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흥사단독도수호본부서 ‘독도 역사 왜곡 학술 발표회’ 개최

정태상, 독도 인식은 반일민족주의 상징이라는 주장 정면 반박
 

조선시대에는 독도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독도 인식은 대한민국 성립 이후 반일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영훈 전 서울대교수의 주장에 대해 정태상 박사는 독도가 반일종족주의의 상징이 아닌 ‘조상전래의 어장’이었다고 정면 반박했다.

흥사단독도수호본부(공동대표 윤형덕)는 4일 오후 2시 흥사단 지식나눔실서 ‘독도역사왜곡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정태상(인하대 연구교수, 흥독수지도위원) 박사는 ‘일본의 조선사편수회의 역사왜곡과 반일종족주의 비판’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태상 박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숙종 때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숙종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696년 9월 25일자 ‘숙종실록’에는 안용복 일행의 증언을 인용해 왜인이 말하는 ‘송도는 우산도로서 이 역시 우리 땅이다’라고 분명하게 기록돼 있다. 이는 조선시대 독도를 ‘우산도’로 불러 조선 땅으로 인식한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실제 1693년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납치됐다가 풀려났던 안용복은 1969년 여수 흥국사승 뇌헌 외 4명을 포함한 일행 11명과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숙종실록’에는 안용복 일행의 증언내용이 자세히 실려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정태상 박사는 “숙종실록 이후 왕명으로 편찬된 동국문헌비고(1770), 만기요람(1808) 등에는 ‘울릉도,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이다. 우산도는 왜가 말하는 송도다’라고 보다 간단명료하게 우산도 즉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들 공적문서를 통해 독도는 조선 숙종 때부터 ‘우산도’라는 명칭으로 위치도 왜가 말하는 송도로 분명하게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고착됐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 6월, 미국의 독도 폭격으로 어민 1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은 제헌국회에서 논의됐으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 주요 일간 신문에 ‘우리 땅 독도에서 어부들이 폭격을 당했다’고 대서특필된 바 있다”며 “당시 신문에 이런 내용이 크게 다뤄졌다는 것은 정부수립 이전에도 독도를 우리 땅으로 분명하게 인식한 근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기록상으로 1947년 6월 20일자 ‘대구시보’에서부터 ‘독도’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있고, 1947년 8월에는 과도정부와 조선 산악회의 울릉도, 독도 공식조사 활동을 통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정태상 박사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정부수립 이전에는 독도 인식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고 공적문서를 살펴보더라도 독도에 대한 인식이 대한민국 설립 이후 지난 20년 사이 급하게 반일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전교수의 주장에 대해 정부나 정부출연기관 또는 독도 전문가의 제대로 된 비판이 없는 상황이다”라며 “일본우익세력과 연계돼 일본에 편향된 활동을 하는 인물들이 학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정태상 박사는 “지금과 같이 감정적인 반일을 해서도 안 되지만, 일본의 주장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며 “독도는 반일 종족주의의 상징이 아닌 영토를 지키려는 정당 방어의 상징으로서 민족주의 이전에 학문적인 진실을 밝힌다면 독도의 영유권귀속은 자명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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