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포함 56개사 ‘일반투자’로 지분보유 목적 변경

주요기업 및 금융사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뒤바뀔 수 있어
 

국내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3월에 대거 집중돼 있는 만큼 증권시장의 ‘큰손’으로 통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2018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를 도입하면서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나 배당 등 주주환원 대책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의결권 행사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 가치의 훼손이나 주주권익 침해 여부에 따라 이사 해임 또는 사외이사 선임을 제안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를 분석해 보면,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약 96개, 이 중 코스피 100대 기업은 37개다. 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총 313곳으로 이들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평균 지분율은 9.59%로 나타났다. 특히 KT, 포스코, KT&G, 신한 및 하나금융지주 등 9개사의 경우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며, 2대주주로 있는 기업도 170여 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7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등 주요 대기업들을 포함한 상장사 56개사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투자'로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 공시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사도 포함됐다. 바꿔 말하면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사에 대해서 주주 배당이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이 맡겨놓은 기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기금운용으로 73조4000억원의 수익을 거뒀고, 11.3%의 연간 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736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액은 약 123조원으로, 상장사 시총 내 비중은 7.1% 규모다.

전 국민의 소중한 돈을 모아 투자 운용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책임있는 투자철학이 요구된다. 국민 투자자의 뜻을 모아 기업의 올바른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과 반대로 연금 사회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해 있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입장에 따라 기업의 지배구조나 의사 결정이 뒤바뀔 수 있어 올해 주주총회에서 특히 긴장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오는 27일 예정된 한진칼 정기 주총은 국민연금의 지분 2.9%의 의결권이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커져 재계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다만 최근 IB(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또는 조현아-KCGI-반도건설의 3자연합 측에의결권 전부를 몰아주지 않고 분산 행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9.16%의 지분을 보유한 롯데칠성음료 주총도 같은 날 열린다. 원청인 롯데칠성이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무분별하게 해고했다는 논란을 빚었던 터라 이날 국민연금의 입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열리는 20일 효성 정기 주총에서 상정된 조현준 효성 회장과 동생 조현상 대표의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 등에 대해 국민연금은 오너리스크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 회장 등 효성 특수관계인 지분이 과반을 넘는 54.72%을 차지하고 있어 안건을 부결시키는 것은 가능성이 낮다.

불법 정치후원·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황창규 KT 회장이 3월 임기 만료돼 오는 30일 KT의 정기 주총에서는 구현모 CEO 내정자가 대표이사로 선임될 계획이다. 다만 구 내정자가 황 회장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KT 지분 13%를 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서 어떤 입장에 설 것인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역시 국민연금이 11.01%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로서 KT&G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향방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KT&G가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인 트리삭티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문제가 있다머 지난달 감리 결과를 회사측에 통보한 바 있다. 내용에는 검찰 통보와 임원 해임권고 등 중징계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의 1차적 판단이 국민연금 주주권 행동에 근거를 제공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최종 감리 결과가 아니며, 향후 감리위, 증선위에 회계기준 적절성을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25일 열리는 우리금융지주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손태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할지도 관심사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민연금은 17.25%의 지분을 가진 예금보험공사에 이어 7.71%을 보유한 우리금융의 2대 주주다. 지난 5일 국민연금은 단순투자목적에서 일반투자목적으로 보유 목적 변경하면서 지분보유 비율이 8.82%라고 공시했다.

네이버 또한 국민연금공단이 최대주주로 있어 주주환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다. 국민연금의 네이버 지분율은 11.80%다. 최근 3년간 실적이 오르내림세를 반복했지만 주주 배당금은 꾸준히 늘리며 주주친화 정책을 이어왔다. 네이버는 오는 27일 주총에서 한성숙 대표, 변대규 의장 재선임 건, 스톡옵션, 정관변경 등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특히 기업의 지배구조 부문에 관심을 가진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사전공개한 96개 기업 중 40개 코스피 기업 82개 안건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이사의 보수 한도에 대한 반대가 26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외이사 선임 25건, 감사위원 선임 15건, 정관변경 7건, 사내이사 선임 4건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올해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유통업계 빅 3 기업과 KB, 신한, 우리, 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사도 국민연금이 '일반투자'로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한 후 첫 주총을 치룬다. 또한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네이버 등 전자·IT업계와 삼성물산, 대림산업 등 건설업계도 포함돼 스튜어드십코드를 발동한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가 기업 주총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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