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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종로세무서장’이 된 시골소년

서주영 편집인l승인2019.12.06 09: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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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세무서.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국세청 조직의 뿌리인 125개 세무서 중에서 제일로 치는 세무서다. 무릇 정치판에서는 종로를 '정치1번지'라고도 부른다. 종로지역의 세정(稅務行政)을 책임지고 있는 세무서장(고점권)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1962년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중에서도 가장 외진 곳인 장포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집 인근 진동국민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그는 창선중학교와 창선고교를 다녔다. 당시 대한민국의 살림살이가 대부분 그러했겠지만 그 역시 중학생이 되어 책가방을 사기까지는 ‘책 보따리’에 국어, 사회, 도덕이라고 쓰인 책을 둘둘 말아 등짝에 지고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중학시절에는 하루에 2시간 이상을 통학해야만 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이 아닌 종종걸음으로 땀을 훔치면서 순전히 걸어서였다. 그것도 꼬불꼬불 산꼭대기 비탈길을 벗삼아 걸어야 학교에 닿을 수 있는 마을이었다.

그의 이런 고생길은 중1때부터 고3때까지 6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재수 끝에 국립세무대학 2회로 입학했다. `84년 8급으로 국세청에 입사해 일선 세무서에서 공직을 시작해 국가직 공무원이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한걸음 한걸음 세금쟁이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책임감과 열정적인 업무처리로 윗사람 아랫사람들로부터 '참 바른사람'이라는 더없는 평판을 얻었다. 여기저기서 ‘나랑 같이 근무하자’면서 러브콜을 보냈다. 2000년대 초 그가 서울청 조사4국 근무시절이었다. 기자가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 잘 나가던 한 과장에게 ‘그 사람 어때요’라고 했더니 오히려 그 실세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그 사람 잘 아세요. 날 잘 봐달라고 하세요”라고 거꾸로 부탁을 했다. 그 과장의 말은 결코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그만큼 그는 일 하나는 똑 소리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지런하고, 꼼꼼하고, 말 그대로 공무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근면‧성실 그 자체였다.

기자가 목격한 한 장면이다. 1998년경 그가 서울국세청 조사국 근무시절, 퇴근 무렵 조사현장에서 서울청사로 복귀하던 그의 옷소매 자락에 눈길이 갔다. 하얀 와이셔츠를 얼마나 오랫동안 입었으면 낡고 헤어져 있었다. 그간 기자가 만나고 보아온 국세공무원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기자 역시 국세공무원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평택세무서, 서울국세청 조사4국, 국세청 조사국 조사1과, 강남세무서 조사과, 국세청 감사관실 등을 거쳐 국세공무원 생활 24년 만에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성남세무서 소득지원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지금 국세청장인 김현준 당시 성남세무서장과 만났다. 그의 성실함과 업무능력을 눈여겨봐온 김 청장은 국세청 법무과장이던 시절 그를 자신의 곁으로 불렀다.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일선세무서 과장으로 발령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세무서 과장 재미에 빠져있던 그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흔쾌히 김현준 본청 과장의 제의를 수락했다. 세무서 과장 겨우 8개월 만에 본청으로 픽업된 것. 거기서 4년을 보낸 고 서장은 서기관으로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서울국세청 조사1국 1과 1팀장을 거쳐 초임으로 영덕세무서장으로 발령나면서 기관장 자리에 올랐다. 이어 서울국세청 개인납세과장, 강동세무서장을 거쳐 서울국세청 법인납세과장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지난 7월 ‘정치1번지, 세정1번지’로 불리는 종로세무서장에 발탁됐다. 서울의 세수 노른자위로 불리는 강남, 역삼, 삼성세무서 등의 경우 대개 개업을 앞둔 고참 서기관을 보내지만 종로세무서장은 국세청에서 가장 믿음직한 인물을 보낸다는 전통에 따라 그가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로세무서 관내에는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서울대병원, 유수의 대기업과 언론기업 등 세원관리가 녹록치 않은 곳이다. 국세청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을 배치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현준 청장이 그를 종로세무서장으로 발탁한 것은 ‘신뢰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김종창, 허연도, 황재성, 이재만, 박경문, 정시형, 김문환, 유연근, 전을수 씨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맡았던 그 자리였다.

그 역시 아마도 내년이면 국세청의 전통에 따라 정년 2년을 남겨두고 후진을 위해 ‘용퇴’를 하게 될 것이다. 새벽밥 먹고 20리길을 마다않고 달렸던 어린 시절 그의 꿈이 세무서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열심히 살다보니 차마 꿈도 꿀 수 없었던 종로세무서장까지 하게 된 것 같다”고 소회했다.

최근 그가 종로세무서 직원들과 경기도 퇴촌에 위치한 장애인의 집을 방문해 낮은 자세로 이들을 위로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그의 애민정신도 보게 됐다. 남은 국세공무원의 길도 아마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보를 하리라. 그의 퇴직이 가까워지는 내년 봄이 되면 그가 다니던 북한산에 올라 진달래 꽃 아름 따다 뿌려주고 싶은 생각이다.


서주영 편집인  sejungilb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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