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한철, 설렘과 격정을 선물한 만화방창! 이제 그 꽃들은 살랑이는 부드러운 봄바람에도 버티지 못하고 날리는 꽃잎 되어 분분한 낙화가된다. 그 자리에 푸른 잎이 자라, 원숙하고 무성한 녹음을 이룰 것이다. 결국 풍성한 열매 맺는 가을로 향하리라.

▲ 석호영 세무사

벚꽃이 바람에 날리어 능 주위에 소복이 쌓이고 적송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서오릉(西五陵),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인 명릉과 장희빈의 대빈묘에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 회한과 향수에 귀기울여 본다. 그들, 숙종과 장희빈의 추억을 그려 보며 능 주위를 산책해 봤다.

"희빈, 그 옛날 궁궐에서 왕후와 궁녀들과 일상을 보내던 때가 그립소." "상감마마 그때가 좋았나요", "그렇소 아주 좋았오. 왕후께서는 어떠하셨소." "저도 그때가 그립고 좋았다오, 원빈, 인경왕후가 천연두로 꽃다운 20세에 요절하여 방황도 하였다오. 짐도 천연두 때문에 죽을 뻔했잖소."

"희빈과 보낸 시간들, 가장 기쁘고 행복 하였다오. 참으로 왕후는 예쁘고 아름다웠오. 그래서 궁궐을 거닐다가 궁녀인 그대를 길거리 캐스팅을 짐이 직접 했잖소. 궁녀 신분으로 왕후가 된것, 그대가 처음이었오."

"정말 정념이 넘치고 요염하였지, 그러나 때로는 고결하고 우아하였오, 가끔은 애상적이고 청초하기도 했었지. 거기에 후덕한 인덕까지 겸비하였으니 금상첨화였다오."

"그래서 죽어서도 여기 왕가의 능, 서오릉까지 다정하게 오게된 것이 아니겠오. 저 멀리 양주에 누워 있었으나 그대가 그리워서 내 옆으로 이장토록 한 것이오. 지금도 그대와 삼현육각 치고 불며 놀던 그 순간, 태평연월의 세월이 눈에 삼삼 하다오, 꿈같으오."

"상감마마 덕성스럽다는 것은 심한 과찬의 말씀 이고 소생을 욕되게 하는 것이옵니다. 제가 좀 왕비나 계비보다는 더 매혹적이고 섹시하기는 했지요. 많은 비중에서 소인에게 특히 애틋한 사랑과 처소를 내주셔서 무엇보다도 감사 했다오."

"희빈,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오. 희빈께서는 나에게 팜므파탈였었오. 절세미인의 경국지색였지.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었다오. 미색이 정말 빼어 났었오. 희빈과 함께한 시간은 천국이었고 황홀했다오."

"침어낙안(沈魚落雁)이오 폐월수화(閉月羞花)라, 그대는 중국의 침어(沈魚) 서시, 낙안(落雁) 왕소군, 폐월(閉月) 초선, 수화(羞花) 양귀비 보다도 아름다웠다오,미녀,그녀들이 그대를 보면 고개를 숙일 정도 였었지."

"참으로 경이롭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었오. 벗어나기 힘들었오. 그대에게 푹 빠졌었지. 그래도 치세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던 것은 희빈 덕이었오, 한편, 짐이 강력하게 왕권을 강화하고 대신들을 다잡아 놓기도 했었지요, 카리스마 넘치게 통치했었다오."

"여보 상감, 그런데 이곳으로 이장은 감사하나 이렇게 서쪽 끝 구석지고 겨울에는 그늘지고 후진데서 홀로 외롭게 누워있게 하오. 겨울에는 옆구리가 너무 시렵다오, 능도 아니고 묘잖소.대빈묘기는 하지만 말이오, 너무하오."

"미안하오. 짐의 역부족이었소. 남인이 역모를 했다니 어머니 명성왕후께서 희빈을 한통속으로 오해, 매우 못 마땅해 했던듯하오, 어머니, 명성왕후께서 그대에 대한 독심(篤心)이 부족했던게요."

"그대가 폐위 되었을 때도 짐은 늘 그대만을 가슴 속에 품고 오매불망 만날 날만을 학수고대 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오, 그때는 정말 일일이 여삼추(一日 如三秋) 였었지. 나날이 따분 했었다오."

"그대 쪽 대신들이 속해있던 남인 세력에 의한 역모 사건이 그대한테 불똥이 튄거지, 그리고, 인현왕후를 왜 그렇게 저주하였오. 좀 잘 지내시지, 또 사약을 받고 세자의 귀중한 하초를 잡아 당겼다 든데 사실이오."

"그렇지 않아요, 모든게 저의 불찰이었지요. 상감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던 저의 욕망 때문 이었다오. 상감께옵서 베푸는 만큼만으로도 과분해 하며 지족해야 했던 것인데, 그때는 제가 팔팔하게 젊어서 그랬다오, 그땐 잘 몰랐오. 지금의 나였더라면 그러지는 않했을거요."

"소생은 질투의 화신, 욕망의 노예였지요, 또 아들 이윤이의 장래를 위해서 세력과 권력도 필요했고요. 저로서는 정실도 아니고 나인 출신으로 왕후와 계비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였다오, 저도 여성이잖오."

"상감, 그래도 소생이 이윤이를 출산 했잖소, 그 애를 경종 왕으로 보해지긴 했지만 불행하긴 나와 동코스였지요, 그 애의 하초를 잡아 당겼다는 말은 얼토당토 아닌 낭설이고 유언비어이며 저를 음해하고 중상모략하려던 서인 세력들의 음모였소. 마타도어였단 말이오. 권력 앞에서는 동서고금 다르지 않은 듯 하더군요."

"상감, 소생은 자부컨데 시대를 좀 한발짝 앞서 갔던 여인이었던 것같소. 어느 때든 시대를 앞서 가면 불행한 사람이 많지않소, 제가 그랬오. 제가 미색이 뛰어나고 예뻣으면 얼마나 예뻣겠오. 상감께서, 질투 많고 부덕한 저에게 총애를 아끼지 않은 것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오."

"짐은 그대에게 할만큼 했소. 장모께서 불법으로 옥교를 탄 것도 해결해 주고 이윤이를 탄생 3개월, 조기에 원자로 책봉 해주고 희빈, 그대도 왕후로 허락해 줬잖소. 조정에서 거물 송시열 포함하여 반대가 엄청났었지. 결국 반대하는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기 까지 했오."

"그뿐인가, 장인을 포함하여 당신 집안사람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삼정승으로 보해 준 것은 당신을 왕후로 올리기 위한 분위기 조성과 전단계였다오 ,알고는 있소."

"또, 당신 오빠 장희재도 정경유착하여 중국과 무역을 하는 등 부정하게 돈을 많이 챙겼더구만. 짐이 그런 사실 모두 알고도 묵인했던 것이오. 희빈, 그대한테 두툼한 콩깍지가 씌워 졌던 것은 사실인 듯 했소."

"그때가 가장 어려웠지만 왕으로서의 기분을 좀 내고 폼도 잡던 때이긴 했오. 신하들이 사시나무 떨듯 발발 떨었으니까. 그도 모두 희빈, 그대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니 좀 심하기는 했어도 지금 생각해 보니 대단했고 멋진 추억이 되었구료."

"희빈, 그런데 말이오, 짐이 죽어서 듣기로는, 경종이 심신이 나약해 매일 병치레나 하고 먹으면 토했다더군요. 무수리, 최씨에게서 태어난 영조가 그 애를 독살했다 든데 고증이 되었는지 모르겠오. 정말 우리 왕가의 불행한 일이오. 영조가 사도세자까지 그랬다던 군요."

"지금 생각해 보니, 어느 날 요요히 궁내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홀로 우물가를 쓸쓸히 거닐고 있었지. 그때 어여쁜 무수리가 물을 깃고 있었오. 달빛에 비친 얼굴이 얼마나 곱던지. 그 애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오. 그만 그 무수리 ,최씨와 하룻밤 로맨틱하게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영조가 잉태되었으니 운명이었다오."

"다행히 영조가 영특하여 정치는 잘했는데 그놈도 인간인지라 '배다른 형, 경조를 독살하고 자기 어머니 최씨가 무수리 출신이라는 한계와 트라우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오. 결국 천재로 태어난 사도세자까지 그 지경이 되었으니 모든 게 짐의 책임 이었다오."

"희빈, 그대 오빠, 장희재도 제주 유배후 사약을 내리고 그대도 인현왕후 인형을 만들어 바늘을 꽂고 저주 하는 등, 사건이 사실로 밝혀져 사약을 내렸으나, 당시로서는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 바라오. 장례식은 왕비의 예를 갖춰 잘 치렀잖소."

"좌우지간 희빈, 그대는 정녕 아름답고 짐에게 달콤한 인생과 천국을 선물하였소. 짐의 심금을 가장 강력하고 전율 넘치게 뒤 흔들어 놨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지금은 옆구리가 좀 시려도 옛날 황홀했던 시절 생각하며 편히 쉬시구료."

"짐의 마음은 늘 그대, 희빈과의 애틋한 사랑의 추억, 그대의 은은한 향속에 취해 있다오, 그래서 무덤에서도 행복 하다오. 희빈, 그대는 정말 매력이 넘치고 매혹적인 여인이었오. 그러니 이 밤도 바로 옆에 함께 누워있는 인현왕후 곁을 빠져나와 희빈을 만나고 있는 것이라오."

"희빈, 그대가 사약을 받고 산화한 숭고한 살신성인과 희생 덕분에 왕권이 강화되어 오백년 왕조 역사에 사십육년 이라는 최장기 집권이 가능 했다오. 희빈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어쩔수 없었오."

"희빈, 일언이 폐지 왈(一言以蔽之 曰), 짐은 집권 중, 대동보를 전국에 걸쳐 설치하였고 상평통보를 유통 시켰으며 백두산, 두만강 정계비를 세웠는가 하면 북한산성과 강화도성을 지어 국방을 튼튼히 하기도 하였다오."

"또한,수시로 민정 시찰을 통해서 민심을 추스르는가 하면 어사를 파견하여 올바른 정사를 돌보려고 노력하였오.강화도 성 축성식 때는 희빈과 함께 시찰 가기도 했잖오.먼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희빈께서 갑자기 등뒤에서 백 허그(back hug)를 해줬지.정말 써프라이즈(surprise)였었오.그때 참 좋았다오. 화양연화였지.음~,거듭 감사드리오."

"그랬었군요. 상감의 말씀을 듣고 보니 여러 대소사로 상심이 많았었구료. 특히 친정 일을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오. 상감은 참 멋졌오.

"상감, 제 삶이 궁에서 쫓겨나고, 폐위 되고 사약을 받는 등 기구하기는 했지만 한때, 상감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으니 후회는 없다오. 이제 야심한 밤이니 그만 각자 침소로 드시지요, 함께 누워 계신 인현왕후에게 안부 전해 주오. 잘 가시오."

강화도성 축성식과 여정 길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서로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나눈 후, 숙종과 장희빈(본명.장옥정.長玉貞)은 쓸쓸히 각자 능과 묘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숙종과 인현, 인경. 인원왕후, 때에 따라서는 장희빈의 대화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폐비되고 또다시 복권되는 등 '기구하고 파란 만장한 삶, 그러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한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고 간 희빈, 결국 사약을 받고 간 장희빈과의 대화가 더욱 진하게 들려왔다.

사계절 서오릉을 병풍처럼 드리우고 있는 푸르른 적송과 한철 찬란함과 격정을 선물하고 바람에 날리는 벚꽃이 대조적이었다. 인간, 벚꽃과 뭐가 다르랴, 그러나 꽃은 다음 봄에 또 피겠지만 인간은 가면 오지 않느니~

천하의 권세를 누린 숙종이나 치명적 팜므파탈 장희빈도 한철 격정과 정념을 불살랐던 한떨기 봄꽃이 아녔을까, 봄 아지랑이 줄기따라 피어오르는 그들 숙종과 장희빈의 속삭이듯 들려오는 대화를 엿들으며 무상(無常)의 어로(御路)를 따라 숙종이 누워있는 명릉으로 계속 발길을 옮겼다.

적송이 우거진 숲속에 웅장하진 않지만 왕과 왕후의 묘답게 위엄과 기품이 있었다. 또 능 주위는 말끔히 단장 되었었다.그들이 살아 숨쉬던 '궁궐은 부귀영화도 있었겠지만 질투와 암투, 음모와 중상모략이 난무하던 정글'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숙종과 인경, 인현, 인원왕후들은 손을 뻗으면 서로 닿을만한 거리에 누워 있었으나 숙종의 영혼을 뒤흔들며 팜므파탈로서 총애를 받던 장희빈은 정장각이나 홍살문도 없이 후미진 곳에서 외롭게 썰렁하게 홀로 누워 있었다. 또 능도 아니고 '대빈묘'라고 호칭 되었다. 신분의 냉혹함이었다.

정자각, 어처구니, 잡상, 홍살문, 향로와 어로, 능과 원과 묘와의 개념 차이, 친구와 드라이브중 영조와 사도세자 간에 얽힌 역사 명강의(?), 유익한 능탐방이오, 역사 탐방 이었다.

'권불 십년, 화무 십일홍, 영원한 권력, 영원한 격정과 젊음은 존재하지 않는다.Power is difficult to maintain for ten years, and the beauty of flowers is also difficult to maintain for ten days.Eternal power, eternal passion, and youth do not exist.'

역사를 좋아하고 필자와 때때로 허심탄회한 일상의 대화, 많은 정보와 지혜를 선물 해주는 친구 로마와, 서오릉의 명릉과 대빈묘를 탐방하며 숙종과 장희빈의 역사적 사연을 일부나마 재음미 해볼 수 있었던 날씨 화창하고 유의미한 봄날 이었다.

한편, 바람에 실리어 봄볕에 반짝 이면서 섬세한 손길 흔들며 하염없이 날리는 서오릉의 벚꽃을 바라보노라니 봄이 감을 느낀다. 그리고 필자의 봄도 저 멀리 떠나간다. 청춘도 한 걸음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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