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국민 참여의식 높여 통일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싶다”

140개 사학단체의 집합체 ‘미래로 가는 역사협의회’ 대표 취임
1만명 풍물패 출연 광화문광장서 ‘만북울림’행사 장엄하게 치러

‘온고지신의 열정가’…짧은 기간 ‘세무법인 오늘’ 내실 있게 운영
 

세무법인 오늘 대표이며, 한국세무법인협회장 손 윤 세무사는 본업이 세무사인지 사학자(史學者)인지 헷갈릴 정도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및 3.1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를 정점으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대한 그의 열정은 무서울 정도로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한 몸 불태워 독립사관 및 민족의 숭고한 얼을 후세에 바르게 알리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손 윤 세무법인 오늘 대표세무사의 발자취를 밟아 봤다.

◆사단법인 ‘미래로가는 역사협의회’ 상임대표 맡아

전국에 흩어진 사학연구단체 140여개가 뭉쳐 협의체를 만들었다. 그 단체는 ‘미래로가는 역사협의회’이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집합체로써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구심체로 보면 된다. 가입회원이 3만 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상임대표에 추대됐다.

‘세무사, 그것도 세무법인 대표가 본업이 전도된 일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던졌다.

저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다. 국부(國父)이신 의암 손병희 선생의 증손자뻘인데다 독립운동가 이시자 천도교도인 손석구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천도교의 경전과 주문 등을 배우면서 자랐다.

저는 자라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의암 손병희 선생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의암의 키워드는 ‘동학’ ‘민주주의’ ‘보국안민’ ‘비폭력’ ‘삼전론’ ‘평등사상’ ‘평화주의’ 등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1894년 동학군의 통령으로 동학혁명을 주도했다. 혁명이 현대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의해 좌절되자 함경도와 평안도로 피신하여 무역을 하기도 했다.

1901년 동학(북접)대도주로서 큰 뜻을 품고 ‘이상헌’이란 가명으로 일본에 문물 견학차 장기 출국, 우국지사의 보폭을 폭넓게 다지며 조국 광복을 모색한다. 1904년 국내 동학교인들로 하여금 진보회를 조직해 갑진개화운동을 펼쳤다. 이어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 독립만세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을 주도한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의 후유증으로 1922년 5월 19일 순국했다.

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의암 선생의 사상과 우국지사로서, 독립운동가로서의 큰 업적들이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과는 오도되거나 왜곡되고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국세공무원 시절 ‘의암 경영연구소‘를 만들었으며, 이후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신한대 교수)과 이찬구 ’겨레얼살리기 운동본부‘ 사무총장(전 카톨릭대학 교수) 등과 함께 사단법인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를 운영하며 본격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병행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말씀 하신 진정한 우국지사 손병희 선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벌써 13년째이다.

즉, ‘우리 안에 식민사관’ ‘바른 고조선사’ ‘고조선 우리역사의 탄생’등이란 책을 미래로 가는 역사협의회를 통해 펴내 왜곡 날조된 중국의 ‘동북공정’ 과 일본의 ‘식민사관’등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밖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학술논쟁을 불러일으킴으로서 대한민국의 주체사상을 굳건하게 하고 한민족의 단결과 통합의 의지를 함양함으로써 외세의 침략과 야욕을 봉쇄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역사바로세기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됐다.

◆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및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는?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주관행사와 동시에 열렸다. 민간 역사단체인 ‘미래로 가는 역사협의회’는 임시정부수립 100주년과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로 ‘대한민국은 누군가’라는 학술행사와 ‘만북울림’행사를 펼쳤다. ‘만북울림’행사에 전국풍물패 1만여명이 참석해 민족의 혼이 장엄함을 알렸다.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지만 오는 10월 3일 개천절 기념행사를 평양에서 남북공동으로 열 계획이다. 남북 역사학자들이 만나 ‘역사바로세우기 남북 학술대회’를 여는 것이다. 이미 북한 측에서 초청을 해서 현재 정부 관계자와 협의 중에 있다.

-‘만북울림 행사’에 예산이 많이 들어 갈 텐데 정부에서 지원이 있었나?

아직은 전혀 지원받지 않았다. 지원요청을 하지 않았고 뜻있는 참여자들의 후원금 3억 원을 들여 나름대로 성대하게 치러냈다. ‘미래로 가는 역사협의회’는 전국 140개 단체가 규합한 역사사관 단체다. 중국, 일본, 고조선 역사 바로 알리기 사업 일환으로 저술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미 출판된 ‘우리 안에 식민사관’ 및 ‘고조선 우리역사의 탄생’등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 국세공무원 33년, 기억에 남아있는 일 들은?

1977년 6월에 9급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첫 부임지가 대전지방국세청이었다. 90%이상이 첫 발령은 일선세무서인데 비하면 운이 좋았다. 지방국세청 근무에다 근무성적에 따른 평점까지 좋아 9급에서 8급 승진이 동료직원들보다 빨랐다. 통상 10년 이상 걸렸는데, 7년 만에 승진의 행운을 안았다. 주변 선배와 동료들이 ‘행운아’라며 부러워했다. 7급 역시 8년 만에 승진기회를 잡았다.

대전지방국세청에서 9년 근속하고 1986년 중부지방국세청으로 전보됐다. 중부청에서는 조사1국, 부천, 이천, 남양주 법인세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1994년 본청 감사과로 전보댔다. 감사과에서 3년, 삼성세무서 법인세과 2년,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실 3년, 국세청 대변인실 3년째 되던 2005년 5월 꿈속에서도 그리던 사무관으로 승진됐다. 사무관 첫 부임지는 이천세무서 조사과장, 그 다음으로 송파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팀장, 감사관실 감찰팀장으로 이어졌다. 대망의 서기관 승진은 서울청 조사1국으로 복귀 2년 만에 이뤄졌다.

서기관 승진 이후 서울청 조사1국 수석팀장을 거쳐 납세자보호관 1년 7개월 만에 부이사관으로 명예 퇴임했다. 2012년 10월 31일로 33년간 몸담았던 국세청을 떠났다. 서기관 승진 이후 일선 세무서장을 못해본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퇴임과 동시에 부이사관으로 공무원 최고영예의 ‘홍조근정훈장’을 받은데 만족한다.

◆ ‘세무법인 오늘’의 특화 및 비전은?

‘이것이 바른 길 이다’라고 판단하면, 오랫동안 생각한 후 바로 실천하는 단호한 제 성격의 장점이며, 한편은 단점이기도 하다. 장점의 예는 세무법인 오늘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설립 7년 만에 특화에 성공한 것이며, 단점의 예는 한국세무사회장 출마 두 번에서 한번은 자진사퇴, 또 한 번은 뼈아픈 고배를 마셨다(웃음).

단호한 성격은 세무법인 창립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2년 10월 31일 퇴임, 그 다음날인 11월 1일 세무법인 오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물론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개인세무사 사무실을 리모델링해 법인으로 전환시킨 것 뿐 이지만 빠른 움직임에 주변에서 놀라는 표정들이었으며, 동시에 격려와 축하도 어우러졌다.

지인들의 격려와 축하 덕분으로 세무법인 오늘은 내실이 탄탄한 실속 형 법인으로 거듭났다. 설립 7년 만에 나름대로 고속성장을 일궈냈다. 본-지점을 합해 세무사 35명, 회계사 13명, 변호사 5명이 포진돼 있다.

세무법인 오늘의 특화는 전문성과 분업화다. 한 지붕아래 세무법인을 모체로 해서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이 공존한다. 한 지붕아래 세 가족이 사는 셈이다. 결산은 철저히 따로 하되 통합세무서비스를 구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래서 세무법인 오늘의 경우 조세불복사건에서 조세심판원의 인용률은 85%, 행정법원 소송의 승소율은 90%를 상회하고 있다.

◆ 세무사로서의 삶과 철학

성장 과정에서 애국이며 보국이며, 독립사상, 남아로서의 의기(意氣) 등에 관한 말씀을 독립 운동가이신 손석구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공직생활에서는 보국하는 자세로, 세무사가 된 이후엔 애국애민 자세로 임해왔다.

국세청 재직 33년을 뒤돌아보면 20년 넘게 조사국과 일선 세무서 법인세과에서 근무했다. 재직시 보고배운 재능과 노하우를 국민(납세자)을 위해 쓰는 게 나를 국세청 중간간부로 키워준 국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세무법인 오늘은 ‘세무-회계-불복-소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로 운용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주는 인건비 및 운영비를 제외한 이익은 한 푼도 손대지 않고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나의 작은 소신이 국가에 대한 보답이며, 독립운동가 가문의 후손이 걸어야할 필연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기간 세무사를 하면서 회한도 따른다. 한국세무사회장 선거전에 출사표를 두 번 던 져 한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당시 이창규 회장을 지지한다는 성명과 함께 사퇴했다. 또 한 번 은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나의 과감한 회장 선거 출마로 가깝게 지내는 동료 및 선후배 세무사들에게 누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때늦었지만,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나름대로 출마 동기는 충분했다. 이전투구, 사분오열, 불통의 세무사회를 화합과 소통의 회로 전환, 헌신 봉사하는 회장으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판단해서였다. 그리고 세무사의 고유 업무인 기장, 세무조정, 성실신고확인업무를 곧 변호사들에게 다 내어주게 됐는데도 정작 세무사가 꼭 필요한 ‘소송대리권’을 쟁취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당위성과 명분이 뚜렷한 데도 지금껏 쟁취를 못하는 것은 세무사회장 및 집행부가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 유년시절의 기억

태어난 곳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중앙동이다.

독립 운동가이며 천도교도인 손석구 씨가 할아버지시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천도교의 경전과 주문 등을 배우면서 자랐다. 아버지 사업장이 서울이기 때문에 초등학교는 3학년 때까지 서울에서 다녔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고향 영동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는 고향 영동에서 마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집안이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서 중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가정형편도 나아져 대전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명문 대전고등학교를 졸업, 서울대학교(사회계열)에 지원하였으나 낙방했다. 정규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국세공무원이 되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그동안 아버지 직업에 관한 것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나만의 비밀이었는데, 세정일보 기자와의 대담에서 처음으로 밝힌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인이 경영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 ‘명동 허바허바 사진관’의 주임기사셨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이 아버지에게 사진관 운영권을 물러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려받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비록 월급 받는 기사로 일했지만, 독립운동가의 아들로서 적산재산을 넘겨받기에는 양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진관을 제자 사진기사에게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청도 최초 사진관 ‘본정 사진관’을 열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버지의 본정사진관은 얼마 못가 문을 닫았다. 학업을 유보하고 공무원 시험을 본 이유가 아버지의 사업 폐업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 자식농사는 어떻습니까?

슬하에 아들하나 달랑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명문대 경제학과 동기로 연애커플이다. 예쁘고 착한 손녀를 낳았다. 아들부부가 알뜰해 얼마 전 아파트까지 장만해 대견스럽다. 아버지의 바람은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아들과 며느리 모두 애국 애족정신의 기본을 잃지 않고 불우하고 가난한 이웃들과 특히 어렵게 사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돌봤으면 한다.

◆ 지식농사는?

국세청 명예퇴임 기념으로 ‘긴급명령, 국부손병희를 살려내라’를 펴냈다. 이 책은 총 188페이지에 이르는 단행본이지만 의암 손병희 선생에 대해 오도되고 왜곡된 부문을 낱낱이 찾아내 지적함으로써 역사 바로 알리기 이정표에 초석이 되고 있다.

그는 책 서문에서 ‘지워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찾아 나서며…’라는 과감한 표현으로 눈을 이끈다.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경제전문가도 아니다. 역사학자는 더욱 아니다. 단지 ‘손병희 선생기념 사업회’와 ‘의암 경영연구소’를 만들어 주류 역사학자들이 외면하는 대한민국성립과정의 비밀을 밝히고, 수백만의 위대한 선열들이 뿌린 피와 땀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

목록에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손병희 선생이 진짜 국부다 △대한민국 건국일은 3월1일이다 △손병희 선생, 동학을 천도교로 재창건하다 △삼일운동의 최고지도자는 손병희다 등 총 8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의암 손병희 선생을 바로 알리기 위해 손병희 선생이 110년 전에 쓴 ‘준비시대’를 쉽게 재해석해 책으로 펴냈다. 묻혀 지면 안 될 진실을 재조명한 것이다. 선생은 ‘준비시대’라는 글에서 ‘힘이 정의’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약소국가 약소민족으로 일본의 강력한 무력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준비시대’는 신성한 단군 국조의 4천년 국가의 전통과 이조 5백년 종묘와 사직을 영원히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여 세계국가와 더불어 행복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손 윤 세무사는 책의 서문에서 ‘준비시대’는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한문으로 구성돼 있어 이해와 해독이 어려워 우리글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의암의 ‘준비시대’는 1919년 3.1독립선언에 이어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 제정(1919년4월11일)과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게 한 기초가 되었는데, 우리는 1백년 이상 우리 문화자산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며 의암은 이 책에서 대한민국은, 그리고 우리는, 분단 조국의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암 경영연구소를 운영하며 역사학 논문으로 ‘보은동학민회와 북접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를 동학학회에, 무역학 논문으로 ‘조세법률서비스의 국제경쟁력 제고방안(MDP를 중심으로)’을 한국통상정보학회에 제출해 인정받았다. 그는 또 경제학박사 논문으로 ‘조세‧법률‧회계 서비스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방안’을 제시했다.

◆ 버킷리스트,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확대,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민족의 얼을 되살리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에 한 몸 불사르고 싶다. 또 하나의 소망은 손병희 선생의 ‘천도교사상과 철학이 미래를 밝혀줄 유일한 등불’임을 알리고 곧 천도교 사상이 인류 최고의 가치인 평화를 이끌게 된다는 묵직한 담론의 책을 남기고 싶다.

◆ 존경하는 인물은?

의암 손병희 선생, 수운 최제우 선생, 해월 최시형 선생을 존경한다. 이들 세분은 온갖 고초와 풍파를 겪으면서도 오직 보국안민과 척왜척양 광제창생을 위해 순국 순도한 성인이시다.

세분은 불행했던 조국의 근대를 살면서 우국충정의 사상과 철학은 오직하나 보국안민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셨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경제대국 11위의 반열에 오른 원동력이 이들 성인들의 혼이 후세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손 윤 세무법인 오늘 대표세무사는?

온고지신의 열정가다. 13년 전 국세청 재직시 ‘의암 경영연구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손병희 선생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다. 처음에는 집안 할아버지에 대한 뿌리 찾기로 시작했다가 선생에 대한 사관이 오도되고 왜곡됐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실을 역사학회에 알리고 바로잡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렇게 시작한 열정의 정점은 끝이 없다. 그는 지난해 “역사학자들이 앞장서 잘못된 사관을 바로잡고 나아가 남북학자들의 교류와 함께 오는 10월 평양에서 역사학술대회를 공동으로 열어 평화통일의 초석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거대한 공동체가 구축됐다. 그 공동체가 ‘미래로 가는 역사협의회’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단체 140개가 규합된 단체다. 이 단체를 구축된 핵심리더가 손 윤 대표세무사다. 상임대표로 추대됐다. 상임대표로 추대된 손 윤 대표는 지난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장엄하게 치러냈다.

이른바 ‘만북 울림행사’를 광화문광장에서 펼쳤다. 전국의 풍물패 1만명이 모여 만북의 울림행사를 장엄하게 가졌다. 병행해 ‘대한민국은 누군가’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도 열었다.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열정을 다 쏟아버리면 세무법인 운영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법인운영을 대표가 하나요. 이미 안전판의 시스템이 짜여 져 걱정이 없다”고 했다. 법인설립 7년, 짧은 기간에 세무사 35명(지점세무사포함), 회계사 13명, 변호사 5명이 포진돼있다. 현재 세무법인 지점도 21개이다. 온고지신의 열정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경력

-세무법인 오늘 대표세무사
-한국세무법인협회 회장
-(사)의암 손병희선생기념 사업회 이사장
-(사)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사)미래로 가는 역사협의회 상임대표
-(재)천도교유지재단 이사장
-의암경영연구소 소장

◇학위

-동국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