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백화점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오전 10시 30분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는데요.

이들이 향한 곳은 명품 브랜드 샤넬 매장. 14일부터 샤넬 인기 상품을 최대 130만 원 가량 인상한다는 소식에 오픈런이 벌어진 거죠.

"샤넬 백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샤넬은 매년 큰 폭의 가격 인상을 단행해왔습니다.

문제는 혼수 필수 품목으로 손꼽히며 큰 인기를 끄는 샤넬이 매년 국내서 얼마나 버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샤넬, 구찌, 루이비통, 구글, 애플 등 굵직굵직한 외국계 기업들. 이들은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로 등록돼 있습니다.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와 달리 외부 감사 의무가 없는 회사를 말합니다. 즉 국내에서 얼마를 벌고 세금은 얼마나 납부하는지 알 수 없죠.

본사는 외국에 있다고 해도 수익 활동 대부분이 국내에서 일어나는 만큼 실적 공개에 대한 요구는 계속 있었습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유한회사로 등록된 외국계 기업이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회계의 투명성 때문"이라며 "회사의 운영 상황을 공개적으로 밝혀 세금 납부 책임을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내에서 적지 않은 이익을 내고 있는데, 그동안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덧붙였죠.

이런 비판이 계속되자 국회는 2017년 10월 외부감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면서 외부감사 대상에 주식회사뿐만 아니라 유한회사도 포함됐죠.

따라서 유한회사도 올해 실적이 담긴 감사보고서를 내년부터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외국계 기업들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등이 최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습니다.

감사를 선임할 의무가 없는 유한책임회사는 외부감사법 개정안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최준선 한국기업법연구소 이사장(성균관대 명예교수)은 "만약 이런 상황이 되면 원래 입법 취지와 다른 것"이라며 "입법 취지는 일단 규모가 되면 회사 형태가 어찌 됐든 감사를 받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피해 나가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우철 교수는 "유한회사 형태를 유지하고 회계감사의 책임이 없었기 때문에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서 공시나 감사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샤넬 등 명품 브랜드 역시 그동안 폐쇄적인 운영을 해온 만큼 이런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런 전환을 막을 방법은 없는 상황인데요.

최준선 이사장은 "회사 사이의 조직 변경인데 주식회사는 유한회사나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할 수 있고 유한책임회사나 유한회사도 주식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며 "규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박선숙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유한회사들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을 하면서 법을 피해 나간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국내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는 외국계 기업. 내년부터는 투명한 실적을 알 수 있게 될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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