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취소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 살륙 지역을 건너야 한다." You must cross No man's land to deliver an attack cancellation order.

※ No man's land!, 연합군과 동맹군 사이에 폭 250m 거리 300km를 연이은 인간 도륙의 땅,

▲ 석호영 세무사

영화 ‘1917’은 감독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멘데스가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직접 참여하여 노 맨스 랜드 지역에서 전령으로서 활약 하였다. 그가 그 이야기를 손자인 샘 멘데스에게 구전(Oral history)으로 들려준 것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주인공 스코필드와 브레이크는 영국군 전령으로서 독일군을 공격하려는 영국군 1600명이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서부전선, 파스샹달 전장을 향한다. 영국군 사령관의 명령을 품고 이름과 같이 두명의 병사는 브레이크없이 하염없이 필드를 달린다.

제1차 세계 대전(1914.7.28.~1918.11.11)의 막바지에 1cm의 영토라도 더 확보하기 위하여 연합군과 동맹군은 오로지 마지막 한 병사의 목숨까지도 건채 촌각을 다투어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접전과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계속한다.

영국군 사령부로부터 15Km 떨어진 서부전선의 파스샹달에서 영국군 1600명이 24시간이 지나면 사령부와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독일군을 공격하는 전투가 계획대로 개시된다.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연합군의 통신선을 마비시켜 놓고 죽음의 함정(Death trap)으로 공격을 유인한 상황이기에 공격을 중지시키지 않으면 영국군 2대대원 1600명이 일거에 몰살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스코필드와 브레이크 전령병은 사령부의 공격 취소 명령을 쥐어 들고 총알이 빗발치고 온갖 죽음의 함정만이 놓여 있는 피어린 전장과 적진을 뚫고 독일군 공격을 위해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파스샹달을 향해 지옥의 여정을 출발했다.

폐허와 공포의 현장, 죽음의 현장(Killing field)이며 피의 현장, 명실상부한 살육의 현장을 동분서주 좌충우돌 허겁지겁 갈팡질팡, 엉금엉금 헤매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파죽지세로 달린다.

나는 브레이크와 스코필드에 빙의되어 그들이 가는 곳,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몰입하며 그 전황의 현장을 따라 다녔다. 유럽의 서부전선(western front) 250마일 참호는 그야말로 시한부 인간들의 마지막 여정의 끝, 무덤을 미리 파놓은 바나 다름없어 보였다.

프랑스군과 영국군 등의 연합군과 독일 오스트리아군 등 동맹군이 대치하는 폭 250m, 거리 300여 Km의 No man's land는 일찌기 인류의 역사에 없었던 지옥 그 자체였으며 실제적으로 당시에 존재했던 공간이었다.

즉, 독일군은 진지를 퇴각하면서 곳곳의 지뢰 매설과 뷰비츄랩 설치, 참호와 곳곳에 뿌려 놓은 인간의 피부를 썩게 하고 살상하는 머스태드 등 각종 가스 살포, 하늘에서 쏟아지는 각종 독가스, 언제든지 무너져 무덤화 될 수 있는 각종 지하 동굴과 함정, 몸통까지 흡입하는 광활한 뻘밭.

이렇게 No man's land 지역의 하늘, 땅, 지하는 총알이 빗발치지 않고 폭탄 세례가 없어도 가히 그 자체로서 죽음의 땅이요 도륙의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철조망에 빨래처럼 매달려져 있는 수많은 시체 아니, 과일처럼 주렁주렁 붙어 있는 주검들, 연못과 강물에 뗏목처럼 유영하는 빈틈없이 물을 덮은 사체들, 참호를 메꾸며 켜켜히 쌓여있는 전사상자들, 참호와 진흙탕 뻘에 떨어진 폭탄에 날려 다시 하늘에서 내리는 소낙비처럼 참호로 쏟아져 내리는 시체비.

당시 No man's land에 더하여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산업 생산량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바탕으로 대량으로 생산된 각종 살상 기기, 또 운송 수단의 발전을 통한 대량 물자 동원, 후방에서의 무한대의 병참지원이 가능해진 상태에서의 전투상황은 누구나 쉽게 그 참상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폭격과 포탄에 의해 폐허가 되어 처참히 무너져 내린 도시 건물, 이곳 저곳에 죽어 즐비하게 나자빠져 있는 말들의 시체, 간간히 벌어지는 총격전, 하늘에서 불타 떨어지는 전투기, 그야말로 아비규환 자체인 전쟁은 왜하는 것인지 그 미친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

그러한 No man's land를 달리는 스코필드와 브레이크는 살면 영웅 내지는 훈장이야 받겠지만 죽으면 개죽음, 그러나 "나는 못가겠오"라는 말이 허용되지 않는 명령이라는 언어, 죄라면 반드시 수행해야만 되는 군대의 명령, 하라면 해야되는 그들이기에 더욱 그들이 처연해 보였다.

그들이 왜 적진과 시체만이 나뒹굴어 죽음만이 예견된 사선을 넘으며 메시지 한통을 쥐고 숨통이 끊어지도록 하염없이 달려야만 했을까? 나의 시선과 영혼은 그들을 따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도 실낱같은 의미라도 있을 것이라는데 희망을 갖기 위해 영상 한컷(cut) 한숏(shot) 한신(scene)에 시선을 깊숙히 꽂았다.

비록 그들, 스코필드와 브레이크의 여정이 총성이 천지를 뒤흔들고 메케한 포연이 하늘을 덮는 지옥의 여정이 될지라도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싹이 한줄기 정도는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밤이지만 낮보다 더 밝은 섬광이 갑자기 번득인다. 조명탄이라도 쏘아 올린 것인가 아니면 포격의 불꽃인가? 불꽃이 아련히 차있는 공간에서 작은 불꽃같은 생명의 울음소리가 끊일 듯 말듯 들려온다.

적을 만나 격투 끝에 머리에 상처를 입은 스코필드는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가 아기와 겁에 질려있는 어여쁜 여인과 조우한다. 아기가 여아인지 남아인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영화가 그렇듯 외롭고 공포스런 공간에서 두 청춘 남녀 사이에 정념의 불꽃이라도 튀지 않을까 하고 내심 한발 앞서 같지만 내 생각은 여지없이 불발이었다. 내가 각본을 쓰지않고 감독이 아닌데 어찌하랴.

스코필드는 우는 아기에게 소지한 우유를 제공하여 전장에서의 허기를 채우게 하고 사랑을 담아 볼 터치를 해준 후 다시금 임무수행 길에 오른다.

"날이 밝으면 적에게 위험하니 제발, 제발 좀더 머물렀다 가라(When the sun rises, it's dangerous to be caught by the enemy. Please stay more and leave.)"는 여인의 애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스코필드는 홀연히 지옥의 여정에 다시금 들어선다.

공포의 한 복판에 서있는 가냘픈 한 여인의 사랑을 담은 절절한 호소이나 임무수행을 위해 떠나는 그에게서 명령의 추상같음과 준엄함,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하고야 말겠다는 스코필드의 굳은 결의를 엿볼수 있었다. 순간 두 사람간의 연정이 있지않겠나 라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스코필드와 브레이크 두 사람 간의 인간적이고 진한 우정과 상호 죽음까지도 교대하는 의리가 만발했고 한가닥의 사랑의 장면을 핍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숭고한 군인으로서의 국가와 군과 1600명의 목숨을 구해야 된다는 긴급하고도 현존하는 확고한 사명이 영화의 중심에 꽉차 있었다.

사선을 달리던 스코필드와 브레이크는 폐허가 된 가옥 상공의 공중전에서 패한 전투기 한대가 불에 타면서 추락하여 피하던 두 사람을 덮친다. 목숨이 남아있는 적군 전투기 조종사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케어 해주려던 순간 그 적로부터 브레이크는 칼에 찔려 죽게 된다.

전쟁의 비정함과 죽은 동료의 소지품을 챙기고 시체를 잘 거둬주는 스코필드의 우정을 엿볼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결국 스코필드는 천신만고 끝에 파스샹달에 도착하여 소지하고온 영국군 사령부의 ‘공격 취소 명령’을 성공적으로 전달하여 중지케 하였다.

그리고 브레이크의 형을 만나 챙겨온 사진과 군번표와 줄을 인계한다. 스코필드는 그 순간 굳은 악수와 함께 "중위님, 당신의 동생 브레이크는 결코 외롭게 죽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스코필드와 브레이크의 우정과 죽은 브레이크와 형과의 형제애를 엿볼수 있는 순간이었다.

영화 ‘1917’은 두 사람 전령의 한발짝 한발짝 한시선 한시선을 함께 따라 가며 전쟁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지만 참호전의 어마어마한 실전적 참혹상은 물론, 마치 제 1차 세계 대전의 처참한 상황의 한 복판에 서있던 것 같은 감동이 드는 현장 체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극장에 가서 극감의 전장 체험과 스코필드와 브레이크와 함께 생과 사의 전선을 넘어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가히 압도적인 영화이며 장면, 그리고 장면이었다.

특히 두병사가 목표 지점을 가는 도중 만난 영국군과 동굴에서 아기와 은거하며 사는 여인에게 물어 가는 상황에서 알려준 지점이 등장할 때마다 마치 나의 일인양 감상하는 자신이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순간은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며 묘한 짜릿함이 엄습함을 금할길이 없었다.

스코필드는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포연이 자욱한 공격부대 속을 헤집고 맥켄지 부대장을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려가 극적으로 임무 완수를 하게 되는데 전장의 급박함과 현장감을 생생하게 실감케 하는 정쟁영화의 명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외국어상을 휩쓸어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기생충'과 경쟁하여 작품상 등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가 춸영 기술상 그리고 음향 편집상과 시각 효과상을 받은 영화란다. 기법에 관한 상은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촬영진이 상호 케미를 맞추기 위해 4개월에 걸쳐 리허설을 했다고 한다. 전쟁 상황을 실감케 하는 음향 편집과 시각 효과가 정말 뛰어나 아마추어인 나 자신의 느낌도 두상을 받을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긴 참호와 광활한 전쟁터에서의 움직임을 어떻게 촬영했을까라는 궁금증 또한 금할 길 없었다.

또한 1차세계 대전이 대표적인 진지전(참호전)이기는 하지만 진지의 규모와 정교함이 대단 하였다. 자본이 좀 투입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당시 진지는 미로를 형성하고 있었고 지구 한바퀴와 같은 길이었다니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요즘 한국과 온 세계는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보이지 않는 미증유의 적과 전쟁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급적 거리를 두어야만 이길 수 있는 희한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1차세계 대전에서 약2천만명, 2차세계대전에서 약 6천만명, 스페인에서 발생한 유행병으로 5천만명~1억명의 인구가 사망 되었다니 코로나와의 전쟁도 긴장하고 인류가 대처해야할 전쟁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더욱이 사람들이 운집하는 극장에서 영화 감상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전쟁터에 몸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에 역발상을 해보면 태풍의 눈이 고요하듯 안전 지대가 극장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300명 좌석의 메가 박스에는 100여명도 안되는 관객이 예매되었음을 파악한 후 휭하게 비어있는 좌석을 선택하여 마스크 두 장으로 방어망을 빈틈업고 종심깊게 형성하고 감상 하였다.

루덴베르크의 말대로 "방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Defense is not moving)"라는 교훈의 말을 2시간 동안 꼿꼿이 않아 실천했다. 다른 관객 역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여 영화관은 음향외 적막 강산이었다. 이 또한 새로운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전쟁 영화를 좋아 하지도 않고 거의 감상한 예도 많지 않지만 오늘 영화 감상을 통해 전쟁터 같은 요즘의 코로나19 환경과 삶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는 전쟁 영화, 191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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