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납세상 받은 후 지난 4년간 사후검증으로 자격 박탈당한 자 총 108명

“질 높은 세정서비스, 국세행정의 신뢰도 올려 성실납세 의식 향상 시켜야”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기념일이 있다. 매년 3월 3일은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 한 국민들을 위한 기념일인 ‘납세자의 날’이다. 국세청은 납세자의 날에 모범납세자를 선정하고 포상·표창을 수여한다.

국세청은 국민들의 성실납세에 감사한다며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이들에게 각종 혜택과 특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모범납세자 제도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폐지하거나 다른 방식의 성실납세 홍보 방안을 생각해봐야할 때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 모범납세자, 누가 선정되며, 어떤 혜택을 받을까?

모범납세자 선발에는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성실하게 신고·납부해 국가재정에 기여한 자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자 △지속적으로 사회에 공헌한 자 △거래 질서가 건전한 사업자 △적은 수입으로도 자기 몫의 세금을 성실히 내는 소상공인이다.

또한 국세청이 밝힌 모범납세자 선발 기준은 추천 기준일 현재 3년 이상 계속사업자로, 총 결정세액 기준 법인은 법인세 5000만원 이상, 개인은 소득세 500만원 이상인자다. 또 소상공인 분야에서는 추천일 기준 3년 이상 계속사업자로서 법인은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의 소기업(제조, 광업, 건설업, 운수업은 10인 미만), 개인은 상시근로자수가 5인 미만의 소기업(제조, 광업, 건설업, 운수업은 10인 미만) 등의 기준이 있다.

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우대혜택이 주어진다. 세정상으로는 △세무조사 유예 △징수유예·납기 연장시 납세담보 제공 면제 △모범납세자 증명 발급 △모범납세자 전용 창구 운영 △국세공무원교육원 시설 이용 등의 우대혜택이 있다.

또한 콘도요금 할인, 의료비 할인, 금융우대,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공항 출입국 우대, 전용 신용카드 발급, 고용노동부 노사문화 우수기업 선정시 우대, 국방부 물품·용역업체 적격심사시 우대, 방위사업청 물품·용역업체 적격심사시 우대 등의 사회적 우대혜택도 있다.

◆ 모범납세자 무엇이 문제인가?

모범납세자 제도는 선정부터 논란이다. 일단 ‘월급쟁이’라고 불리는 근로소득자는 세금을 자동으로 떼이기(원천징수) 때문에 탈세할 여지도 없어 근로소득자는 선정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고 근로소득자가 내는 세금이 적은 것도 아니다. 소득세율은 최고 42%이기 때문에, 10억원의 근로소득을 올린다면 세금으로만 4억원을 내는 셈이 된다.

따라서 근로소득만을 올리는 많은 사람들이 ‘정작 가장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데, 세정상, 사회적 우대혜택은 단 하나도 받지 못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또한 모범납세자는 자천 혹은 타천에 의해 세무서에 접수되고, 국세청이 심사를 거쳐 모범납세자로 선정하는데, 이 과정이 베일에 쌓여있기 때문에 세금을 얼마나 잘 내어서 상을 받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개별납세자에 대한 과세정보는 국세기본법에 따라 외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로 인한 문제점은 이미 수면위로 떠오른지 오래다. 지난 2009년 배우 송혜교가 모범납세자 상을 받으며 2년간의 세무조사 유예 혜택을 받았는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5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메디톡스 정현호 대표는 올해 국세청으로부터 조세포탈 혐의로 조사를 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고, 지난 2013년에는 최순실 씨의 여동생인 최순천 씨 가족이 운영하던 서양인터내셔널이 모범납세자로 선정돼 3년간 세무조사 유예 혜택 등 받기도 했다. 당시 서양인터내셔널은 최 씨 일가가 경영권을 홍콩 기업에 매각한 시기와 겹쳐 세무조사를 면제받기 위해 모범납세자 제도를 악용한 것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국세청은 이 같은 지적에 따라 2015년부터 모범납세자에 대한 사후검증을 실시했다. 김도읍 한국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2015~2018년) 사후검증으로 인해 자격을 박탈당한 자는 총 108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세체납, 소득금액 적출, 거짓세금계산서 수수, 조세범처벌 등 사유도 다양했다.

이렇듯 선발과정을 공개할 수 없으니 투명성에 대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연 1회 이상 사후검증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모범납세자로 선발된 후의 탈세 문제가 지속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세무조사 유예’ 혜택이 성실납세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혜택’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어차피 ‘모범납세자’라면 세무조사가 두려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혜택도 순환조사 대상 법인은 배제되는 불공평(?)한 혜택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모범납세자 수상 후 세금을 추징당하는 사례들에 비추어볼 때 모범납세자가 과연 성실납세자인가 하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 연예인 모범납세자, ‘권력기관의 갑질’ 비판도

그뿐만이 아니다. 국세청은 연예인을 모범납세자라고 불러세워 상을 주고 그 대신(?) 국세청 배너 등에 그들을 모델로 활용하고 각종 홍보를 실시하고 있다.

물론 모범납세자로 연예인을 부르면 세금에 관심이 없는 국민들에게 좀 더 효과적인 세정홍보가 가능하고,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 입장에서는 모범납세자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득(得)이 있었다.

일선 세무서도 다를 바는 없었다. 납세자의 날이면 관내 유명 연예인을 초청해 명예민원봉사실장 등의 체험을 하는 것이 연례행사였고 올해는 어떤 연예인이 어느 세무서를 찾는지 취재거리가 되고는 했다(실제로 연예인이 참석하면 그 어떤 국세청 행사 중에서도 취재열기가 가장 뜨겁다). 다만, 송혜교 씨 사건으로 연예인의 탈세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자, 지난 2016년부터는 일선세무서에서 연예인 모범납세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일선에서는 연예인 모범납세자 초청을 없애고 ‘납세자의 날 취지’에 맞게 진정으로 납세자와 함께하는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세청 본청은 아직도 연예인 모범납세자를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국세청은 납세자의 날에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연예인에게 상을 수여하고, 추후 국세청으로 불러 국세청 홍보대사 위촉식을 갖는다.

올해의 경우에는 배우 이제훈, 서현진 씨가 모범납세자로 선정됐는데,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당초 4월 18일 열릴 예정이었던 위촉식이 서현진 씨의 요청으로 5월로 미뤄졌다. 행사를 미뤘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위촉식 당일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해 반쪽짜리 행사가 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또한 이들 연예인을 국세청 홍보대사로 쓰면서 홍보비를 주지 않고 무료로 활용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갑질’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많은 연예인들이 하고 싶지 않지만 권력기관인 국세청에 밉보여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염려해 홍보에 동원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털어서 안 나오면 더 조사하니까요.”

연예인 모범납세자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 세무대리인은 국세청에 성실하게 세금을 신고하는 것이 맞지만, 수임업체를 생각하면 100% 성실하게 세금을 신고할 수는 없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A세무대리인은 “모범납세자로 선정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100% 성실납세를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유인 즉, 지방청 혹은 세무서에서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는데,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조사가 확대되거나 또 다른 문제가 없는지 더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사업에 전념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

따라서 세무조사를 빠르게 끝내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추징당할 것을 생각하고 세금을 신고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털어서 안 나오면 더 조사한다’는 말처럼 진짜 모범납세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그렇게 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는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사업자들이 얼마나 깨끗해서 선정됐는지 국민들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성실납세의식 고취라는 제도의 목적에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범납세자로 상을 받은 한 기업체는 “모범납세자 선정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 해 신문에 회사 이름이 오르내린 후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와서 개인적으로도 회사 측면에서도 오히려 곤혹을 치렀다”며 “그 때로 돌아간다면 상을 거부할 것”이라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 ‘모범세무대리인 제도’도 폐지

모범납세자제도와 더불어 명이 길지 못했던 ‘모범세무대리인 제도’도 존재했다. 지난 2003년 국세청은 모범세무대리인 제도를 시행하면서 “납세자의 질 높은 세무대리서비스 요구에 부응하고 성실하고 공정한 세무대리서비스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납세자가 모든 세금문제를 세무대리인에게 맡기고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선진 납세환경 조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추진배경을 밝혔다.

모범세무대리인에 대해서는 3년간 일반세무조사대상 선정에서 제외하고, 모범세무대리인이 세무대리한 수임업체중 성실하게 신고한 업체에 대해서도 1년간 일반세무조사대상 선정에서 제외하는 특혜를 줬다.

또 모범세무대리인이 부가가치세 환급신고나 기준경비율에 의한 소득세 신고 등을 세무대리한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내용을 신뢰하여 현지확인이나 사후관리를 생략하는 등 우대혜택도 존재했다.

그러나 모범세무대리인 제도는 오래가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한국세무사회는 모범세무대리인에게 위임하면 세무조사를 면제받는 것으로 오인·악용될 수 있다는 등 납세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줄 경우가 있다며 “세무조사 면제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모범세무대리인 상을 받은 국세청 출신 세무사가 납세자로부터 세금감면 청탁과 함께 뒷돈을 받아 챙겨 검찰에 기소돼 세정가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한편 모범납세자 제도와 관련해 박영범 세무사는 모범납세자 제도를 폐지하고 세금포인트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세무사는 “모든 개인 납세자와 모든 중소법인 등 전 국민이 대상자인 세금포인트제도를 이용해 고액이나 꾸준히 포인트를 적립하는 납세자를 대상으로 모범납세자에 해당하는 우대혜택을 부여하거나, 4대보험 부담도 대체하고, 어쩔 수 없는 실수로 인한 가산세를 추징할 때 포인트로 면제받는다면 형평성이나 편향성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성실납세로 인한 혜택을 골고루 받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모범납세자제도는 국민을 채찍과 당근으로 조종하려는 정부의 신뢰가 낮은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후진국적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질 높은 세정서비스와 함께 국세행정의 신뢰도를 끌어올림으로써 성실납세 의식을 향상 시키는 선진국의 발상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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