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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담] ‘지성의 리더’ 채상병 참세무법인 대표세무사

정영철 기자l승인2019.07.10 08: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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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 수평적 관계유지로 사기진작
‘외식사업 세금절세방안’ 22년간 45만 명에 강의 ‘진기록’ 세워

대중음식점 절세전문가 법인 특화…고품질 서비스로 ‘승부수’
“上善若水노자사상에 매료 ‘나눔-사랑의 전도사’로 보폭 넓혀”

 

“직원관리는 손안에 비둘기를 잡는 것과 같다. 꼭 잡아도, 느슨하게 잡아도 날아갈 위험이 있다. 특별한 외부 일정을 제외하고는 평소 오전 9시 직원들과 같은 시간대 출근하고 오후 6시 퇴근을 원칙으로, 가능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대표세무사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며 일관된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진다.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서비스품질역시 저하 된다. 수평적 신뢰가 사기진작의 모멘텀으로 작용된다고 생각한다.”

참세무법인이 세무업계 10위권 반열에 올라있다. 경영비결이 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은 우문현답의 답이 돌아왔다.

인생은 70세 부터라고 했든가? 머리는 백발인데, 얼굴은 50대의 동안이다. 아직 활기가 넘친다. 나이테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나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선후배 세무사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세무사, 그가 바로 참세무법인 대표 채상병 세무사다. 세무사업계는 그를 일컬어 ‘지성의 리더’라고 평가한다. 차 한 잔 나누며 세무공무원 시절의 에피소드, 세무사로서의 인생철학, 버킷리스트 등의 얘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 국세공무원 시절의 에피소드?

-저는 국세공무원을 젊은 나이에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첫 발령지가 남대문세무서 조사과였다. 이어 서울시내 4개 세무서와 2개 지방국세청에서 근무를 했다. 지방국세청이나 세무서에 근무 할 당시는 주로 조사부서 내지는 소득세나 법인세 관리부서에서 일했다.

조사부서나 법인세 등 관리부서에서는 직접 조사도 담당했는데 제가 조사에 임하게 되면 나름대로 성격이 꼼꼼하고 집요한데가 있어서 조사 실적을 많이 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부과하는 수치는 많지가 않아서 항상 윗사람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렇다고 술을 얻어먹거나 뒷거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충청도 충주(당시는 중원군)의 엄격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항상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사 대표자나 중간 관리자가 찾아와 먹고 살려고 한 짓이니 선처를 바란다던지, 많은 세금을 부과 받으면 제 자리의 보전이 어렵다고 통사정을 하면 스르르 풀어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성격이 모질지가 못하고 인정에 약한데다 역지사지의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말단 세무공무원이 월급봉투를 쪼개 연말 관내 모범납세자 30여명에게 사과 1상자씩을 선물한 것이 오해를 불러 ‘희귀한 선물사건’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동대문세무서 소득세과 근무당시로 기억된다. 세금도 많이 내고 친절하게 지내며 가끔 식사도 하는 30여명의 납세자에게 연말에 월급을 타서 사과 한 상자씩을 보냈다. 이 때문에 관내에서 난리가 났다. 담당 세무공무원에게 도움도 주지 않았는데, 웬 선물이냐며 반색의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

이북에서 넘어와 제과점을 하시던 어떤 분은 “30년간 사업을 했는데 세무서 담당한테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라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인정으로 맺어진 분들과는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법인에 고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 ‘인생2모작’ 세무사로서의 삶과 철학

-저에게는 세무사업이 인생2모작이라는 말보다 인생1모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국세공무원 시절 빠르게 승진도 하고 서울시내에서 편안하게 공직 생활을 했지만 늘 마음 한쪽이 빈 것 같고 허전함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국세공무원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중지방국세청 조사과에 근무하면서 퇴직을 결심하게 됐다. 퇴직하게 되면 뭘 할 것인가 생각하다 세무사를 하면 잘 할 것이고 앞으로 경제규모가 커져서 세무사가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1982년 1월 세무사시험에 합격해 세무사자격증을 땄다. 세무사시험에 합격한 후 일선 세무서에 나와서 1년간 근무하면서 준비하고 바로 개업을 결행했다. 그때가 1983년 1월20일, 15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퇴직 후 9일 만에 ‘세무사 채병상 사무소’를 개업했으니, 번개 불에 콩 구어 먹는 식이었다,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가 서울시내 국세청이나 세무서 근무한다는 것은 대단히 선망하는 직업이었지만 본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일선에 근무하면서 당시 납세자들이 세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과다한 세금을 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 이분들을 돕는 세무사를 직업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어언 3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긴 세월 세무사업을 경영하면서 세무사의 길을 선택 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개업 당시에는 30대 중반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조기퇴임 결심을 잘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세무사로서 일하면서도 세법에 어긋나는 업무를 하지 않았고 더구나 국가재정에 누를 입히는 얄팍한 짓은 하지 않았으며, 세무사로서의 긍지와 자긍심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납세자의 정당한 권익과 재산보호를 위해 억울한 세금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서 지켜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세무사는 공평한 세정, 공정한 세정이라는 국세행정의 기본의무를 준수하며, 사업자의 세금을 잘 관리하고 절세를 돕는 직업이라는 사명감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세무사를 개업하면서 목표설정은 분명히 했다. 개업 후 10년 내에 우리 세무사 업계의 정상에 오른다는 목표였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개업 후 8년이 되는 해에 종합소득세 납세실적 4위를 했고 10년째 되는 해(1993년) 2위를 차지, 종합소득세 1억 5천만원을 납부하게 됐다. 이는 저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활황인데다 모든 세목에서 자진신고납부제도를 적극 도입했던 상황에 힘을 받아 세무사사무실 경영도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참세무법인의 운영 방향과 업무 특화

-참세무법인은 제가 개인사업자로 23년간을 운영하다 2006년도에 법인설립을 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당시 법인으로 사업형태를 전환한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사업의 전문화와 대형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는 세무사사무실을 법인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가 않아서 세무법인 숫자가 불과 20~30개 내외였지만 현재는 그 숫자가 700여개에 이른다.

참세무법인의 운영방향은 △고객의 요구를 최우선, 최고품질의 서비스를 생산해서 적정한 가격에 공급한다. △최고품질의 서비스는 창의력 향상에 있다고 판단하고, 연구개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고객이 없는 세무사는 사막에 내쳐진 물고기와 같다. 그래서 서비스의 공급자는 항상 고객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적법하게 세금을 절세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 직원이 이를 실천하도록 열심히 훈련하고 교육하고 있다.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는 품질이 좋고 값은 싸야 잘 팔린다고 강조하며 전 종사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옛날 속담에 ‘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모든 고객에게 항상 친절하게 응대하고 업무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때에 처리해야 한다고 교육하며, 남보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해야 원가를 낮출 수 있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서비스 품질도 남보다 좋아야 하지만 사업의 전문화도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요소라는 생각에서 전문화 할 업종을 찾았다. 개인 세무사를 할 때부터 외식업중앙회 중앙교육원에 매주 2~3회 강의를 나가는 관계로 우리나라 사업자 중에 숫자가 가장 많은 대중음식점을 전문화업종으로 선정해서 많은 브로슈어나 팸플릿을 만들고 TV(서초방송) 광고를 했다. 결국 예상이 맞아 떨어져 현재 거래처 중에 음식업을 경영하는 사업자의 숫자가 상당히 많다.

아울러 최근 십 수 년 사이 부동산 값이 상승하면서 일반시민들이나 공인중개사들이 부동산 세금에 관심을 많이 갖게 돼서 상담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부동산 중개사업자를 전문화 업종으로 선정해서 계속 홍보하여 그에 따른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음식업의 세금과 관련된 책을 세권 정도 썼고, 최근에는 부동산중개사의 세금 관련된 책을 한권 출판했다. 세무사업계의 현재 상황은 개업하는 세무사 숫자는 매년 수백명씩 늘어나지만 거래처 숫자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심지어 관리비를 벌지 못해서 폐업하는 세무사 숫자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길은 세무사가 실력을 갖추고 전문화하여 경쟁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전문화는 상속세, 증여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등 세목을 전문화 할 수 있으나 특정 업종을 전문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업, 건축사, 건설업, 비영리법인 등과 같이 업종의 특성에 따라 전문화하면 그 나름대로 절세 방안에 대한 노하우도 생기고 사업자의 절세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모든 세무사들은 무슨 세목이나 업종에 전문가이지만 업종을 전문화하고 연구 노력하면 납세자의 요구에 적극 부응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 말씀드린다.
 

◆ 유년시절의 기억

-저는 충청도 충주 시골동네의 중농인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7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풍요롭지도 않았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집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아버지가 잎담배 농사를 지으셔서 형제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다. 집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일 돕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2km정도 먼 거리에 있었다. 그 시대 대부분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 초등학교가 30여년 전에 폐교를 했는데 폐교 후 현재까지도 모교운동장에서 가을에 학구(學區)내 여러 어른들을 모시고 총동문회 체육대회 겸 경로잔치를 27년째 하는데 그 날이면 온 동네 분들이 떠들썩하게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고향에서 출향한 사람 중의 한사람으로 꼽혀 행사 주최를 맡고 있다.

그리고 제가 세무사개업 초창기 때 마을 어른들을 위해서 속내의 200벌 정도를 구입해서 무기명으로 보냈는데, 그 선물을 받고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도 체육대회 겸 경로잔치 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남에게 무엇인가 주면 받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작은 배품이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그래서 매년 어버이날이나 명절 때가 되면 불우이웃과 시설에 기부하는 것을 생활하고 있다. 제가 살고 있는 서울서초구 방배동에서 일 년에 한번 동네 노인잔치를 하거나 불우이웃돕기에도 참여하고 종교단체를 통해서 베트남에 후원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내가 베푼 만큼 되돌아온다는 ‘등가교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 법인의 모든 종사원에게도 먼저 줘야지 그 반대의 급부가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저와 우리 직원들의 생각은 사업자와의 관계에도 적용되므로 가능한 한 사업자에게 많이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사업이 유지되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지식농사

-세무사의 외길 36년 앞만 보고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바쁘게 살아 왔다. 세무사를 개업하고 법인을 경영하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1996년 서울 시내 모 대학교에서 개설 된 외식산업 최고 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면서 외식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1997년부터 한국외식업 중앙회 중앙교육원에서 주 2~3회 이상 신규로 개업하는 사업자에게 강의를 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 졌다. 그 때부터 외식산업 세무를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하지 않으면 질 좋은 강의를 할 수 없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며 강의 자료를 만들었다.

1997년에 시작된 ‘외식업의 세금절세 방안’의 제 강의는 현재까지도 22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마 세무업계에서 통계를 낸다면 ‘최장수 강의 시간’으로 기록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제 강의를 들은 사업자 숫자가 약 45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히 많은 숫자지요 하면서 ‘엄지 척’시늉의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밝게 웃었다.

그 강의를 계기로 ‘맛있는 세금요리 비법‘이란 책 등 2권을 출간했다. 이어 ’공인중개사의 세금 피할 수 없으면 줄이자‘란 책도 펴냈다. 물론 이 책들이 대단한 연구서라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사업자들이 세법을 잘 몰라 억울한 세금을 내는 경우와 한 푼이라도 절세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라잡이 같은 평범한 책이다.

이 외에도 대학원의 연구 과정이나 특수과정에서 외식업의 세금에 대해서 일 년에 몇 번씩 강의를 하게 되는데 조금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쉰 중반이 넘은 나이에도 석사과정에 도전, 졸업논문으로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 연구’라는 논문을 써 석사학위를 받았다.
 

◆ 꼭 이루고 싶은 것 (버킷리스트)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저는 이루고 싶은 꿈이 많거나 크지 않다. 국가공무원으로 서울시내에서 15년을 근무했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열심히 일 하고 운이 좋아서 중견 이상의 세무법인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도 건강하게 공무원 생활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있으며, 수익을 따지면 연봉이 억대가 넘는다. 매년 배당도 일정금액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고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도 하고 있습니다만 꼭 이루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수입의 일정부분을 절약해서 불우한 이웃이나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소극적인 사회 기여를 했지만 본격적인 참여를 하고 싶다. 사회단체인 사단법인을 설립해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펴고 싶다. 올해 결산이 끝나면 시작을 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우리 참세무법인이 현재에 이르게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지역사회와 경제 환경의 힘이 컸다고 생각되어 아주 작은 것이지만 보답을 한다는 차원에서 결심을 하게 됐다.

두 번째는 우리의 일반 납세자들, 특히 음식업 등의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알고 납부 할 수 있는 온라인‧오프라인의 교육기관(학원)을 개설해서 운용하고 싶다. 아직도 많은 납세자들이 자기가 세금을 적정하게 내고 있는지를 모르고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러한 온라인, 오프라인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상담을 언제나 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서 무료에 가까운 요금으로 봉사하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인생 좌우명

-바다를 항해하는 배도 등대가 있어야 망망대해를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아가며 마음속에 등대와 같은 좌우명이 있어야 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는 꿈도 많고 이루려는 욕망도 큰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꿈이 크고 꼭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항상 머릿속에 담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 이순(耳順)에 이르러서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살아보니 특히 성공한 사업자들과 존경받는 분들의 면면은 바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순리에 순응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다보니 자연히 노자 사상의 기본인 ‘상선약수’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존경하는 인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다산 정약용, 율곡 이이, 김구 선생님,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등을 꼽는다. 과거 외침을 많이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우국충정의 영웅들이 많이 배출됐고 이들 영웅들이 민초들의 빛이요 희망,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저는 해방 후에 태어나서 한국전쟁과 4.19, 5.16 등 정치적인 격변을 살아온 사람으로 서, 가난을 뼈아프게 체험했다. 실제 봄에 산나물을 채취 해다가 죽을 끓여 먹고 점심을 굶는 친구들을 많이 봐 왔으며 여름에 꽁보리밥과 국수나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일상으로 살아 왔다. 물론 우리보다 이전 세대는 배고픔을 더 많이 체험하셨겠지만 제가 살던 시대도 가난해서 그 삶의 어려움을 직접 목격했다. 그래서 저는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박정희’라고 말한다. 우리 민족의 5천년 가난을 극복하도록 기초를 다지신 분이며 손수 가난을 물리치자고 앞장서서 실천하시며 열정을 쏟으신 위인이다. 그래서 저는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
 

◆ 채상병 세무사 그는 누구?

충북 충주시 출생. 청주 대성고교를 졸업, 대학2년을 수료하고 국세공무원이 됐다. 그때 나이가 20살이었다. 서울지방국세청,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과, 남대문, 영등포, 동대문, 남산, 반포세무서 등을 돌며 주로 법인세과, 조사과 등에서 근무했다. 그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15년의 국세공무원 생활을 마감하면서 세무사가 됐다. 1983년 1월에 세무사개업을 했다.

그는 36년의 세무사로 일하면서 노자의 ‘상선약수’사상을 깨달고 어려운 이웃에 배품을 손수 실천하고 있다. ‘세무전문가’라는 이름 하나로 억대 연봉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역시 고객들로부터의 도움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영세자영업자들에게 무료강의와 불우이웃돕기 등 많은 기부활동을 펴 왔다. 2017년에는 기획재정부장관으로부터 ‘아름다운납세자상’을 받았다. 사회기부와 기여도가 많은 사람에게 주는 표창이다. 그는 더 큰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려고 요즘 바쁘다. 사회봉사단체 사단법인을 설립, 본격 나눔과 사랑의 전도사로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 걸어온 발자취

-청주 대성고등학교졸업. 경희대 경영대학원 세무관리과 졸업(경영학 석사)
- 서울-중부청 조사과. 남대문, 영등포, 동대문, 반포세무서 근무 15년
-1982년 1월 세무사자격 취득. 1983년 1월 세무사 채상병사무소 개업
-현재 외식업중앙회 중앙교육원, 대구카톨릭대학 평생교육원 세법 강의
-2006년 12월 참세무법인 설립. 현재 15개 지점 개설
-2011년 3월 국세청 모범납세자 표창
-2012년 4월 납세자권익보호 부분 국무총리 표창
-2017년 3월 기획재정부장관의 아름다운납세자상(사회기부,기여) 수상


정영철 기자  jyc61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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