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재원마련을 위해 장기저리 무기명채권을 발행했다. 이때 발행된 금액은 3조8744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무기명채권은 자녀에게 건네지면 상속이나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되어 세금 없는 부의 무상이전이라는 점에서 ‘세금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또한 금융소득 종합과세에서도 제외된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과세당국이 스스로 나서 관계 법령까지 개정하면서 무기명채권을 발행했다. 이 채권의 특징은 상속‧증여세에 관한 법률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법 제3조에 따라 이 채권 소지자에 대해서는 자금의 출처 등을 조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관련 송사에서의 법원의 판단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마련 차원에서 한 여당 의원이 이 무기명채권을 발행하자는 견해를 표명했다가 유력 정치인은 물론 경제단체 등 전문가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불법자금의 조성과 전달에 악용될 소지가 매우 높다. 상속·증여세를 납부 하지 않아도 돼 부의 대물림으로 악용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 수 있으니 검은 돈이라도 세탁하여 사용하자는 발상에 가깝다"는 등 격렬한 반응이었다.

또 한 정치인은 "현재 국채 이자율이 1%대인데 고작 이자 1%를 아끼려고 50%의 상속‧증여세를 포기하는 것은 산수도 모르는 유아기적인 발상"이라고 까지 질타했다.

다 맞는 말이다. 무기명채권의 발행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자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구입하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들이자 세금없이 그 돈을 융통(상속‧증여포함)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 뇌물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특히 무기명채권까지 발행하여 반대 급부없이 무조건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여 아껴서 저축해서 어려운 때를 대비해온 사람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공평하지 못한 처사이자 사회전체가 도덕적 해이로 빠져드는 ‘망국’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장사가 되지 않아 폐업을 하고, 소상공인들은 월급 줄 돈이 없어 직원을 해고하고, 무급 휴직까지 이어지는, `98년 환란을 겪으면서 서민과 직장인들이 길 거리로 나 앉았던 때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굳이 재난지원금을 지원키로 했다. 그것도 정부는 소득하위 70%만 주자고 했지만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전 국민에게 주기로 했다.

정부가 전 국민 지급에 반대해온 것은 결국 재원마련의 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재원을 마련해야 할까. 추경, 추경에 이어 3차 추경까지 한다고 한다. 그리고 국채를 발행하고~.

결국 추경이던 국채 발행이던 그 원천은 국민 세금뿐일 것이다. 세금은 거래가 있어야 하고, 또 사업소득, 근로소득이 있어야 걷을 수 있는 것이다. 폐업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세금을 낼 수 없다면 세금을 걷을 곳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재원마련은 난망한 일이다. 아마도 기획재정부장관이 긴급재난지원자금을 전 국민에게 주자는 여당의 주장에 반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들의 돈을 끌어내어 그들에게 지원함으로써 일단 폐업을 막고, 해고를 막아내어 서민들의 삶을 구제할 수만 있다면 무기명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면 무기명채권의 발행을 반대하는 것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배부른 사람들의 ‘정의타령’ 일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정의도 사람이 살아야 외칠 수 있는 것이라면 ‘무기명채권발행’이라고 대놓고 반대만하지 말고 한번 더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는 말이 세간에 없지 않다.

이 위기를 외환위기보다 더하다고 하는 마당에 당장 라면 값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의’부터 찾을지 모르겠지만 무기명채권을 발행한다면 ‘무서운 상속‧증여세 때문에 금고에 잠자던 뭉텅이 돈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설령 그 돈이 세금 없이 자녀들에게 이전된다하더라도 그 돈은 다시 장롱 속으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돌게 되어 거래세, 사업세 등으로 환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무기명채권이라고 하여 아예 세금이 없는 것이 아닌 세금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다.

그러면서 한발 더 나아가 ‘남의 아이디어를 반대만 하지 말고 부가가치세율이라도 확 올리는 대안이라도 내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참으로 난세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