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의 ‘데이비슨 프로젝트’에 협조한 대가로 대북공작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항소심에서도 검찰로부터 징역 8년 벌금 2억4000만원을 구형받았다. 데이비슨 프로젝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을 추적하는 국정원 공작명이다.

10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오석준)의 심리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 등 손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같이 구형했다.

이날 검찰은 이현동 전 청장에게 국고손실 부분과 뇌물 부분이 모두 유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국고 등 손실과 관련해서는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의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 추적 사건과 같이 특정정치인에 대한 비리정보수집은 국정원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진행한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 사업도 당연히 특정정치인에 대한 비리정보 수집이기 때문에 위법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며 “이현동 전 청장 측에서는 당연히 직무상 국정원이 협조요청하니 협조를 해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 국세청 역외탈세담당관의 진술과 증언에서도 마찬가지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리정보와 역외탈세 비리 수집에 응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현동 전 국세청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직접 의뢰를 받았고, 국세청은 구체적인 탈세정보가 있을 때 개입해야하는 것임에도 DJ 비자금을 추적해달라, 알아봐달라는 말에 개입을 했다”며 “뿐만 아니라 특정정치인의 구체적인 탈세정보도 없이 미국에 비자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세청이 나선다는 것은 국민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며 공동정범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현동 전 청장이 국정원의 ‘정치적인 의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이 검찰조사때부터 항소심 증언까지 일관되게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음을 느꼈고 상사의 지시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기 힘든 국세청 조직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표시했다고도 밝혔다”고 말하면서 “(차장 당시)상관인 국세청장에게 해당 사건을 전혀 보고하지 않고 국장급인 박윤준 당시 국제조세관리관에게 지시해 둘만 아는 상태에서 진행했다”고 불법성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당시 국세청장인 백용호 국세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은 국세청에 한평생 몸담아온 공무원으로서, 국세청 차장의 지위에 오른 이 전 청장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불법성이 농후했음을 인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와 관련 이 전 청장 측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망했으니 상속세 문제가 있고, 비자금이 있으면 당연히 국세청의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정원 내부 출력기록에 따르면 2010년 1월 국정원은 최종흡 전 국정원 3차장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를 받고 이현동을 찾아가 데이비슨사업 실체규명은 역사적 책무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상호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향후 방향을 협의했다고 나온다. 이때는 해외비자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며 “김대중 전 재통령의 친인척계좌를 원세훈 원장이 최종흡 3차장에게 건네주며 살펴보라고 한 것이 2009년 5월이다. 2010년 1월 다른 계좌추적을 위해 추적권한이 있는 국세청을 찾아간다. 차명계좌가 있으니 이를 증여세포탈로 표적 조사를 해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므로 당연히 증여세 포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같은 국정원의 요청에도 초반에 이현동 전 청장은 매우 민감한 사항으로 자칫 보복성 조사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던 만큼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고, 국세청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국세청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추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후 직속 부하인 박윤준 국제조세관리관에게 지시해 둘만 아는 상태에서 진행했는데, 국세청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면 국장급이 아닌, 역외탈세 실무자나 담당자인 다른 직원들이 조사를 진행했어야함에도 박윤준 국장이 직접 움직이면서 은밀하게 진행됐다”면서 “박윤준 국장이 해외정보원과 접촉해 국정원의 돈이라는 사실도 철저히 숨겨가며 진행했다. 이는 해외정보원이 국정원 개입사실을 알면 도움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도 증언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은 “국세청은 역외탈세관련 수집업무 중에 외국공무원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한다든지, 뇌물을 주면서까지 정보수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세청 역외탈세담당관의 증언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외교적 문제로 번질 수 있고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에도 이 사건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국정원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데이비슨 사업을 증여세포탈건을 가지고 공론화하려고 했음이 드러난다. DJ 관련자들의 고발사건이 유야무야 끝났는데도 국정원은 포기하지 않고 공소장을 구해달라, 미국 국세청에서 언론에 뿌려 보도하게 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면서 “언론폭로 등의 정치적 개입은 불법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9월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은 박윤준 차장과 접촉해 해외정보원에게 미주언론을 향해 사건을 조속히 공개토록 독려했고, 언론보도 내용을 10매 이상 작성토록 했으며, 원고를 국정원에게도 제공해달라, 해외정보원을 국정원에 인계해달라 등의 내용이 나온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의 뇌물 수수와 관련해서도 유죄로 봤다.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이 이현동에게 돈을 줬다고까지 하면서 허위진술을 할 아무런 동기나 이유가 없고, 박윤준이나 해외정보원 등에게 돈을 넘겼다고 하면 수사기관이 확인하기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현동 청장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11년 7월경 삼자대면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출력기록에 따르면 국정원장에게 보고되는 보고서에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이 이현동 전 청장을 만난 사실이 나오고, 김승연 역시 그 당시 개별접촉했고 돈을 건넸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돈이 인출되고 준비되는 과정까지 모두 확인되고 있다는 것.

또한 검찰은 “김승연 국장이 2011년 9월29일 12시59분 국정원을 나와 14시29분에 도착한 기록이 확인되고 있는데, 김 국장이 일주일간 맥을 보면 90분간 자리를 비운 경우가 발견되지 않으므로 90분간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국정원이 나서서 국세청에 돈을 주고 왔다는 유력한 증거”라고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변호인은 1심에서 검찰과 박윤준간의 거래가 있어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검찰은 그러지 않았다”며 “실제로 박윤준이 5월경 기소가 됐는데 변호인의 진술대로 거래를 했다면 기소가 되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박윤준 역시 법정에 와서 진술하는 내용을 보더라도 검찰과 약속이 없었음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어 “삼자대면은 분명히 있었고, 소파구조라든지 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김승연이 어떻게 이현동에게 말했고 이현동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계속 모셨던 이현동 앞에서 법정에서 진술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동에게 불리하게 진술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판례는 횡령과 배임에서 적극 가담해야 공동정범이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고, 이현동은 원세훈의 정치적인 의도나 국고에 손실을 입힌다고 알 수 있기 어려우며, 국정원의 자금 조성경위 등을 알지 못했고 국정원과 협의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며 적극 가담했다고 볼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어 “박윤준 차장이 국정원에 해외정보원을 연결해주고 정보를 전달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고 문제가 없으면 그러라 한 것이 전부”라며 “검찰은 원세훈으로부터 직접 요청받았다고 전제하고 이야기하지만, 원세훈 증언을 보더라도 이현동에게 요청했다는 사실은 없다. 이것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기소한 것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기소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했다.

또 “정보전달, 자금전달도 박윤준 차장이 한 것이며 피고인은 실제 돈이 전달되는 건을 모두 보고받은 것도 아니다. 1심에서도 최종흡과 김승연은 유죄가 선고됐으며 박윤준에는 무죄가 선고된 만큼 국고 등 손실 방조도 적극적인 가담이 없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공동정범 성립요건도 인정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뇌물수수와 관련해서는 항소심에서 추가적인 증거도 없으며 관련인들의 진술이 번복된 점 등을 강조하며 무죄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김승연 역시 뇌물을 줬다고 하면 이현동이 처벌받을 것을 우려했는지 ‘활동자금’이라고 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활동자금도 9월23일과 26일 두차례에 걸쳐서 출금할 이유 등이 전혀 없는 등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윤준 전 차장에 대한 증언도 신빙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삼자대면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한 상만 기억하고 있다’고 하는 등 자기방어를 위해 본인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조작하는 현상 등이 나타난다”면서 “국세청 국정감사 주간에 외부인을 만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으므로 2011년 9월말경 돈을 전달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현동 청장은 김승연 대북공작국장과 딱 한번 대면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는데, 김승연은 2011년 9월말 삼자대면에서 돈을 전달했다고 증언하다가 그 시기가 여름인 7월말로 밝혀지자 7월말경과 9월말경 대면한 적이 있고 그때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을 번복하는 등 허위진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현동 전 청장은 법정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제 자신을 깊이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어찌살아가야하는지, 어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많은 생각을 했으며, 앞으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이 전 청장에 대한 선고는 오는 31일로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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