세자들이 전년도에 실제 납부한 세액을 공적으로 견해표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2) 세무공무원과의 상담내용은 공적견해표명으로 볼 수 없음(국심 2006부890, 2006.9.27)

이 건의 경우 1989년 당시 청구인이 사업자등록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자 세무공무원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세무공무원이 앞서 본 청구인의 주장과 같은 이유로 동 정정신고서의 제출이 불필요하다고 상담하여 주었는지가 불분명하고 설사, 그러한 상담이 있었다 할지라도 세무공무원과의 상담내용만으로는 과세관청이 공적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이 건 과세처분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하였다는 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3) 분식회계로 세금을 과다납부후 경정청구한 행위는 납세자의 신의측 위반으로 볼 수 없음(국심 2005중2933, 2006.9.15, 대법원 2005두6300, 2006.1.26 등)

조세법률주의에 의하여 합법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조세 실체법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은 합법성을 희생하여서라도 구체적 신뢰보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고 할 것이고, 과세관청은 실지조사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그 실질을 조사하여 과세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과세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책임도 부담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납세의무자가 자산을 과대계상하거나 부채를 과소계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실과 다른 결산을 하고 이에 따라 과다하게 법인세를 신고ㆍ납부하였다가 그 과다납부한 세액에 대하여 경정청구를 하여 다툰다는 사정만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될 정도로 심한 배신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과세관청이 사실과 다른 결산에 따른 법인세신고를 그대로 믿고 과세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할 수도 없다(대법원 2005두6300, 2006.1.26 ; 2005두10170, 2006.4.14 참조).

(4) 국세청의 인터넷상담과 다른 수정신고권장은 신의칙 위반이 아님(국심 2005서845, 2005.7.22)

청구주장과 같이 수정신고를 권장한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조세법률관계에서 과세관청의 행위에 대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는 첫째, 과세관청이 납세자에게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를 표명하여야 하고, 둘째, 납세자가 과세관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 대하여 납세자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셋째, 납세자가 그 견해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무엇인가 행위를 하여야 하고, 넷째, 과세관청이 위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납세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어야 하는 것인 바, 설령, 국세청의 인터넷 세무상담을 과세관청의 공적인 견해표명으로 보는 경우에도 처분청이 그 견해표명과 다른 내용의 수정신고를 권장하고 청구인이 그 권장에 따라 수정신고를 한 경우 처분청의 수정신고 권장행위는 납세지도 목적의 사실행위에 불과할 뿐 과세관청이 당초의 견해표명에 반하여 처분을 함으로써 납세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 아니므로 수정신고를 권장한 행위가 신의성실의 원칙 및 소급과세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청구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된다.

(5) 면세사업자등록증 교부는 과세관청의 공적인 견해표명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신의칙 위반이 아님(대법 98두2119, 2000.2.11)

구 부가가치세법 제5조, 구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7조 내지 제9조 등의 규정에 비추어 보면, 부가가치세법상의 사업자등록은 과세관청으로 하여금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를 파악하고 그 과세자료를 확보케 하려는데 입법취지가 있는 것으로서, 이는 단순한 사업사실의 신고로서 사업자가 소관 세무서장에게 소정의 사업자등록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고, 사업자등록증의 교부는 이와 같은 등록사실을 증명하는 증서의 교부행위에 불과한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사업자등록증에 대한 검열 역시 과세관청이 등록된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사업자의 신고사실을 증명하는 사실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세무서장이 납세의무자의 면세사업자등록증을 검열하고, 이에 따른 사업자등록증을 교부하거나 면세사업자로서 한 부가가치세 예정신고 및 확정신고를 받은 행위만으로는 세무서장이 납세의무자에게 그가 영위하는 사업에 관하여 부가가치세를 과세하지 아니함을 시사하는 언동이나 공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할 것이다(대법원 1988.3.8 선고, 87누 156 판결 ; 1992.2.25 선고, 91누 6415 판결 ; 1996. 1.26 선고, 95누 15575 판결 등 참조).

(6) 일반적인 법규에 대한 해석은 명시적인 공적견해 표명이 아님(조심 2010중3161 : 2010.11.30)

청구인의 질의에 대한 국세종합상담센터장의 질의회신 내용은 과세관청이 쟁점건물의 양도가 재화의 공급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업의 포괄양도라고 명시적으로 공적견해를 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일반적인 의미의 사업의 양도와 관련한 법규를 해석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고, 청구인이 과세관청의 단순한 질의회신문 내용을 근거로 쟁점건물의 양도가 사업의 포괄양도에 해당한다고 신뢰하였다면 청구인에게 사실판단을 그르친 귀책사유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인 바, 처분청이 쟁점건물의 양도를 재화의 공급으로 보아 청구인에게 이 건 부가가치세를 결정․고지한 처분은 달리 잘못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7) 허위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였다고 하더라도 납세자의 신의칙 위반으로 볼 수 없음(부산고법 2011누573 : 2012.7.19)

이 사건 건물에 관하여 실제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면서도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의료기관 개설신고 및 사업자등록에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 뿐, 조세와 관련하여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금전적인 이익을 취득한 것도 없으므로, 납세의무자인 원고의 심한 배신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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