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고객이던 미군 떠나자 상인들 '울상'…주민들 "빨리 시민공원 생겨야"
미군 범죄 급감…SOFA 사건 2017년 119건→작년 97건→올해 5월까지 25건

2018년 6월 29일. 1945년 9월부터 73년간 서울 용산에 머물던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했다.

아직 한미연합사령부가 용산에 남아 있으나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한 만큼 주한미군의 '용산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난 셈이다.

용산 미군 시대가 막을 내린 지 1년. 미군들이 주로 활동하던 이태원 지역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경기 둔화와 임대료 상승 등 여러 요인으로 영업이 어려워진 가운데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고객 감소가 직격탄이 됐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반면 미군이 이전하면서 미군과 군무원, 이들의 가족들이 심심찮게 일으키던 각종 사건·사고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술에 취한 미군 병사들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폭행이나 성추행 등이 과거에는 비일비재해 경찰의 골칫거리였으나 최근에는 감소세가 뚜렷하다.

◇ '주요 고객' 떠나고…썰렁해진 이태원 상권

지난 7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 용산구 내 대표 명소로 꼽히던 이곳은 금요일 점심시간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경리단길 중간에 있는 한 미국식 바비큐 전문점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식당 지점장은 "미국식 음식을 팔고 가게 분위기도 미국 느낌이어서 미군이 많이 찾았는데 지금은 미군 손님을 거의 찾기 어렵다"며 "외국인이 많이 찾아야 외국 느낌이 나면서 한국 손님들도 더 오는데 상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이태원 해방촌과 경리단길 사이에 있는 한 호프집은 손님보다 빈자리가 더 많았다.

5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김재한(49)씨는 "고객 70%가 미군이나 미군기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는데 다 빠져나가면서 장사가 잘 안된다"며 "잘될 때는 월 매출이 2천500만원 정도 됐는데 지금은 1천만원 아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임대료까지 오르다 장사가 안된다고 건물주에게 설명하니 몇달 전 월세를 17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낮춰 줬다"며 "그런데도 장사가 안돼 최근 부동산에 가게를 내놨다"고 했다.

실제로 경리단길 초입만 해도 나란히 붙어 있는 가게 6곳이 모두 비어있었고,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걸린 상점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24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태원 상가(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9년 1분기 24.3%를 기록했다. 6년 전인 2013년 1분기(3.6%)와 비교하면 20%포인트 넘게 올랐다. 서울의 평균 상가 공실률은 7.5%다.

이태원 인근 해방촌에서 항아리 상점을 운영하는 신연근(82)씨는 "한국인보다는 미군이 기념품으로 항아리를 많이 사 갔는데 요즘은 장사가 거의 안된다"고 말했다. 해방촌에서 샌드위치와 맥주 등을 파는 한 가게 주인도 "미군이 점심시간에 자주 왔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태원의 한 공인중개사는 "미군 부대 이전으로 외국인 인구가 많이 줄었고 프랜차이즈 상점이 대거 들어오면서 이태원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많이 퇴색됐다"며 "1억∼2억원은 부르던 권리금은 사실상 제로가 됐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미군이 빠져나간 용산기지가 정부 계획대로 하루빨리 공원으로 탈바꿈해야 지역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태원 1동 주민 임지홍(65)씨는 "미군기지 이전으로 미군이 안 보이는 건 당연하고 상권도 많이 죽는 등 변화가 컸다"며 "부산은 하야리아 부대가 빠지면서 상권이 침체했다가 시민공원이 생기며 다시 회복됐다는데 용산 미군기지도 빨리 국민 품으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1950년부터 부산시 한가운데 있던 미군 하야리아 캠프는 한미협정을 통해 2006년 폐쇄됐고, 2010년 부산시에 반환돼 2014년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했다.

◇ '골칫거리' 미군 관련 사건사고 크게 줄어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는 동안 이태원은 미군부대 근무자들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로 몸살을 앓던 곳이었다. 미군기지가 이전하자 미군이나 군무원, 이들의 가족들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는 자연히 감소하고 있다.

한때 이 지역에서는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미군 군무원 아들이 한국인 대학생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이태원 살인사건', 2013년 미군 하사가 병사들과 함께 이태원에서 시민을 향해 BB탄 총을 쏘고 경찰을 피해 도심에서 시속 150∼160㎞로 운전한 '이태원 BB탄 난동 사건' 등이 발생해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러나 미군 이전으로 야간에 이태원을 찾는 미군 자체가 줄면서 미군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눈에 띄게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이태원의 한 클럽 앞에서 만난 대학원생 송모(26)씨는 "남자친구가 미군인데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아무래도 미군들이 이태원으로 놀러 나오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며 "이태원 하면 외국인인데 지난해와 비교해 미군뿐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한 파출소 경찰관은 "이태원은 술집이 많고, 미군들이 놀러 나왔다가 술을 마시고 실수해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이 심심찮게 있었다"며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미군들이 이태원을 찾는 경우가 그만큼 줄어 미군 관련 사건·사고도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접수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형사사건 건수는 2017년 119건에서 2018년 97건으로 18.5%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는 5월까지 겨우 25건이어서 이같은 추세라면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용산구의 한 지구대 팀장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본국으로 돌아가는 미군들이 탄창 등 군 장비를 가지고 출국을 시도하다 공항 검색대에서 잡혀 인계받으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미군부대 이전 이후로는 이런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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