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초딩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은 반드시 잠을 설치곤 했다. 어젯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렇게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나이와 무관하게 '설렘'이 있나 보다. 좋은 파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청춘 시절과 여행이 가장 아름답게 추억 된단다.그러니 여행은 누구나 노후 준비 이기도 하다.

"강화도는 한시간 10분 정도, 을왕리는 오십분 정도, "어디로 갈까"라는 나의 제의에 친구는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을왕리를 희망한다. 나 역시 강화도는 좀 반나절 코스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코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도 이심전심으로 케미가 잘 맞았다.

아마 친구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바쁜 듯하다. 공‧사적으로 바쁜 요즘, 마음과 몸이 바쁜 것이 눈에 선한데 시간을 할애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가급적 시간 활용은 친구의 의도에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을왕리를 향해 달렸다.

지난 휴일 산정호수에 이어 오늘은 친구와 함께 나의 블랙 애마에 친구와 나를 태우고 을왕리를 향해 달렸다. 호수에 이어 좀 더 깊고 넓은 바다를 향한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도 좀 더 깊고 넓어지리라, 바다와도 마주 한다는 기분에 다소 들떴다.

유난히 향이 강한 코로나 소독약 향기, 거기에 오늘은 내부 세차까지 하였으니 산뜻하다. 또 드라이브 맛을 더하기 위해 차에 소장한 향수를 좀 뿌렸다. 그러나 차에 오른 친구의 향기에 압도된다. 친구의 향기만은 못한 것 같다. 차안은 이미 봄기운과 향기로 가득하다.

을왕리는 공항행 도로를 할애할 수 밖에 없다. 막힘없이 드라이브 하기에는 공항로만한 곳이 없는데 역시 트래픽 잼은 없어 좋다. 40여분 시원하게 달려가니 을왕리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해수욕장은 썰물이 되어 모래와 갯벌의 민낯이 드러나 있었고 때이른 상춘객들이 많았다. 백사장과 갯벌에도 연인들이 앞 다투어 발자취를 남기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요즘 코로나19로 발길이 많이 묶여 있어 바닷바람이라도 쐬려고 많은 인파가 몰린 듯하다.

우선 우리는 전망 좋은 까페를 찾았다. 마침 높은 지대에 있는 까페에 자리를 잡고 나는 차를, 친구는 커피를 주문하여 여독을 풀고 차와 커피 향에 대화의 꽃을 피웠다. 차향이 좋다며 내차를 한잔 마셔보는 친구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정겹게 다가온다.

차창에 바다가 한눈에 확 들어 오는 일망무제의 까페다. 친구는 벌써 바다에 시선이 머문다.물이 맑지 않단다. 그래서인지 강풍에 부서지는 파도가 은빛이 아닌 듯하다. 은빛 여울의 파도가 아니라서 다소 아쉽다. 수심이 앝은 서해바다는 동해 바다와는 다르게 이러한 점이 아쉬운 듯하다.

의연함이 없이 조그마한 바람에도 속이 뒤집히니 말이다. 나의 평소 소신, 처변 불경 이정응변(處變不驚 以靜應變)과는 거리가 먼 바다이다. 의연하고 큰 마음을 키우기에는 동해바다가,아기 자기하고 소박한 마음을 담기에는 서해바다가 제격이라는 생각을 언뜻 해본다.

까페에서 나와 오랜만에 바람다운 바람을 맞았다. 봄바람이요 바닷바람이며 친구와 함께 맞은 바람, 그것도 강풍에 준하는 바람이니 머리카락이 날리고 옷자락이 날리는 신나는 바람이었다.

바다에 휩쓸려 날아갈 듯한 강풍이었다. 을왕리 부둣 바람이었다. 친구도 신나하는 눈치다. 오래 오래 추억으로 자리 잡을 듯한 바람맞이 였다. 친구나 나에게 쌓인 스트레스가 있다면 바람에 휙 날라가 버렸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봤다.

을왕리 해수욕장은 규모도 아담하고 비교적 개발도 덜 된 곳으로 기억 되었으나 해수욕장 주위에 콘도와 많은 숙박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해수욕장 주변 식당은 칼국수, 조개구이, 해물식당이 주류를 이루어 몇 년 전 방문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시간대에 있어 바람 쏘이기에는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을왕리 해수욕장 만큼이나 아담한 반 나절의 여정, 까폐에서의 차와 커피향, 끝없이 밀려 오는 파도, 거센 바닷 바람, 봄 향기, 또 "해운대 해수욕장의 축소판 같다"라는 친구의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를 가득 담고 한나절 코스의 짧은 여정 길에서 귀로에 올랐다.

또 귀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바다 전망이 비교적 좋은 바닷가에 차를 멈췄다. 잠시 친구와 아기자기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아스라이 눈에 들어오는 은빛 물결의 바다가 마치 다뉴브 강의 잔잔한 물결을 연상케 하였다.

친구의 가슴과 마음에도 잔잔하고 행복한 은빛 물결이 깃들기를 소망해 보았다. 짧은 여정의 아쉬움을 안고 공항로를 항했다. 차안은 또다시 스토리 탐험의 연속이다. 육십갑자를 넘어 왔으니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겠는가. 켜켜이 쌓인 사연들이다.

친구는 나의 이런 저런 질문 중, 철없는 질문에 눈가에 눈물이 감돈다. 불현 듯 아픈 과거가 잠시 뇌리를 아니 가슴을 스쳤던 모양이다. 눈치없이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의 친구를 다시 보는 듯하여 더욱 정이 감을 느꼈다. 차창에 부서지는 봄볕에 반사 되는 친구의 눈빛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와 닿았다. 나의 마음도 아팠다. 나의 아팠던 과거도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영웅 호걸인들 아프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 하지 않던가.그 래서 꽃이 아름답고 찐한 향을 풍기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도 마찬가지 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든 눈물을 머금는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가자는 나의 제의에 피로하여 집에 일찍 가서 쉬고 싶단다. 안봐도 비디오, 요즘 많이 피곤할 듯 하다. 그 또한 아쉽지만 친구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이 좋단다. 공감이다.

차에 내려 정답게 손을 흔들어 주던 친구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름다운 마음씨의 멋진 친구다. 반나절의 바람쐬기 여정! 짧으나 진한 추억으로 남을 여정이었다. 친구도 그런 마음이었기를 바란다.

"Youth and travel are the most beautiful memories of old age in your life journey,인생여정에서 청춘 시절과 여행이 가장 아름답게 추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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