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에게도 세무대리업무 일부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됐으나,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계류’로 결론났다.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회부됐으나 입법만료 기한인 해를 넘겨 이날 겨우 수개월만에 테이블에 올랐으나 결과는 허망했다. ‘된다 안된다’도 아니고, 소위로 넘겨 토론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계류’였다. 5월에 임시국회가 한 번더 있지만 열릴지 안 열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이미 대세는 ‘물 건너갔다’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비아냥을 받는’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 그 자체였다.

이로써 이미 관련 세무사법 조항은 실효되어 신규로 세무사업을 등록(개업)하려고 해도 못하는 사태, 법인세신고를 해도 세무사법에 의한 세무사 등록조항이 사라진 상태여서 세무사법에 따라 등록한 세무사나 회계사, 변호사가 작성한 세무조정계산서를 첨부하지 못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초유의 세상(稅上)이 현실화하고 있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기획재정위원회에서 2004~2017년 사이 세무사자격을 취득한 변호사에 대한 세무대리업무 범위를 기장대리와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제외하고 필수교육 1개월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의 골자는 법무부와 대법원, 변호사회 등의 반대가 많다는 것이었다. ‘세무사 업무 중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업무인 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세무대리의 전면금지’라는 것이 법무부와 변호사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세무사들은 시험도 보지않고 회계지식이 없는 변호사들이 세무대리를 할 경우 분명 사무장을 영입해 도장찍는 대리인 역할밖에 할 수 없어 세무대리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리고 업역전문화의 길과도 배치되는 것이며, 변호사 만능주의로 가자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여왔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노 정치인 박지원 의원의 일갈이 귓전을 때렸다. “변호사가 신고대리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법무부나 법원행정처는 아무래도 법조인이니 자기들 밥그릇 키우기 위해 그런 의견을 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원칙의 문제다. 이렇게 따지면 아예 세무사를 없애야 한다. 세무사들의 기장업무를 변호사가 왜 가져가느냐”고 비판했다.

세무사자격자도, 변호사자격자도 아닌, 그리고 민주당도 통합당도 아닌 노 정객의 말은 울림이 있었으나 거기까지였다.

결국 이날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토론을 위한 소위회부는커녕 언제 또 상정될지 기약이 없는 상태인 아예 ‘계류’법안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세무사들은 변호사 자격자인 여상규 위원장의 제 식구(변호사)를 위한 ‘막가파식 결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여 위원장의 ‘패악질’이라고까지 쏘아대고 있다.

이날 법사위 결정이 알려진 후 전해지고 있는 세무사들의 반응은 격하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손에 세무사라는 자격사의 직업안정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에 자존감이 상실된다. 타다금지법은 두명의 의원이 반대해도 통과되는데 세무사법은 한명만 반대하는데도 위원장이 계류시켜버렸다. 3월 법인세 신고부터 서면으로 신고합시다. 4.15 총선에서 특정인사의 낙선운동을 하자.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총 파업이라도 합시다.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는 죽었다. 삭발투쟁이라도 하면서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줍시다.”

세무사들은 말을 넘어 ‘행동’에 나설까.

그러나 이번에도 세무사들은 행동하기보다는 ‘눈치’보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간 세무사들은 정부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될때 툭하면 전자신고 대신 서면신고를 하자고 주장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시험을 보지 않는데도 자격증을 준 나라, 자격을 주고서도 업무를 못하게 해온 나라, 회계지식도 없으면서 업을 하겠다는 몰염치, 이런 것을 ‘기득권이자 적폐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번에도 행동보다는 말의 성찬만이 난무할 것이다. 

아마도 노 정객이 던진 ‘세무사 자격증을 반납하겠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세무사제도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어느때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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