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권거래세 폐지 정착에만 16년
손익통산·이월공제 실무적 어려움 우려

정부가 모든 금융투자의 이익과 손해를 통틀어 이익이 났을 때만 과세하는 금융세제 개편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공평주의 실현 등과 관련이 있다.

거래 과세에서 소득 과세로의 전환은 대만은 실패하고 일본은 정착에 10년이 넘게 걸렸기에 난항도 예상되지만,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가야 할 길'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8일 정부가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손익통산·이월공제는 쉽게 말해 투자자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이득이 났을 때만 세금을 매기겠다는 뜻이다.

현행 거래 과세 체계에서는 금융 투자자가 포트폴리오상 손실을 봐도 여러 번 거래하면서 세금을 낸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공평주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상품에 대한 과세도 칸막이식 열거주의 과세라 조세 중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예컨대 같은 해외 주식에 투자할 때, 직접투자냐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냐에 따라 세율 차이가 나는 점이 그렇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절세' 방향으로 투자를 하면서 시장이 왜곡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금융업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금융상품을 새로 만들 때 세금 효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설계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과세 문제가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시장 활력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

과세당국 입장에서도 곤란한 측면이 있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상품이 나타나 소득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즉각 과세할 수 없게 되며 조세 중립성이 유지되지 못할 수 있다.

◇ 대만은 결국 실패…일본은 도입하는 데 10년 넘게 걸려

자본시장에서 증권거래세를 궁극적으로 폐지하고 소득에 대한 과세로 전환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거래 과세에서 소득 과세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실패와 성공 해외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대만은 양도소득세 도입을 세 차례 시도했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만은 1989년 증권거래세를 낮추고 양도소득세를 도입했다. 그러자 호황이었던 주식 시작이 얼어붙으며 주가가 급락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2013년에도 양도소득세 과세를 시도했지만, 투자자의 반발로 2018년까지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가 2016년 아예 없던 일로 했다.

반면 일본은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일본도 1989년 증권거래세 세율을 인하하는 대신 주식양도소득세 부과를 시작했다. 증권거래세율은 이후 점진적으로 낮춘 뒤 1999년 최종 폐지했다.

단기적으로는 증권거래세만 걷던 1989년 이전보다 세수가 줄었다가, 궁극적으로 주식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세수는 2005년 기존 규모를 뛰어넘었다.

제도가 안착하기까지 16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셈이다.

소득과 관련한 손익통산·이월공제 자체도 실무적으로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국세청이 한 개인의 금융투자소득을 합산해 과세해야 하는데 각종 개인정보가 얽혀 있어 해당 정보를 확보하는 실무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자가 직접 합산을 해 신고하려면 세무사를 통해야 하는 등 납세 협력비용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여야·정부 공감대 속 청사진 나올지 '관심'

전문가들은 비록 난항이 예상되더라도 소득 과세로 전환하는 것이 '가야 할 길'이라는 데 공감대를 나타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기본 원칙, 비슷한 소득이라면 비슷한 세금을 낸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방향"이라며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제 정비를 긴 시각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강남규 법무법인 가온 변호사는 "많이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납세자들이 납득하는 방향"이라며 "궁극적으로 소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조세 저항이 적기 때문에 현재 각종 이론이나 환경에서 난점이 있음에도 가야 할 길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지난 9월 '증권거래세 폐지 후, 자본시장 과세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실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이 연 정책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바 있다.

그는 "거시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회가 노령화 사회로 전환하면서 제조업으로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세제 사령탑인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2015년 법학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러한 소득 과세 전환을 주장한 점이 눈길을 끈다.

논문은 현행 이자·배당·사업·근로·연금·양도 등 과세소득 분류에 '금융투자소득'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금융투자소득은 마이너스(-) 소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의 보유나 양도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논문은 점진적으로 과세 범위를 확대해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이자·배당소득을 포괄해 소득세법상 '금융소득'으로 과세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세법 전문가는 "낙관할 수 없는 큰 실험이지만 현재 여당과 야당에서 공감대가 있는 상황에서 관련 연구를 깊게 한 세제실장이 부임했다는 점은 추진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만한 대목"이라며 "세수가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년 세제개편안에 장기적인 청사진 수준이라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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