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란 영화는 완벽한 삶과 죽음, 인간에 대한 존엄과 삶의 가치, 그리고 도전과 사랑,인생에 대한 영화였다. 특히 요즘 장수 시대에 삶의 길이가 그렇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였다.

사지가 마비되고 언행이 스톱된 가운데 약의 도움으로만 침상에서 5년, 10년씩 누워서 생명만을 지탱해 가는 삶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지 못하며 목숨만 이어가는 삶이 과연 죽음 보다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숙고하게 하는 영화였다.

더구나 요즘은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위적으로 수명을 연장하여 그것에 지탱한 삶을 버텨 나가는 나이드신 분들이 주위에서 보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웰빙, 웰 리빙, 웰 다잉을 더욱 깊고도 절실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건강 등이 받쳐주지 못한 다면 백세시대는 허울뿐인 것이 아니겠는가를 자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나에게 닦쳤을때 내 의지가 제대로 작동 될 것인가?

남자 주인공, 프랭키(클린트 이스트)는 75세의 나이에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관장이다. 그리고 그의 동료 스크랩(모건 프리먼)은 한때 복서였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챔피온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체육관에서 허드렛 일을 도우며 프랭키와 그럭 저럭 시간을 보내며 함께하고 있다.

스크랩이 복서였을 때 프랭키는 링 밖에서 지혈 담당 세컨을 담당 했었고 스크랩은 시합 도중에 상대 선수로부터 일격을 당하여 눈위에 큰 부상을 입어 당시 프랭키가 돌보던 중 눈속에 피가 들어가 눈이 실명된 상태다. 복서로서는 비운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나 늘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역시 클린트 이스트 우드와 모건 프리먼 답게 연륜이 배어 나오는 농익은 연기를 보여줘 감상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기대와 관심이 가는 영화였다.

도장에는 윌리라는 세계 챔피온 유망주가 훈련을 하고 있으나 프랭키는 스크랩의 부상 트라우마로 인하여 윌리의 도전을 망설이면서 연습 경기만을 계속하며 좀처럼 챔피온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서에게 있어서 세계 챔피온 도전의 꿈은 가히 무조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윌리라는 선수는 복서로서 완벽에 가까운 기량과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두려움 없이 도전을 즐김은 물론 챔피온에 대한 열망으로 혼을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프랭키는 몇번의 시합을 더하여 더욱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챔피온 도전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윌리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붙기만 하면 세계 챔피온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되 있고 스크랩 역시 프랭키에게 그 점을 충언한다. 기다리다 지친 윌리는 프랭키를 배신하고 다른 매니저와의 계약을 통해 챔피온 경기에 도전하여 챔피온 벨트를 거머쥔다.

프랭키가 그렇게 열정 들여 8년 동안이나 키운 월리가 다른 매니저와 계약 후 세계 챔피온에 오른 점에 프랭키는 인간적 배신감은 물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깊은 자책과 함께 낙담하며 스크랩과 조용히 체육관의 한쪽에 쭈그려 앉아 스크랩과의 쓰라린 추억을 나눈다. 스크랩의 실명에 대해서 회한에 찬 대화를 주고받는 듯했다.

그 순간!

체육관의 어둑 컴컴한 한쪽에서 샌드 백을 열심히 땀 훌리며 두드리는 여성이 눈에 뛰었다. 그는 프랭키를 보자마자 자기를 복서로 키워달라고 말한다. 이에 프랭키는 "나는 여자는 복서로서 키우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이 또한 프랭키 나름의 철칙인 듯 했다.

사실 그는 매기라는 인물로서 나이는 32살, 여성이고 나이면에서도 권투 선수로서는 시기가 지났다고 판단하는 듯 했다. 가정적으로도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 술주정뱅이이고, 어머니는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무뇌의 뚱뚱한 여성으로서 슬럼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등 가정 형편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본인 또한 현재 웨이트리스로 근근히 생활을 버티고 있는 입장이다. 모든 게 한계 상황이다.

그러나 그녀는 형편이 그런데도 복싱에 대한 열정과 목표에 대한 도전 정신이 충만 되어 6개월치 코치비까지 체육관에 선지불하고 자신을 복서로 키워 달라며 매일 매일 연습장에 나와 열정을 쏟는다. 프랭키 역시 체육관 형편상 코치비를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프랭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어느 날 매기의 열성을 유심히 지켜본 스크랩은 프랭키에게 그녀를 복서로 키워줄 것을 충고한다.

결국 프랭키는 매기의 열정에 감복하여 그녀를 받아들이고 복서로서 훈련을 시키기로 한다. 프랭키가 그녀에게 당부하는 복싱의 제1번 룰은 "자기 몸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꾸하지 말고 따라오라"라며 코치를 하게 된다. 복서로서의 천부적인 재능과 거기에 더하여 열정과 성실성을 겸비하여 매기의 실력이 일취월장 성장해가며 프랭키와 매기는 서로를 인간적으로도 깊이 알아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스크랩은 매기가 어느 정도 실력이 오르자 다른 매니저를 알아보라고 은근히 충고한다. 아무리 실력이 향상되어도 프랭키의 스타일상 챔피온 도전은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 집착과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결국 매기에게도 적용되어 챔피온전까지 나가는데는 윌리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스크랩의 판단인 듯하다.

챔피온 도전에 목마른 매기는 결국 다른 매니저와 계약후 챔피온에 도전한다. 오매불망. 그자리에 스크랩과 프랭키가 없을리가 없다. 멀리서 두 사람은 매기의 경기를 지켜본다. 프랭키는 1라운드가 끝나고 상대에게 휘둘리고 있는 매기를 보고 급히 링 곁으로 다가가 매기를 코치 한다. 순간적으로 프랭키는 매기에게 위험이 닦침을 직감했던 듯하다.

링심판이 의아해 하자 자신의 선수라며 코치를 시작한다. 매기도 그렇다는 듯 받아들인다. 멋진 KO승을 거둔다. 이렇게 수많은 경기가 이뤄지고 매기는 연전연승의 가도를 달린다. 어느 날 경기 도중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되어 출혈이 심하여 계속 경기를 할 수 있을까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지혈 후 피가 멎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시간은 20초, 프랭키는 매기에게 그 시간 내에 상대를 때려 눕히라는 주문을 한다. 매기 또한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상대와 마주친다. 천재적인 복서이며 충분한 훈련이 되어있는 매기가 그 순간을 놓칠리 없다. 보기좋게 일격, 상대를 링바닥에 때려 눕힌다. 통쾌한 KO승 이다.

드디어 더 이상의 상대가 없을 정도로 복싱 기량이 향상된 매기는 세계적인 선수이며 반칙의 여왕이자 한사람 정도 죽이고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독일의 푸른곰이라는 잔인한 선수와 일전을 치룰 준비를 한다.

불패 신화의 세계적인 챔피온 푸른 곰이라는 선수!

이 선수의 벽을 넘으면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복서가 되는 것이다. 세계 정상에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프랭키는 싸움전에 매기에게 ‘모쿠슈라’라는 글귀가 등에 새겨진 가운을 한벌 선물한다. ‘모쿠슈라’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묻는 매기에게 푸른 곰을 이기면 알려 주겠다는 말로 대신한다.

그러나 프랭키는 매기를 신뢰하면서도 스크랩과의 과거 트라우마가 늘 머리속에서 똬리를 틀고 괴롭힌다. 이번에도 매기에게 "가드를 늘 올리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피를 흘리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얼마나 선수에게 괴로운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아는 프랭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이 룰의 제 1번이라고도 거듭 강조한다.

드디어 푸른곰과 일전이 붙었다. 역시 매기는 지금까지 모든 선수들을 일격에 다운시켜 KO승을 거뒀듯이 푸른곰 역시 역량과 기량이 매기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매기가 날리는 펀치에 푸른 곰은 맥을 못추고 비실비실하며 힘들어 하는 것이었다.

세계 챔피온 자리가 바로 목전에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원투, 스트레이트, 어퍼컷 등 그녀가 날리는 주먹은 송곳같이 날카롭고도 거세게 푸른 곰의 곳곳에 정확히 꽂혔다. 푸른곰은 괴로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패배의 기운이 감돌았다. 매기의 눈은 더욱 빛을 발했다.

아뿔사!

매기가 관중의 열화와 같은 응원과 환호속에 1라운드를 압도적으로 우세한 가운데 훌륭하게 치루어 챔피온은 따논 당상 같았다. 그러나 가드를 내린 채 자기 코너로 돌아가는 순간 패배하기는 싫고 실력으로는 매기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푸른 곰은 매기의 뒤에서 일격을 가한다. 물론 반칙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매기가 잠시 쉴 수 있도록 세컨에서 의자를 들여놓는 순간, 매기는 그 의자에 머리를 대고 쓰러졌다. 매기의 경추뼈가 골절 되면서 매기는 목 아래가 모두 마비되어 숨만 쉴 수 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최고의 영광을 앞둔 순간에 결정적인 불운이 닦쳐 온 것이다. 매기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매기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동생들은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와서 돈부터 챙기려 한다. 손도 못 사용하는 매기의 입에 만년필을 물게한 후 매기의 모든 재산의 소유, 사용권의 내용이 있는 문서에 사인을 시도한다.

이를 눈치 챈 매기는 입에 물려준 사인펜을 떨어뜨리고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다시는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 나타나면 이미 사준 집까지 몰수 하겠다"고 말해 준다. 가족들은 겸연쩍게 병실에서 부랴부랴 뛰쳐나간다. 이제 매기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프랭키뿐인 것 같았다.

프랭키는 매기가 쾌유가 불가능함은 물론 선수로서 재기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괜히 매기를 복싱에 입문 시켰음을 강하게 자책하는 가운데 "죽여 달라"는 매기 앞에서 단호히 안된다고 하면서도 신부를 찾아가 협의 하는 등 매기에게 바람직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겠는가를 놓고 갈등한다.

매기는 자신의 처지를 못견뎌하며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한다. 고민 끝에 프랭키는 주사 바늘 두개를 준비하여 매기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간호사 모르게 매기의 몸에서 약물이 주입되는 주사기를 제거하고 가지고 온 주사기를 매기의 손에 놓는다. 매기가 서서히 숨을 거둔다. 매기가 죽어가는 볼에 키스를 마친 프랭키는 휴대한 가방만을 들고 유유히 병실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영화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집념으로 뜻한 바에 대해서 끝내 성취를 이루는 도전과 영광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아울러 코치와 제자간의 사랑을 뛰어 넘는 따뜻하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그림으로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파하는 듯 하다.

이 영화의 진정한 테마는 부모 자식간의 혈연관계도 아니고 남녀간의 연인관계도 아닐지라도 진정한 인간관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려는 듯하다. 혈연관계를 초월하고 뛰어 넘는 관계가 과연 이런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깊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매기는 불운한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복서가 되어 목표한 바를 성취하였고 연전 연승을 함으로써 승리의 쾌감이 무엇인가도 느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넓고 높은 세상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니 매기는 프랭키에게 "현재의 상황은 죽음만큼도 못하니 죽여 달라"고 한다.

세계 복싱 무대를 휘어잡고 통쾌한 승리감만이 그녀의 삶이었던 순간들이 이제는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으니 그 상황을 어느 누군들 감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장삼이사 누구든 매기의 입장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범죄이고 그 죗가를 받게 됨을 알면서도 프랭키는 매기의 진정한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사실 목위 부분만 살아있는 매기는 살아 있다고 해도 죽음만도 못한 잔인한 삶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정으로 매기를 친족 이상의 관계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자기를 희생하며 굳이 안락사를 감행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말이 안락사이지 엄연한 살인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사랑이다. 나 역시 저런 삶과 죽음의 경계 상황이라며 스스로에게 안락사를 요청할 것 같다. 또 상대가 저런 경우라면 안락사를 고민해볼 것 같다. 그러나 나를 희생하며 실행하기는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프랭키는 매기에게 선물한 가운 뒤에 새긴 ‘모쿠슈라’라는 의미에 대해서 매기가 죽기 직전에 귀에 대고 속삭이 듯 설명해 준다. 즉 ‘나의 소중한 나의 혈족’이라고, 프랭키의 매기에 대한 관계를 한마디의 글귀로 잘 나타 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안락사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기의 주검을 껴안고 통곡하며 ‘모쿠슈라’라는 단어의 뜻을 전하는 프랭키의 휴머니즘을 통해서 완벽하고 진정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케하는 영화임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전반부는 다소 지루하고 권투 영화겠거니 하는 선입견 때문에 큰 감흥없이 감상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먹먹한 마음으로 한동안 앉아 있었다. 역시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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