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라 ‘감찰대상’ 벗어나 소통창구 역할 미미 지적
퇴임 세무서장 관내 개업 이후 '고문현황' 데이터 없어

세정협의회-세무공무원간 부적절한 관계 지적도 이어져
국세청장 등 지방국세청장 연50회 넘는 직접 ‘현장소통’

“순기능보다 역기능 더 걱정… '발전적 해체'논의 필요"
 

국세청이 납세자와 직접 만나는 소통창구를 늘려가고 있다. ‘현장소통’이라는 이름을 달고 납세자와의 자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다.

99년도까지 국세청은 지역담당제를 실시했다. 당시 납세자와 직원들 간 비리 등 부정부패가 너무나도 심각했다. 국세청장이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등 지역담당제를 없앤 후에도 국세청의 이미지는 끝없이 추락해 국민들의 불신을 사왔고,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이미지 쇄신을 꾀했지만 청렴도 조사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회복하질 못하고 있다.

이에 국세청이 ‘청렴’의 이미지를 쌓아올리기 위해 납세자들과의 사적인 거리는 넓게 두고 웬만한 구설수에는 오르지 않도록 해왔다. 그렇다보니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세정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납세자들의 애로사항이 뭔지 체크해 국민들을위한 세정운영을 펼쳐나가는 방침을 세우고 현장소통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납세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국세청장 혹은 세무서장에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전관예우 등 로비의 통로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세정협의회’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는 사라져도 좋을 때’라는 말이다.

전국에는 125개의 세무서가 있다. 이들 세무서에는 납세자와의 소통창구인 ‘세정협의회’라는 조직이 있다. 세무서 직원들이 아닌 납세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많게는 80여명까지도 있어 한 때 세정협의회 인원수를 20명으로 줄이라는 국세청장 특명이 내려지기도 했다.

세정협의회의 시초는 1971년 오정근 국세청장이 납세자와 사회각계의 세정에 대한 의견과 세금과 관련한 사회 각 분야의 실정을 조직적으로 듣기 위해 설치한 것이 시초다. 세정협의회를 운영해 납세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파악할 수 있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자문기구로 활용하면서, 세무공무원들의 자의성을 견제하기 위한 뜻으로 설립을 지시했던 것이다.

당시 세정협의회는 중앙세정협의회, 지방세정협의회, 특별세정협의회 등으로 구성돼 있었고 일선에서의 협의회는 없었다. 이에 한국세무사회는 일선세무서단위의 세정협의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1979년 임영득 한국세무사회장은 납세자와 세무사들의 세정 건의사항을 모아 세무서에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국세행정의 홍보사항을 납세자에게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교량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일선세무서 단위의 세정협의회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즉 민간에서 주도해 만들어진 기구다.

◆ 세정협의회, 국세청 감찰 손 미치지 않아 감시의 ‘사각지대’

그러나 이같은 세정협의회가 수십년동안 운영되면서 이 협의회를 통해 ‘고문직 알선’문제가 터지면서 소통창구가 아닌 세무서와 납세자간의 ‘유착창구’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무서장이 현직에 있을 때 세정협의회에 이름을 올린 관내 기업인들과 친목을 쌓고 퇴직 후 개업하면서 거래처가 되어주거나, 혹은 고문으로 활동하는 창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국세청 내부 직원들은 감찰대상이지만, 세정협의회의 전관예우 실태는 감찰이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모 세무서장의 경우 퇴임 후 관내 법인들을 담당하는 법인세과장에게 세정협의회 기업들과 접촉해 기장과 고문직을 알선하는 ‘영업활동’을 지시해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이렇듯 실제로 현직에서 퇴임한 세무서장이 관내 기업들의 세무조사나 기업들의 회계문제를 잘 알고 있어 영업활동이 쉽기도 했고, 세무서 직원들에게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선배’이기도 했기 때문에 올해 같은 경우 국회에서 국세청 공직퇴임세무사(5급이상)에 대한 수임금지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퇴직 선배들이 권위를 휘두르며 영업활동을 지시하거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뇌물의 통로가 되거나하는 일들의 이야기는 머나먼 옛 이야기도 아닌 현재에도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물론 기업체들 입장에서는 기장·고문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세무서와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세무서 관계자를 알아두고 친목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위원들과 세무공무원간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한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그러나 세정협의회가 마냥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관내 납세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 순기능을 담당하는 부분도 있다. 다만 국세청이 자발적으로 건전한 현장소통 간담회를 실시하고 있고, 세금교실 등 교육도 실시하고 있으며, 납세자소통팀을 설치해 민생현장을 둘러보는 조직도 만드는 등 납세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납세자의 목소리를 반드시 세정협의회를 통해 들어야하는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각 ‘지방세무사회는 뒀다가 무엇에 쓰겠냐’는 지적도 있다.

◆ `19년 한 해동안 국세청의 현장소통…지방청장들의 직접 소통 횟수만 ‘53회’

실제로 국세청이 현장소통을 얼마나 실시하고 있는지, 2019년 한 해동안의 국세청 현장소통을 찾아봤다. 매달 정례 현장소통주간도 실시하고 있지만, 국세청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청장급 이상의 ‘청장님’들이 납세자와 직접 소통한 횟수만 해도 53회였다.

언론에 나온 현장소통 횟수를 지방청별로 나눠 살펴보면 대전지방국세청장이 11회로 가장 많았고, 국세청장이 10회, 대구청장 9회, 중부청장 7회, 부산청장 6회, 서울청장 5회, 광주청장 3회, 인천청장 2회 등 현장소통 간담회를 실시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단지 납세자만 만난 것이 아니다. 관내 기업인들을 시작으로 세무대리인 모임, 상공회의소 단체, 산업단지 대표들, 전통시장상인들, 경제인협회 등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서의 만남을 가져왔다. 시장을 찾아 국밥 한그릇 먹으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국세청의 세정 홍보가 필요할 때는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 세금교실을 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모범납세자들, 명예세무서장들, 청내 각종 민간위원들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지면서 국세행정 전분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세정협의회가 일선 세무서와 손잡고 관내 지역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봉사활동만 놓고 본다면, 봉사는 개인적으로 혹은 가족들과도 충분히 펼칠 수 있는데 굳이 세무서 직원들과 접촉해 봉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따라 이제는 국세청이 현장소통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국세청 내의 수많은 외부위원 위촉 기구들, 지역세무사회 모임, 상공회의소 단체 등과의 충분한 소통창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전관예우’, ‘세피아’, ‘유착통로’라는 뒷말만 무성히 낳으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걱정되는 세정협의회라면 이제 '발전적 해체'도 논의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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