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3곳 모두 고위 관료 출신 논란

윤 행장 과제 산적한데 노조 반발로 하루도 출근 못해
 

올해 새로 임명된 IBK기업은행장이 연속 6일째 서울 을지로 본점 사무실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임 은행장으로서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혀 한치 앞날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지난 2일 제26대 기업은행장으로 윤종원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임명됐다. 그러나 신임 은행장을 맞는 은행원들은 그들의 새로운 수장을 반기지 않는다. 되레 출근 첫날부터 윤 신임 행장이 은행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노조가 나서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다. 윤 신임 행장이 은행 등 금융업 실무 경력이 전무한 ‘낙하산 인사’라는 게 이유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0년 취임한 조준희 행장부터 권선주 행장, 김도진 행장에 이르기까지 3연속 내부출신 행장을 배출했다. 하지만 이번 윤 행장의 임명으로 국책은행 3곳의 수장이 모두 친정부 성향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은 거세질 전망이다.

2017년 9월 취임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지난해 11월 방문규 수출입은행장 취임, 이달 2일 임명된 윤종원 기업은행장까지 이들은 각각 대선캠프 출신, 대통령 측근, 청와대 수석 등 문재인 대통령 라인으로 통한다.

특히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행정고시 27회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이명박 정부시절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을 거쳐 현 정부에선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등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일찍부터 기업은행 노조는 신임 행장으로 낙하산 인사는 안된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관료 출신인 윤 행장이 임명되자 일체 대화를 거부하고 3, 6, 7일에 이어 8일까지 4영업일 연속 출근을 막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이후 을지로 본점에서는 노조원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낙하산 행장 출근 저지 투쟁' 집회를 하고 있다.

윤 신임 행장은 현재 금융연수원 한켠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행장은 "노조와 대화로 풀어나갈 계획"이라며 "열린 마음으로 풀겠다"는 입장이지만, 노조 측은 "낙하산 인사를 행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 투쟁을 선언한 상태여서 난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의 행장은 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1961년 7월 설립된 이후 기업은행은 줄곧 50년동안 22대 행장까지 관료 출신이 맡아왔다.

내부 출신으로는 최근 10년간 연속으로 3명의 행장이 발탁된 게 전부인 셈이다. 내부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국책은행 최고 위치까지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2013년에는 최초의 '여성은행장'을 배출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노조 측은 이번 윤 행장의 낙하산 인사로 그동안 묵혀있던 금융 모피아‧관치금융의 전형적인 행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기업은행 노조 투쟁에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 등도 가세해 강경 기류는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노조 측은 다가오는 4.15 총선까지 출근 저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노조의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은 행장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와 여당의 ‘낙하산 인사’ 대한 사과와 되풀이 되는 ‘밀실’ 인사 재발방지 대책 등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금융노조 뿐 아니라 한국노총과의 연대도 추진하고 있고, 투쟁기간이 총선까지라고 못 박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의 경우처럼 노조가 실리를 챙기는 선에서 합의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온다. 방 행장의 경우 노조와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면서 적극 대화를 추진했고 취임식까지 외부에서 업무를 봤던 케이스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 측은 당장 얻는 실리와는 관계없이, 3년·6년 마다 되풀이 되는 행장 인사 문제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윤 신임 행장이 어렵사리 취임에 성공한다 해도 은행 내부 조직안정이라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낙하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중소기업 육성ㆍ지원이라는 기업은행 본연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하는 장기적 과제도 안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윤 행장이 비록 출근은 못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각 부서간 보고를 받는 등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강한 의지를 갖고 현황을 챙기고 있고, 경영 전략과 실천방안도 구상 중에 있어 시간은 조금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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