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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병용 조세사학회 학회장에게 ‘조세제도의 길’을 물었다

정영철 기자l승인2019.12.11 08: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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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과거 반성 있어야 미래방향 제대로 제시…현행 조세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함께 연구해 제시할 것”

“납세의무를 국민의 4대의무라는 단순 교육으론 주권의식 고취에 역부족”
“국가재정충족하는 조세입법, 사적자치원칙의 희생 어느 정도인지 논의돼야”

“민법은 모든 법의 기초…조세입법 시 민법학자 참여제도 도입 필요” 주장
 

“조세사학연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명적 과제입니다. 조세의 역사를 냉철하게 돌이켜 반추하여 현대와 미래 조세제도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지난 6월 제2대 한국조세사학회 학회장에 추대된 정병용 세무법인 동양 대표 세무사를 만나 지각 인터뷰를 가졌다. 학회장에 추대된지 다섯 달이나 넘겨 대담기회를 주신 것은 직무유기 아니냐?고 묻자 학회 홈페이지 정리 및 다음 달 있을 정기총회 준비에 정신없었다”며 이해를 구했다.

한국조세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숙명적 과제는 뭔지, 그의 소신 있는 ‘조세 담론’을 들어봤다.

◆ 늦었지만 학회장 추대에 대한 소감.

=조세사학회는 오기수 교수님께서 어렵게 창립하여 학부 및 대학원에 ‘조세사’가 개설되는 등의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학회의 창립과 수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어렵게 창립된 조세사학회이므로 회원님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할 예정입니다. 학회의 연구대상 범위도 조세의 역사에만 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나눌 것입니다. 회원여러분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학회운영에 반영할 생각입니다.

학회는 회원님들의 지적 호기심이라는 수요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지적 호기심을 발현시키는 원인도 제공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요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지적 호기심이 다수에 공인되어 우리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지식이 되고 나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고, 인식능력도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부족한 개인들의 능력을 보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 한국조세사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국조세사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지난 역사를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설령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미래로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습니다. 이 원리는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솔직한 심정으로 냉철하게 자신을 비판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제대로 된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냉철하게 돌이켜 볼 수 있을 때, 자연히 미래의 방향이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전정, 군정, 환곡의 삼정문란으로 어려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근대시민사회로의 출발은 신분제타파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노비는 상속이 되고, 매매대상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상속재산에 불과했던 노비와 그 가족들은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 상속재산의 분배로 인하여 생이별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노비가 상속재산의 1순위에 해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분제가 1894년 갑오경장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선언적 의미만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비를 관장하는 기구인 장예원이 폐쇄되고 노비문서는 소각되었습니다. 노비의 호적은 3년마다 갱신됐고, 전국의 각 호구는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등 4조(四祖)를 기재한 호구단자를 관아에 제출했습니다. 관아는 보관 중인 호적과 대조해 변동 사항을 반영 기재한 뒤 돌려주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장예원이 있었던 종로구 세종로 155의4에 ‘장예원 터’(掌隸院址)라고 하여 그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있습니다. “장예원은 조선시대에 노비 장부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던 관청입니다. 조선초기에 설치되었고 1764년(영조 49) 형조에 소속되어 보민사로 바뀌었습니다. 노비를 관장하던 주무관청인 장예원의 글자에서, 중간글자인 ‘隸’는 ‘노예예’입니다. 한 번 쯤은 그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역사를 숙연하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시대로 설명하자면 노비는 권리의 주체가 아니고 권리의 객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속과 매매의 대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노비는 납세의무가 없었습니다. 자유인만이 납세의무를 가지는 것이 때문입니다.

이는 근대시민사회가 신분제타파로 시작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으며, 신분제타파로 자유가 보장되면서 시장경제가 출발하였고, 시장경제로 인하여 민간에서 생산된 부의 일부가 시민자치의 원리아래 자발적인 국가경비 출연을 승인하였습니다. 간단히 조세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대국가는 조세국가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교육과정에서도 반영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4대의무 중 하나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조세사학회는 그 학회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세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대부분의 조세학회가 현행 조세법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등을 연구하는데 반하여 우리 조세사학회는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라는 거울에 비추어 현행 조세법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근대이전의 국가경비는 무엇이며, 그 국가경비의 법률적 성격이 근대의 국가경비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규명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 조세사학회의 숙명적 과제가 있다면?

=숙명적 과제라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겠습니다.

첫째, 납세의무를 단순히 국민의 4대 의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지대국가(수취제도)와 근대조세국가와의 차이점을 설명하여 이것이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를 규명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가 타파되어 근대시민사회가 시작되었으나, 이는 새로운 신분제사회로의 진입으로 온전한 신분제 타파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 후 해방을 거쳐 6.25 등 격랑의 역사를 그치는 동안 근대시민사회가 중세 봉건사회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등에 대한 연구가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조세의 관점에서 근대시민사회와 시장경제를 설명하는 교육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보아야 합니다.

둘째, 근대시민사회의 도래는 근대에 있어서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는 근대민법의 3대 원칙인 사적자치의 원칙, 소유권 절대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으로부터 모든 개인은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은 것으로부터 가능했습니다. 민법의 기본원리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사적자치의 원칙 또는 개인 의사존중의 원칙입니다. 즉, 개인이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부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사에 의하지 않고는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중대한 도전을 하는 것이 조세법입니다.

조세법이 제정 또는 개정 후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제를 받을 수 있지만, 위헌결정은 과반수 아닌 2/3의 위헌의사가 필요할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위헌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그 위헌결정의 효력이 생기는 등 문제점이 있습니다. 즉, 소급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세 입법시에 민법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로서 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법학자가 참여한다면, 조세법이 재정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사적자치의 원칙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논의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공론이 가능합니다.

셋째, 조세가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생산수단 또는 생산요소의 사회화는 개인이 이윤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에서 출발합니다. 생산수단 또는 생산요소의 사회화는 민간이 생산하는 부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민간의 부가 국가로 이전되는 수단인 조세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생산력 저하는 물론, 개인의 자유가 없어지는 사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정인의 배려로 얻어지는 자유는 신기루에 불과할 뿐입니다. 중세 봉건시대에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는 언제든지 거둬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천부인권에 의한 자유는 자신조차도 넘을 수 없는 인격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위 3가지를 우리 학회의 숙명적 과제로 삼고자 합니다.
 

◆ 신임 학회장님의 조세 사관과 철학은?

=인류역사는 절대왕권으로부터 신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의 결과물인 죄형법정주의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결과물인 조세법률주의로 대별 할 수 있습니다. 1215년의 대헌장, 1628년의 권리청원, 1689년의 권리장전,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을 통하여 조세법률주의가 탄생하게 되었고, 조세법률주의의 연혁을 살펴보면 조세국가 탄생의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신분제는 붕괴 되고 모든 개인은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고대 노예사회, 중세 봉건사회를 거쳐 근대시민사회로 역사적 발자취를 걷게 된 것입니다. 천부인권설, 사회계약설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시민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절대권력자인 왕이 사라지고 왕으로부터 수취 되던 현물임대료인 지대가 없어지게 되어 시민 스스로 국가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프랑스 인권선언서 13조는 ‘공공 무력의 유지와 행정의 비용을 위하여 공동의 조세는 불가결하다. 조세는 모든 시민이 그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분담해야 한다’라고 하고 있으며, 14조는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통하여 공적 조세의 필요사항, 조세의 용도, 세액, 징수 방법 및 기간을 결정하는 데 자유롭게 발언할 권리가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근대조세의 시작이고, 근대국가는 조세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시민주의국가와 조세국가는 동의어인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대국가에서 조세국가로 바뀌는 것은 근대시민사회의 도래를 뜻하는 것이고 근대의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결국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계약자유의 원칙, 법률행위자유의 원칙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모든 개인이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해방하여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받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봉건국가는 토지소유를 기반으로 농노와 농민을 지배하면서 토지경작에 따른 현물임대료, 즉 지대를 제공하는 반면, 이러한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탈피한 개인은 누구에게도 신분적 구속 없이 자기가 생산한 자신의 소유물에서 국가경비를 자발적으로 충당하게 된 것입니다.자유로운 경제활동아래 생산된 생산물은 자유인의 소유였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조세는 자유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회학자 헨리 메인의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짧은 구절이 이를 대변합니다.

또한 중국의 개혁개방은 조세의 도입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간에서 생산의 부의 일부를 일정한 절차를 거쳐 국가로 이전하는 것이 조세입니다. 중국의 개혁은 생산력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며 이를 위해 조세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중앙통제경제에서 생산력증대를 위하여 1982년 일부지역에서 ‘이윤상납제’를 폐지하고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되 일정한 조세를 부담토록 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입니다. 중국이 경제를 중앙통제경제체제인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환원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단순한 이윤상납제에서 조세제도로 정책전환을 한 것으로 등소평의 판단력과 과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국양제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자유롭게 거래되어 생산에 결합되는 시장경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고, 이는 일정부분 자유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산요소가 결합되는 과정이 일방적 통제가 아닌 노동계약, 자본계약 등 계약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계약은 자유를 전제로 합니다. 중앙통제 경제체제 아래서의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생산요소의 결합이 오직 중앙통제 당국의 계획에 의 해 이루어지고 그 생산물도 필연적으로 개인에 귀속될 수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처럼 조세는 자유시장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극단적 사회주의란 사기업제도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 대신 그 자리에 중앙계획당국이 들어서는 ‘계획경제’체제의 창설을 뜻합니다. 이러한 계획경제체제는 사적이윤은 존재할 수 없어 원칙적으로 조세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구조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은 특정개인에 귀속될 수 없는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윤이 개인에 귀속될 수 없으니, 민간이 생산하는 부는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부의 이전수단이 조세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생산요소가 모두 국가에 귀속되는 계획경제체제는 생산성효율의 문제 외에 그 자체로 개인의 자유가 존속할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처합니다. 자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경쟁결과 승자와 패자의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점은 있지만, 승자가 패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경쟁의 원천이 되는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중세봉건사회로 회귀하는 것일 뿐입니다.

근대적 의미의 조세는 이렇게 자유의 전제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조세를 연구하고 공부하시는 분들은 고 최명근 교수님의 조세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조세사학회는 창립 5년으로 연륜이 짧습니다. 그래서인지 조세학회에서의 인지도가 낮고 연구자료발표 등 활동 성과도 크지 않다. 새로운 활력의 기운을 불어넣을 방안이 있다면?

=어느 학회든지 창립과정을 통하여 발전과정을 그치고 안정단계로 들어선다고 생각합니다. 조세학회 중 역사를 주요주제로 한 학회는 한국조세사학회가 처음이고 시행착오를 그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앞에서 숙명적 과제로 제시한 3가지 숙제를 어떻게 수행 해 나갈 것인지를 회원님들의 지혜를 모을 것입니다.

지혜를 모으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단체 토론방을 만들어 화두를 던지고 그 화두를 중심으로 토론하여 연구 방향을 구체화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온고이지신’을 교훈삼아 옛것을 존중하되 옛날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을 도모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개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다음에 열리는 조세사학회 총회는 어떻게 꾸며지나?

=겸허하게 새로이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넓힐지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총회에서 논의해 볼까 합니다. 조세사학회가 연구대상으로 어느 범위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할까 합니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20년째 강의를 하면서 ‘명품강사’로도 소문나 있습니다. 비결이 있다면?

=강의는 사실 일방적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그 효과가 부족합니다. 제 경우에는 경희대 대학원 학생 대부분이 조세 전문가 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방적 조세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방식은 복습하는 효과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표 토론방식의 학습을 선택합니다. 토론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 됩니다. 그 과정에서 견해가 충돌하게 되는 원인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 원인을 치유하는 과정이 강의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들이 조세와 관련하여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만 느끼게 되어도 일단 강의가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에 대한 겸손은, 새로운 지식이 들어올 수 창문을 열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신조차도 아직 연구하고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충만할 뿐입니다.

◆ ‘민법과 세법’이란 저서로 유명세를 더 하고 있습니다.

=조세법의 뿌리는 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건국가에서 세원은 조세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그 수취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축수임산물은 모두 부가가치세 면세이고, 소득세도 농가 부업소득이면 원칙적으로 비과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원, 즉 과세대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법은 경제적 생활사실을 담세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생활사실은 1차적으로 사법(私法)이 적용되고, 2차적으로 세법이 적용됩니다. 하나의 생활사실에 대하여 사법과 세법이 중첩적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1차적 사법적용에 무효 또는 취소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2차적 조세법에 영향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조세법규는 숙명적으로 사법(私法)에 의존하는 관계에 있게 된다고 할 수 있고 조세법의 입법에 있어서나 그 해석 및 적용에 있어서도 사법과의 관계가 대두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재산권 등에 관한 법률행위, 특히 계약시에는 사적자치의 원칙만이 아닌 세법의 강행규정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법은 이미 사법화가 되었다’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약시 세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법률행위시 세법을 고려하지 아니한 법률행위는 의도치 않은 납세의무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법개정 심의시 사적자치의 원칙이 어느 정도 훼손되는지를 심사할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40여 차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민법전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근대시민사회의 출발과 상징이 바로 근대민법이기 때문입니다. 근대민법의 기본원리인 사적자치의 원칙 등 3대 원칙이 모든 개인을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해방하여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주었습니다. 이 자유로운 활동으로부터 생산된 부의 일부가 근대조세가 된 것입니다. 세법상 과세요건은 민법상 법률요건에서 차용된 개념이라는 점과, 민법은 모든 법의 기초이자, 모든 법률해석의 기본이라는 사실 외에 민법은 보다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정병용 제2대 한국조세사학회 학회장은?

□ 약력

-경희대경영대학원 세무MBA 겸임교수
-사단법인 한국조세사학회 학회장
-한국세무사회 성년후견지원센터 센터장
-(전)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전)재경부세제실, 국세심판원, 국세청 근무
-(전)청와대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전)공인중계사 시험출제위원(부동산세법)
-(전)서울지방국세청 이의신청 심의위원

□저서

-민법과 세법(영화조세통람)
-상속-증여세 실무
-양도소득세 실무 등 다수


정영철 기자  jyc61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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