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귀밑 취모를 마악 벗은 수줍은 사춘기 소녀처럼 설레임의 극감을 선물해 주는 그가 바로 봄이다. 그봄은 여름,가을, 겨울을 돌고 도는 세월돌이의 막내다. 반복의 원리에 의해 육십갑자 돌아온 그녀, 봄은 원숙해져 간다. 이렇게 반복의 원리에 의해 인류와 지구와 우주도 돌아간다.

요즈음, 코로나19가 무차별 온 누리에 바이러스균을 난사한다 .찬란한 봄을 오염시킨다. 여기 저기서 인류를 무참히 공격한다. 참혹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특정 국가 특정 지역에 창궐하더니 바이러스전은 이제 국경도 없고 전선 없는 지구촌 전체로 확전 양상이다.

쌍겹의 마스크로 종심 깊은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청정수를 찾아 나선다. 맑은 물을 향해 상류로 상류로 질주하는 물고기와 같이 어딘가 오염 안된 태풍의 눈을 찾아 나서야 할 판국이다. 재앙 수준이다. 이런 재앙과 공포로 부터 엑소더스, 봄 내음의 유혹따라 여정 길에 오른다. 깨진 일상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인생의 최대 감독은 우연이다"라는 말을 남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제레미 아이언스는 열차표 한장 달랑 들고 30여년 안정적으로 봉직했던 스위스 베른의 대학 교단을 떠나 홀연히 리스본으로 떠났다.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떨림이 엄습할 때 작은 몇 가지의 떨림만을 실천 한다면 나머지 떨림은 어찌 될 것인가?"라던 영화 속의 대사를 생각해 본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 되겠다는 충동을 느꼈나 보다. 그가 홀연히 떠났듯이 그녀, 봄을 찾아 나섰다. 친구와 함께하니 금상청화다.

그래도 서울을 떠나야 좀 더 맑은 공기와 조우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정 호수 혹은 광릉수목원 정도를 머리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수려한 자연과 청정한 공기를 선물해 줄 것같다. 다소 낭만적이고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 있을 듯도 하다.

마침. 오늘은 케미가 잘 맞는 친구(Friend of the same wavelength)와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어데로 갈까? 친구는 머뭇거림도 없이 '산정호수'를 추천한다. 나는 순간 묘한 감정에 빠졌다.

사실 산정호수는 내가 산정호수 근처에서 군 생활을 했던 곳이기 때문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내심을 들킨 기분이었다. 이심전심인 듯 하다. 그래서 친구라 하는가 보다. 사랑하는 나의 블랙 애마에 몸을 실고 달렸다.

날씨는 그야말로 쾌청 그 자체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흡입하며 졸졸졸 흥겨운 시냇물 소리를 상상하며 장단 맞춰 흥얼거려 보고 코에 스치는 풋풋한 풀 내음에 취해보는 일상은 소소한 행복이 엄습해 온다. 좋은 친구와의 여정이니 행복감은 따따블이다.

더하여 케미가 맞는 친구(well matched frend)와 함께 드라이브 하며 조잘 조잘 신변잡기와 세상 돌아가는 담소를 할 수 있는 여정 이니 만사 오케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나를 잘 이해해 주는 면이 많으니 한층 더 동행은 즐겁고 행복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수다 떨고 봄의 감흥에도 빠지렸다. 마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우아하며 세련된 자태를 뽐내는 목련이 아닐까, 차창 너머 어딘가에 목련이 스치길 기대해 본다. 아직은 꽃망울이 터지지 못하고 터질 듯 부풀어 있다. 좀 성급한 기대인 것 같다.

삼라만상이 활짝 문을 열기에는 아직 춘래불이춘(春來不似春)이라 해야 할 듯하다. 여인들의 설레이는 가슴에도 아직 봄기운이 충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봄인 줄 방정맞게 고개 내밀다 꽃샘추위에 줄행랑 친 개구리 꼴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산정호수 도착!

많이 변했다. 푸른 제복의 건아로 산천을 누비던 때로부터 38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지 않던가. 호수 주위는 잘 조성된 둘레 길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콘도, 상가 건물 등 주변이 정말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친구와 함께 맑은 호수 둘레 길을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니 예쁘고 풋풋한 새싹들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려 한다. 마치 새들이 기지개 후 날개를 펴고 창공을 힘차게 비상할 듯한 기세이다. 그리고 호수 변에는 벌써 강아지풀이 흠뻑 물을 머금고 있었다.

인근에서 중대장으로서의 지휘관 생활하던 그 당시의 추억을 소환도 해보고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도 돌아보며 추억에 잠겨 짐을 느꼈다.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행복한 작은 여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늘의 감흥이 더욱 선명했다.

봄은 누가 뭐라 해도 순수하고 정결함과 생명력이 정수이다. 세파에 아무리 시달려도 정결함을 잃지 않은 순수한 여인의 풍모, 그러나 그 속에서 풍겨 나오는 열정 충만한 정념은 한층 욕망을 끓게 한다. 그게 봄의 명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봄을 알리는 앙증맞은 새싹과 수줍은 듯한 목련 꽃망울의 자태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비상을 준비하는 여인을 보게 된다. 아니 봄바람에 살랑이는 그 여인, 목련의 치맛자락을 스쳐 나오는 은은한 향기에서 세속의 경이와 황홀함을 느낀다.

농익어 터질 듯 꺼질 듯 사라질 듯한 미세한 정념의 에너지를 인습과 관례와 고정관념의 고리타분한 틀에 꽁꽁 묵어서 가두지 말자. 부수고 박차고 나와 넓은 세상과 호흡하자. 케케묵은 구각을 과감히 벗어 던지자.스스로의 억압에서 해방되자. 아! 자유다.

수없이 마음에 밀려오는 오욕칠정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균형을 이룰 것인지, 오늘의 행복한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의 회한이 될 수도 있다. 욕망의 목록과 강조점이 다른 가운데 어떻게 마음의 주인이 되어 여정을 갈 것인가.

새싹을 마중물로 지하 저편의 물줄기가 지상에 왈칵 뿜어 나와 메마른 골짜기를 적셔 주자. 하여 낙원의 문을 활짝 열어 온 세상에 향기와 맑은 기운이 가득 하기를 염원해 본다.

낙원에서 낙아원 숙명적이고 원초적 원죄, 꽃잎 치맛자락에 머문 시선에서 이글거리는 정념의 불꽃과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그녀, 목련의 우아하고 세련된 자태 속에 감춰진 쾌락의 정념을 불태우자. 하여 붉은 장미의 원숙한 열정 속에 경이와 황홀의 꽃밭을 만들자.

고독한 옹벽의 틈 사이에도 이슬비가 촉촉히 넘쳐흐르고 생명수가 용솟음치는 이봄을 꿈꾸어 본다. 하여 척박한 사막의 땅에 외로이 서있는 고개숙인 고목에도 생기와 환희가 깃들길 희망 해본다.

육십갑자의 언덕을 지나는 목련, 고독한 옹벽에 촉촉히 봄비가 내려 옹달샘을 이루고 연못을 이루어 바다를 향해 또 다시 철철 흘러 갈수 있기를 대망해 본다. 그리하여 시냇물에 꿈꾸듯 누워있는 자갈과 바위를 적시니 생명의 봄노래를 읊조린다. 잠자는 몽암을 깨운다.

아! 찬란한 봄이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이 두려운가.

이제 또 다시 크게 기지개를 펴고 멋진 순수와 정결의 새싹과 수줍은 할미꽃을 찾아 떠나자, 달달한 꿀을 찾아 벌이 운집하듯 이 봄, 그 목련, 그 여인을 맞는다.

너와 나,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신비의 봄, 목련과 여인의 농염하고 원숙함에 감전 된다. 아니 원숙하나 청초하고 순수한 마력에 끌려 본다. 봄은 모든 여성을 새싹, 목련과 같이 순수하게 소녀로 물들인다. 봄은 움틈이요 설레임이다.

우아하고 은은한 세련미를 풍기는 목련과 같이 원숙한 여인은 다시 새싹이 되어 봄 내음과 함께 꿈꾸듯 소녀로 태어난다. 그리하여 내재된 활화산 같은 정념의 불꽃이 발화 되여 노련한 쾌락의 욕망을 달군다.

봄 내음! 봄이다. 봄이 동녁에서 온다, 봄이 동튼다, 봄내음이 동튼다. 청춘의 풋풋한 새싹 밭에서 중년의 원숙한 목련이 악수한다. 우정과 사랑도 움튼다. 그리고 환희와 낙원의 봄을 향해 창문을 할짝 연다.

영화 '여인의 향기' 일상의 무료함에 자살 여정에 오른 맹인 알파치노에게 내음은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깨워준다. 그리스 신전처럼 쭉뻗은 여인의 다리, 그는 그 밑에 상상의 천국을 건설함으로서 속세의 경이와 황홀속에 재 탄생한다.그는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우연히 조우한 아름다운 여인 도나의 내음을 알고 'Por una caveza'의 곡에 탱고 춤을 실었다."탱고는 추다 보면 발이 꼬일수도 엉킬수도 있다. 인생도 그렇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춤을 통해서 삶의 존재 이유도 의미도 찾는다.

몽암의 명함은 침묵이요 윙크다. 그리고 설레임이요 소리없는 외침이다. 알파치노의 명함은 낯선 여인 도나의 내음이었다. 봄의 명함은 우아함과 찬란함이 중첩된 여인이다. 아니 그 봄은 하얀 목련이요 붉은 장미다. 차가운 냉정과 뜨거운 욕망을 품어 안은 우정과 사랑의 온도다. 우아함과 정념이 오버랩된 내음이 봄볕에 익어 간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들뜬 마음을 두서없이 감흥을 그저 막 휘갈겨 보았다. 많은 친구들과 수많은 여정 길에 올랐지만 오늘의 여정은 유닉크하고 색 다른 감흥이 있었다. 상큼하고 멋진, 짧지만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산정호수, 삼부연폭포, 고석정을 경유하여 서울을 향했다. 반나절 코스로 돌아보기에는 버거운 코스이나 온김에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돌아보자는 친구의 뜻에 응했다. 귀경길에 먹은 참치회는 즉석에서 떠주니 꿀맛 이었다. 또 하나의 추억과 행복의 발자취를 친구와 함께 봄밭에 심었다.

The Sanjeong Lake already had a amazing, awesome and fantastic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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